내가 중년이라니!!!
이건 마치 “내가 고자라니!!!”하고 울부짖던 남자의 드라마 속 한 장면과 다를 바가 없다.
한 드라마에서 중년의 남자가 병상에 누워 자신이 성불구가 되었다는 소식을 막 듣고는 비통하게 울며 소리쳤다. 기획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훗날 그 씬은 두고두고 많은 사람에게 웃음거리가 된다. 보고 또 봐도 여전히 재미가 있었나 보다. 그렇게 여러 번 많은 프로그램에서 그 장면만 몇 초컷으로 잘라 계속 사용한 걸 보면.
여기 “내가 중년이라니!!!”라고 울부짖는 한 사람이 있다. 2025년을 살아가고 있는 나다. 황망한 얼굴로 눈물 콧물을 흘리며 울어봐야, 역시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재미있는 몇 초짜리 구경거리일 테다. 어쩌면 다음에 다시 정신을 차릴 땐 “내가 노년이라니!!!”하고 꽥하고 소리를 지르며 놀랄지도 모를 일.
노화에 대한 나의 알아차림은 갑자기 찾아왔다.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누구도 중년의 삶이 어떤 것일지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와 한 집에서 같이 살았고, 어릴 적 엄마 아빠 새치를 용돈 벌이 삼아 족집게로 뽑으며 놀았다. 그런데도 어째서 내 흰머리를 발견하고는 마치 못 볼 것을 본 양 그렇게 눈이 커졌을까? 마치 내게만은 젊음이라는 큰 축복이 계속될 줄 착각이라도 한 어리석은 이처럼.
작년부터 부쩍 흰머리가 한 둘 눈에 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중년’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낯설다. 내게 어울리지 않는 말 같다.
그러면 뭐 하나. 시간은 잘도 흘러 이제 그만 빨리 가도 될 것 같은데, 야속한 흰머리는 힘차게 쑥쑥 잘만 올라온다.
“난 뭣도 모르고 쏙쏙 뽑았지 뭐야? 희면 어때? 흰머리도 내 머린데! 그걸 모르고. 넌 그러지 마라.” 노화에 대해 유일하게 들은 조언이 겨우 흰머리 뽑기 금지 정도다. 날 낳고 키워주신 모친이니 이 정도 조언이라도 해 주셨겠지.
모친의 조언을 귀담아듣고, 흰머리가 보이면 작은 가위로 최대한 짧게 자른다. 그런데 그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흰머리칼만 잘 골라 최대한 짧게 잘라내고 싶은데, 다른 검은 머리카락까지 같이 잘라버리기가 일쑤다.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며 흰머리를 잘라야 하는데, 눈을 위로 치켜뜨다 보니 안 생겨도 될 애꿎은 이마 주름만 더 생기는 것 같다.
이탈리아 강한 햇살 무서운 줄도 모르고 신나게 해바라기를 즐긴 대가도 잡티란 명세서로 치르는 중이다.
젊음이란 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휙 하고 지나가 버리니까 진짜 잘 사용하라고 진심 어린 조언을 해 준 사람이 왜 내 주변에 없었을까?
10대 중반에 느꼈던 한동안의 급격한 신체적 변화에 대한 당혹감, 30년 가까이 잊고 살았다. 그동안 신체적으로 그다지 큰 변화가 없었으니까.
봄이 지나 여름이 올 때까지는 계절의 변화가 커도 그저 푸르고 아름답기만 하다. 그런데 잎의 색이 바뀌고, 화려하게 잎이 물들다 떨어지는 가을이 되면 조금은 쓸쓸한 마음이 드는 것처럼, 딱 그런 마음이 아닐까, 지금 나의 마음이?
가을뿐이랴? 바싹 메마르고 얼어붙는 겨울도 있다.
하지만 그 추운 겨울에도 아침 햇살이 비치면 ‘반짝’ 하고 아름답다. 내 삶도 그렇겠지. 크게 몸의 변화 없이 살다 보니 그 젊음이 영원할 줄 알았나 보다. 30여 년 간 젊음에 대한 익숙함이 빳빳하게 고개를 들며 일어서는 흰머리와 마주치니 흠칫 놀랐나 보다.
너무 놀라진 말자.
제군, 쫄지 말고 Go!
고작 흰머리다.
어떤 모습으로든 살아있는 것이 기적인데,
찬란하고 감사하지 않은 순간이 없는데.
사진: 이지윤
2025년 5월 10일 토요일 오후
‘Escher’ 전시회. Palazzo Mazzini, Asti, Ita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