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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맛에 돈 벌지! 여름에는 산이다

이탈리아 북서부 발레다오스타 Valle d’Aosta

by 이지윤

5월의 마지막 날, 벌써 여름인가? 요 며칠 기온이 30도를 웃돈다.


그렇지 않아도 흥 많은 이탈리아 인들이 너도나도 흥분하는 계절이 다가온다. 유독 실외에서 먹고 마시기를 좋아하는 이탈리아 인들 아닌가? 한겨울에도 가로등 모양 키높이 난로를 켜두고 밖에서 아페리티보를 즐기는 이들이 많으니, 요즘처럼 기온이 올라 해가 지고도 실외 식사가 가능해지면 테라스나 정원, 심지어 도로 앞에 테이블을 놓은 레스토랑까지 예약 전화가 폭주한다. 모기나 매연은?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나? 매연, 모기, 파리 따위는 문제도 아니다.


더위가 오면 온 자연이 우~ 하고 일어서고, 포도밭 가득한 이 시골 마을에도 가까운 스위스나 독일에서 온 외국 손님들의 파도로 정신이 없다.


주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내겐 훅 다가온 이 더위가 반갑지만은 않다. 외국인 손님들의 쓰나미가 더해져 1분 1초가 소중하게 부쩍 더 바빠지는 주방에서는 조금만 집중해 움직여도 머리에서 흐른 땀이 귀 옆을 타고 또로록 떨어진다.

무섭게 들어오는 주문과 스트레스, 주방의 열기에서 해방되는 휴일,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으로 떠나고 싶다.


‘이왕이면 공기 좋고 시원한 산으로 가자!’ 마음 같아선 뾰족뾰족 높은 산봉우리로 가득한 이탈리아 북동부 돌로미티 Dolomiti로 떠나고 싶지만 겨우 이틀 휴일로는 무리다.

그렇다면 발레다오스타 Valle d’Aosta! 내가 사는 피에몬테 주에서 두세 시간만 운전해 가면 프랑스 국경 근처 발레다오스타 주가 나온다. 10도 이상 기온이 훅 하고 떨어지는 시원한 산악 지역이니 이제 막 봄꽃들이 피고 있겠지.


발레다오스타로 가는 세 갈래의 길 중, 조금 돌아가더라도 시원하게 쭉쭉 뻗은 넓은 고속도로가 이어진 길을 골랐다.


얼마나 달렸을까? 열심히 페달을 밟아 고속도로가 끝나자 온통 푸른 풍경에 눈까지 시원한 산길이 나온다. ‘프레 산 디디에 Pre-Saint-Didier’를 지나자 끝없이 이어진 좁고 구불구불한 급커브 오르막길, 잊을 만하면 나타나 앞을 막는 느릿느릿한 자전거 행렬 때문에 숨이 막히고, 얄밉게 쌩쌩 위협하며 새치기 곡예 운전을 해대는 오토바이 때문에 애를 먹는다.

프레산디디에 Pre-San-Didier를 지나자 나타난 좁고 험한 급커브길

이렇게 고생하며 길 떠나길 잘한 걸까 싶을 무렵, 고맙게도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떠나기 이틀 전에 한 늦은 예약인데도 운 좋게 마음에 드는 방이 남아 있다 싶었다. 알고 보니 겨울 스키 시즌 후 문을 닫았다가 오늘이 오픈 첫날이라고 했다.


작지만 단정한 나무 향기 가득한 방이 시원한 공기와 함께 나를 반긴다. 정상에 하얀 눈이 점점이 남은 산 풍경은 창을 넘어 방안까지 들어온다.


작지만 단정하다. 세 개의 창을 활짝 여니 멀리 눈 쌓인 산과 콸콸 흐르는 계곡물까지 모두 방 안에 있는 듯 하다. la Thuile에서. 사진: 이지윤


‘아! 좋다!’ 그냥 푹 하고 쓰러져 침대에 털썩 누워 눈을 감았다.


‘이 맛에 불 끼고 고생한다! 떠나오길 잘했네.’


세 개의 창문을 모두 열고 팔을 베고 누우니 새소리, 계곡 소리, 시원한 숲 공기까지 모두 방 안으로 들어온다. 서늘한 공기가 몸을 감싸니 숲 속에 누운 듯 하다.


감기 기운 있으면서 그 멀리 어딜 가냐고 타박받을게 뻔한 일,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떠나온 산악 마을 ‘라 튀일 La Thuile’. 맑은 공기, 창밖 계곡물소리 들으며 한 숨 쉬어 간다.



표지 사진: 이지윤

통창으로 멀리 눈 쌓인 산이 시원하게 보이던 스파.

La Thuile, Valle d’Aosta, Italia. 2025. 0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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