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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 Godot Sep 23. 2024

모든 단단한 것들은 공기 중으로 녹아든다

모든 단단한 것들은 공기 중으로 녹아든다

 

 



 더딘 새벽이었다. 온 도시가 그를 짓누르는 꿈을 꾼 현석은 헐떡이며 몸을 일으켰다. 울컥울컥, 생각의 눈사태. 속이 좋지 않았다.

 ‘주말이니까……’

 한껏 꺾인 위무. 어지러움을 느낀 현석은 검은 트레이닝 셋업을 입고 볼캡을 푹 눌러쓴 채로 집을 나섰다.


 한적하게 옮기는 걸음.

 그는 집앞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인적이 뜨문했지만 아주 없는 것은 또 아니었다. 비틀거리는 걸음걸이. 깊이 눌러쓴 후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넝마조각들. 그런 것들이 배회하고 있었다. 모든 가게는 문을 닫았고, 모든 역이 운행을 중지했으며 사람을 실어나를 버스가 오지 않았다. 쉴 새 없이 제자리를 찾아가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의 땅.

 사람들의 땅.

 금방이라도 재개발을 할 것만 같은 오래된 시장과 이미 과거를 탈피하고 새단장을 한 상점가가 있었다. 현석은 슬픈 눈으로 그들을 흘겨보며 길을 걸었다.

 그는 그가 걸어가는 길의 끝에는 방금의 그들과 조금이라도 다른 이들이 있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러지 않을 것 같았다. 언제나 그래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세상은 나은 것과 못한 것이 항상 같이 있었다. 그 불협화음을 이겨내는 것이 항상 그의 과제였다.


 “엇.”

 몽상에 가까운 애도에 젖어있던 현석은 무언가에 걸려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지하차도의 초입이었다. 그는 처음엔 자신이 돌부리나 단차에 걸린 줄로 알았다. 그러나 그의 발치에 어떤 큰 형체가 있었다. 거적대기가 켜켜이 쌓인 그 덩어리의 아래로 규칙적인 숨이 있었다. 사람이었다. 행색으로 보아 걸인이었다.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현석은 걸인에게 조심스러운 말투로 말을 걸었다. 선잠을 방해받은 걸인의 표정은 썩 좋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일어나지 않았다. 현석은 여전히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상체를 조금 숙여 그의 말을 알아들으려는 태도를 취했다. 그는 걸인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걸인은 잠꼬대하듯 웅얼거렸다.

 “잘못했습니다. 대들지 않겠습니다. 잘못했습니다……”

 그의 몸은 다시 웅크러들었고 숨은 고르게 변했다.

 현석은 가슴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정확히 무엇으로 자신이 놀란 건지, 무엇 때문에 자신이 그토록 동요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일단 그는 잰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지하차도는 살풍경했다. 오래된 타일과 때 낀 할로겐등 아래로는 아까 그 사람을 제외하고도 걸인의 무리가 조금 있었다.

 날이 조금씩 추워지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잠자리가 서로 가까웠다. 그들의 몸은 잠을 자는 동안에도 열을 발산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사람의 생리는 악다구니에 가까웠다. 현석은 그들이 무슨 꿈을 꾸며 잠을 자고 있을지가 궁금해졌다. 그들도 나처럼 상념에 젖어 잠자고 있을까? 그들도 나처럼 슬픈 꿈을 꿀까? 그들의 삶에 슬픔 외에 무엇이 있을까?

 옅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을 피할 수도 없었다.

 어떤 이들이 싸우고 있었다. 차도를 빠져나가기 위해 경사가 생기는 즈음이었다.

 “이런 도둑놈의 새끼!”

 “도둑놈이라니요오.”

 “이 상자, 내 거잖아!”

 “내거예요. 정말입니다. 믿어주세요.”

 “도둑놈의 새끼, 사기꾼같은 새끼, 경을 칠 놈……”

 “아악.”

 덩치가 큰 걸인이 작은 쪽을 담배꽁초를 밟듯 짓밟고 있었다. 작은 사내는 단말마도 내지 못한 채 가슴팍을 발로 채이고 있었다. 큰 사내의 발길질은 격렬했다. 작은 사내는 숨도 쉬지 못하고 두들겨 맞았다. 고작 종이 상자 하나 때문에 저렇게 죽일 듯 사람을 때리다니.

 현석은 차도를 빠르게 빠져나갔다. 차도를 빠져나오니 다시 공기가 침착해졌다. 저 아래의 소란이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사위가 조용했다.


 현석은 어안이 벙벙했다. 자신의 눈 앞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그는 차도에서 한껏 멀어진 뒤에 경찰에 전화했다. 지하에서 있었던 일을 신고하기 위해서였다. 경찰이 자기 대신 폭력을 해소해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폭력은 보기 싫었다.

 <112 신고센터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제가 방금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걸 봐서 신고하려고 하는데요.”

 <위치가 어디신데요?>

 현석은 지하차도의 위치를 경찰에게 말했다. 그러자 전화 너머의 경찰은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거기를 뭐하러 가셨어요? 이 시간대에 위험한 거 모르셨어요?>

 “네? 저는 지나가다 우연히 본 것 뿐인데요.”

 <경찰관을 파견은 하겠습니다만, 앞으로는 그쪽으로 지나다니지 마세요. 위험합니다.>

 경찰은 현석을 채근하듯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현석은 그의 말을 듣고는 지하차도에서 멀어졌다. 경찰의 말이 옳다고 생각해서는 아니였다.


 십 여 분을 걷자 주택가의 끄트머리에 밝게 불이 들어온 점포 하나가 보였다. 편의점이었다. 카운터를 보고 있는 것은 머리가 희끗한 초로의 사내였다. 중년과 노년의 바로 가운데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남자는 매부리코가 두드러졌다. 그러나 눈에 띄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의 매부리코는, 말하자면, 개성이란 것이 결여된 그 면면에서 유일하게 자기 의견을 가진 신체 부위였다. 만약 그에게 매부리코가 없었더라면 이 도시에서 사내를 다른 사람과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을 것이었다.

 “삼천 사백원입니다.”

 “카드로 할게요.”

 매부리코는 현석이 건넨 카드를 받아 익숙하게 계산을 했다. 현석은 매부리코에게 말을 걸면 그가 답해줄 지를 잠시 고민했다. 전혀 알 수 없었다.

 “날이 많이 추워졌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매부리코는 무뚝뚝하게 답했다. 아마도 잠시간의 대화 상대는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오면서 사람들이 싸우는 걸 봤어요.”

 “이 동네에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서요.”

 “거지들이었습니다.”

 “거지들이요?” 매부리코는 그 말에 조금 관심을 보였다. “이 동네에요?”

 “사천교에서 이쪽으로 걸어오면서 봤어요. 지하차도에서.”

 “치안이 좋지 않아졌군요.”

 “살벌하게 싸웁디다. 한 쪽이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구타하고 있었어요.”

 매부리코는 심드렁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래서 어쩌라고요?’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머쓱해진 현석은 계산한 커피를 가지고 편의점 밖의 테이블로 향했다. 새벽이라 공기가 쌀쌀했지만 갓 산 커피가 따뜻해서 괜찮을 것 같았다.

 휴대폰의 배터리는 정확히 절반이 남아있었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신 현석은 전화번호부에 저장된 사람들의 이름을 훑어보았다. 이유는 없었다. 다만 개중에 지금까지 깨어있을 법한 사람이 있다면 전화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전화를 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든 그는 커피 한 모금을 더 마시고 잠시 상상했다. 매부리코 사내에게 그랬던 것처럼 거지들이 싸우는 걸 봤다고 운을 띄우면 어떨까. 그러나 그것은 별로 좋은 모양새가 아닌 듯했다. 한밤중에 그런 얘기를 듣고 싶은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스몰 토크의 주제들을 여럿 떠올려본 현석은 이윽고 생각을 접었다. 또 생각이 많아지고 있었다. 생각은 바퀴벌레처럼 고약한 번식력을 갖고 있어서 조금만 방심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증식하여 마음을 뒤덮어버렸다. 그러지 않기 위해 나온 밖이었다.


 현석은 그냥 전화번호부를 훑어보았다. 두 명, 전화를 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다. 한 명은 어머니였고 다른 한 명은 전여자친구였다.

 ‘내가 미친 놈이지.’

 현석은 자조하며 전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 뚜루루. 발신음이 오래도록 끊어지지 않았다. 당연했다. 전남자친구가 갑자기 새벽에 전화를 걸면 기분이 좋을 여자가 있을 리 없었다. 어쩌면 어떤 경우엔 생각을 좀 많이 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한 현석은 전화가 연결된 것을 보지 못한 채 전화를 끊어버렸다.

 다음으로는…… 현석은 생각을 좀 많이 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도 전화를 걸지 않은 편이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의 사랑이 아무리 거룩하다지만, 꼭두새벽에 자다 일어나 아들의 어리숙한 푸념을 듣다 보면 짜증을 내시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어머니는 현석이 요새 어떤지 잘 알지 못하고 있었고, 그는 그녀가 그 상태로 살아가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서울살이의 교훈이 그랬다; 누구도 다른 누구의 짐을 짊어지고 싶지 않을 것이었다.

 잠시 옅게 퍼져나가는 입김을 올려다보던 현석은 커피캔을 한 손에 든 채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커피를 다 마신 현석은 주택가 사이로 쓰레기를 버릴 곳이 없나 찾으로 배회하고 있었다.

 시간대가 시간대인지라 골목은 조용했다. 불들은 꺼졌고, 저 작은 빌라들의 안에 거북이처럼 제 몸을 숨기고 살아가는 서울의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숨을 쉬고 있고, 작고 가녀린 숨소리들의 합창이 있고, 그런데 그 합창은 도로와 골목 사이를 누비는 바퀴 달린 것들의 독주에 가려지고…… 물론 어떤 방들은 불이 켜져 있었다. 현석은 그들도 상념에 젖어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기를 바랐다.

 골목의 조금 깊숙한 곳으로까지 들어서고서야 그는 누군가 밖에 내놓은 쓰레기 봉투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늘은 쓰레기 내놓는 날이 아닌 건가?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봉투의 입구를 억지로 비집고 자신이 마시던 커피 캔을 쑤셔넣었다. 부시럭부시럭. 사람들이 자신을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일이 없었으면 했다.

 골목을 걸어나오는데 어딘가에서 사람의 소리가 들렸다. 아니, 사람들의 소리였다. 현석은 처음엔 그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신촌의 모텔촌에서나 들릴 법한 요란하고 상스러운 신음소리이기 때문이었다. 아유, 낯부끄러워라.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그는 소리의 출처에 대한 호기심을 숨기지 못해 고개를 두리번거리면서도 정말로 그가 그런 장면을 목격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조금 큰 길을 따라 길을 걷가 어떤 형체들을 봤을 때, 그래서, 현석은 저도 모르게 우뚝 멈춰섰다. 저 골목의 끝에 있어서 잘은 보이지 않았으나 분명 그들은 나신이었다. 방금까지 들리던 그 소리의 출처도 그들쪽이었다. 그러니까, 만약, 저게 그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날씨가 분명 따뜻하진 않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잘못 본 줄 알았다.

 그냥 조금 큰 바퀴벌레들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과 눈이 마주쳤다. 몇 초 남짓한, 십 초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콘크리트 맨바닥에 옷 몇 장을 펼쳐놓고 몸을 겹치며 온 사방에 소음공해를 쏟아내는 것은 앳된 얼굴의 남녀였다. 어려보였다. 혹시 미성년자들인 것은 아닐까 현석이 잠시 고민할 정도였다. 그와 눈을 마주친 남자쪽은 어쩔 줄 몰라 표정이 굳었다.

 “뭘 꼬라봐. 씨발, 꺼져!”

 여자 쪽은 그늘이 져 있었기 때문에 자세한 표정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남자와 달리 여자는 웃고 있었다. 오히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어쩔 줄 모를 때 아이들이 짓는, 태연한 척하는 웃음이었다.

 “씨발, 야!”

 “오빠, 조용히 해. 들키겠어!”

 체감상 몇 분은 되는 시간동안 그는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그러다 남자가 몸을 일으키려고 할 때 그가 자신을 때리러 달려올까 짐짓 무서워진 현석은 발을 돌려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갔다. 서투른 발걸음이 꼬여 한 번은 넘어질 뻔했다. 아주 짧은 시간 일어난 일이었다.


 휴대폰이 울려 확인했더니 경찰이었다. 아까의 신고 결과를 형식적으로 알려주는 문자 메시지였다. 현장에 도착했을 땐 아무런 이상이 없어서 그냥 돌아왔다는 내용이었다.

 현석은 잠시 그 글자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건 어떤 뜻일까? 자기들끼리 싸우는 거지들이 없다는 뜻일까? 시민에게 해를 끼치는 거지가 없다는 뜻일까? 거지가 거지의 자리에 얌전히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단 뜻일까? 정체가 불분명한 부끄러움과 함께 혼란함이 새벽처럼 밀려들었다. 이지러졌다.

 커피캔이 다 빌 무렵 현석은 대로변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엔 사람들이 많았다. 젊음의 수도와도 같은 이곳에 현석보다도 훨씬 어린 이들이 있었다. 몇몇은 과연 성인이 맞기는 한 건지 의심이 들 정도로 어려보였다. 저들끼리 왁자하게 떠드는 젊음들은 무질서하고 방탕해보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그가 질서정연하고 절제된 삶을 사는 것도 아니었지만 현석은 개의치 않고 그들을 평가절하했다. 어차피 술에 취해 주체할 수 없는 말들이 오가는 와중이었다. 새벽이 이렇게나 시끄러울 수도 있다니. 그는 새삼 놀라웠다.

 누린 적 없는 새벽이었다.

 신호가 바뀌고 그들은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반대편에서 건너오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듯했다.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르는 어린 아이들처럼 그들은 줄 지어, 하하호호 웃으며, 어떤 의미로는 질서정연하게 어딘가로 향했다. 현석은 그 모습이 외국인처럼 신기했다.

 그는 무턱대고 옆을 지나던 남자들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로 가세요?”

 그들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삼거리요.”라고 답했다.

 “삼거리요?”

 “사투리 쓰시네.” 그들은 취한 듯 딴소리를 했다.

 “서울 온지 얼마 안 됐어요.”

 “오늘 클럽 데이에요. 쪽수 맞춰야 하는데 같이 갈래요?” “그쪽까지 같이 가면 네 명인데 테이블 잡고 바틀 하나 엔빵치죠.” “이 사람 삼거리도 처음 들은 것 같은데. 클럽은 가본 적 있어요?”

 가본 적이 없다고 답하면 왠지 무안해질 것 같았던 현석은 그렇다고 대답하고, 엉겁결에 그들과 ‘삼거리’로 가기로 했다. 이 충동적인 선택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들의 눈에는 그가 어수룩해보였는지, 남자들은 현석에게 쉬지 않고 말을 걸며 금새 친해진 척을 했다. 알고보니 남자들도 별로 친한 사이가 아닌 듯했다. 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 한 명을 중심으로 한 명은 그의 고향 친구, 다른 한 명은 그의 학교 후배라고 했다. 한껏 차려입은 차림새의 그들은 대로의 이쪽에서 늦게까지 술을 먹고 시간을 죽이다가 한창 클럽의 분위기가 뜨거울 때에 맞춰 대로의 저쪽, 그러니까 ‘삼거리’로 가려고 했었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들 모두가 현석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이 밝혀졌다. 남자들은 현석이 자신들의 또래 내지는 자신들보다 나이가 어린 줄로만 알았기 때문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은 처음 보는 골목골목을 누비며 어딘가로 빠르게 걸어갔다. 하나같이 현석보다 발걸음이 빨랐다. 그들의 꽁무니를 쫓다시피 남자들을 따라간 현석은 점점 사람이 붐비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남자들과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서둘러 걸을 필요가 있었다. 이 사람들의 발걸음이 원래 이렇게 빠를까? 그렇지 않을 것 같았다. 그들을 빨리 걷게 하는 동인이 있음이 분명했다. 그들로 하여금 마침내 도착한 삼거리의 수많은 클럽들 중 어느 하나의 입구에서 몇십 분이고 줄을 서서 전전긍긍하게 하는 긴장이 있었고, 그건 현석이 처음 보는 종류의 감각이었다.


 마침내 들어간 클럽은 요란하기 이를 데 없었다. 현란하고 강한 레이저가 허공을 이리저리 가로지르는 와중으로, 공간에 맞지 않을 정도로 큰 소리를 내는 우퍼 스피커에서는 거의 드럼 소리만 들리고 노래의 멜로디나 가사는 아주 지저분하게 뒤섞여 공간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틈바구니에서 격렬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그들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는 것은 꽤 힘든 일이었다. 클럽 가드의 안내를 받고서야 그들은 겨우 그들의 테이블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현석은 거의 들리지 않는 그들의 말을 겨우 알아듣고는 테이블에서 일어나 엉거주춤 움직이다가 사람들의 파도에 휘말렸다. 이러다가 넘어진다면 정말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센 인파였다.

 그들 사이로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던 현석은 벽쪽으로 향했다. 춤을 추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벽쪽에 서있었다. 그들은 외국인이었다. 숨을 돌리며 시끄러운 혼란을 관찰하던 현석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체격이 건장하고 눈빛이 이상한 라티노였다. 라티노는 그에게 뭐라고 말을 걸었는데 현석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두세 번을 반복해서 듣다가 바디 랭귀지까지 섞고 나서야 현석은 그가 함께 담배를 피자고 하는 것을 이해했다.

 라티노의 어깨 너머로 클럽의 구석진 곳에 담배를 피우는 백인과 흑인들이 있었다.

 “히어. 인조이, 아미고, 인조이!”

 라티노는 현석을 끌고 그들 사이로 갔다. 그들은 현석을 밝고 느긋한 눈웃음으로 맞으며 그에게 담배 한 개비를 권했다. 현석은 가끔 담배를 피웠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그것을 받고 불을 빌렸다.

 “윽.”

 그가 연기를 한 모금 빨아들이자 입안으로 역한 냄새가 퍼졌다. 현석이 당황하며 콜록거리는 모습을 본 외국인들은 모두 왁자하게 웃었다.

 “아미고, 굿? 굿?”

 “노 굿. 노 굿. 왓 이즈 디스?” 현석은 손사래를 치며 표정을 찌푸렸다.

 “퍼스트 타임? 노. 디스 굿! 굿!”

 라티노는 서툰 영어 실력으로 뭐라뭐라 계속 말했다. 집요하고 요란한, 권유로 추정되는 영어 문장을 들으며, 현석은 엉겁결에 한 모금을 더 피웠다. 두 번째는 맛이 나쁘지 않았다. 눅눅한 이끼 냄새 사이로 인센스 스틱의 그것 같은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께, 아미고? 께?” 라티노는 밝고 느슨한 웃음과 함께 알아듣지 못할 말을 했다. 흘러내리는 듯한 웃음이었다. 무슨 말인지 알 수나 있어야지. 그러나 현석은 왠지 그의 의중을 알 것만 같았다. 현석의 입가에서도 웃음이 실실 새어나왔다.

 “굿. 디스 굿.”

 그렇게 말하며 연기를 몇 모금 더 마신 현석은 허술하게 웃었다. 웃음은 확산했다.

 어느 순간엔가, 그들은 함께 놀고 있었다. 횡단보도에서 만나 함께 클럽에 온 어린 남자들과 고약한 냄새를 풀풀 풍기며 흐느적거리는 외국인들의 조합은 기묘하지만 재미있었다. 열 명 남짓한 그들은 위스키 바틀을 세 병이나 비우면서 급속도로 친해졌고 곧 클럽 한가운데에서 요란하게 춤을 추었다. 그 중심에는 현석이 있었다. 라티노가 가르쳐 준 스텝으로 템포에 맞지 않는 느긋한 움직임을 보여준 그를 보고 사람들이 웃으며 따라붙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 공간의 누구도 그 사실을 신경쓰지 않았다. 현석도 곧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취해서 춤 췄다. 웃기고 어이 없는 열기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혼미해졌다.


 새벽이 뭉근해졌다.


 밤은 끝나지 않았고, 불야성은 무너질 줄을 몰랐다. 그러다가 잠시 바람을 쐬기 위해 밖으로 나온 그들은 마침 흡연 장소에 있던 어떤 여자들과 어울려 담배를 피웠다. 시끄러운 곳에 있다 나왔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의 말이 잘 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담배를 나누어 피우며 계속해서 상대에게 말을 거는 그들은 즐거워보였다. 한 발자국 뒤에서 관찰하는 현석도 덩달아 즐거웠다. 그 시점에서 그는 자신이 피우는 것이 담배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한 여자가 한껏 해이한 발음으로 뭐라고 말하며 현석에게 다가왔다. 현석은 먹먹해진 귀를 그녀쪽으로 기울이며 애써 그 말을 알아들으려 했다.

 “뭐라고요?”

 “-가자고요. 술.”

 그녀가 큰소리로 말하고서야 현석은 여자의 말을 이해했다. 잠시 고민하던 현석은 그녀가 내민 손을 잡았다. 취한 상태에서 그는 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재미있어 보이는 여자가 손을 내밀었길래 잡았을 뿐이었다. 아까 주택가에서 본 광경을 떠올린 것 역시 부정할 수는 없었지만.

 테이블과 바틀의 비용을 남자들과 나누어 내야 한다는 사실은 그 시점에서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모르는 사람들이니까. 그리고 아마 그들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그들은 함께 걸었다. 산책하듯. 그런데 함께 걷는 동안 그녀는 차갑게 굳은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 마디, 정말 단 한 마디도 없었다. 덩달아 머쓱해진 그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잠시 잃어버렸던 침묵이 뜬금없이 등장했다.

 “친구들이랑 같이 왔어요?” 정적을 깨고 현석이 물었다.

 “친구들 아니에요.” 여자가 말했다. 아까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그녀의 말투는 생각보다 침착하고 건조했다.

 “그러면?”

 “클럽에서 만난 언니들. 같이 놀자고 하더라고요.”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그녀가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쪽은?”

 “나도 저 사람들 처음 봤어요, 횡단보도에서.”

 “그래보였어요. 그쪽, 아까 대마 피우던 외국인들이랑 더 친해보이더라고요.”

 “대마인 줄 알고 피운 거였어요?”

 “왜 이래요, 재미없게.” 함께 삼거리를 벗어난 그들은 산책 같은 템포로 걸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현석은 그녀가 말하는 ‘재미’가 뭘까를 고민했다. 그러나 알 수 없었다. 그러면 이 산책은 그녀에게 재미있는 걸까?

 “여기 자주 와요?”

 “그쪽은 이태원쪽에서 온 거예요?” 그녀는 질문에 질문으로 답했다.

 “왜요?”

 “옷.”

 “집에서 왔어요. 잠이 안 와서.”

 그녀는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그가 몇 번이고 주제를 제시해도 그저 어딘가로 걷기만 했다.  몇 분이고, 몇십 분이고.

 문득 현석은 그녀가 제정신이기는 한건지가 궁금해졌다. 대마를 너무 많이 피워서 그런지 그는 허공에 대고 말을 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대화의 맥락을 잡기가 어려웠다. 동시에 뭐라도 말은 해야 할 것 같았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정적의 책임이 그에게 지워져 있었다.

 “아까 오면서 거지들이 싸우는 걸 봤어요.”

 “아, 씨발. 존나 재미없네.”

 그 반응은 급작스러웠다. 난데없는 욕을 듣고 혼란스러워하는 현석을 내버린 채 여자는 어딘가로 홀연히 사라졌다.

 “아니, 뭔…… 씨발……” 허탈해진 현석이 중얼거렸다.

 제자리에 서서 한동안 머뭇거리던 그는 요의를 느끼고 근처의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러나 편의점 점원은 건물에 화장실이 없다고 말했다.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그는 그러려니하고 편의점을 빠져나왔다. 새벽까지 클럽에서 놀고 나온 이들의 요의를 모두 받아준다면 그 화장실은 하루도 못 가 배관이 폭발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편의점 옆으로 난 골목의 한구석에 가 노상방뇨를 했다. 동이 틀 기미가 보이자마자 리어카를 끌고 나온 한 노인이 그를 흘겨보며 지나갔다. 그와 우연히 눈을 마주친 현석은 시선을 굳이 피하지 않았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와 눈싸움을 하듯 시선을 맞췄다. 그러자 노인은 굳고 황망한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현석은 그가 자신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가 궁금해졌다.

 뒤늦은 피로가 오는 것을 느낀 그는 지퍼를 올리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 보니 밤사이 이만 보는 넘게, 아마도 삼만 보 남짓 걸은 것 같았다. 그는 택시를 탈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윽고 그냥 걷기로 했다.


 피곤에도 불구하고 정신은 선명해지고 있었다. 대마에 각성 효과가 있댔나, 없댔나. 긴가민가하던 현석은 휴대폰을 켰다. 배터리가 삼십 퍼센트로 줄어 있었고, 간밤에 전화가 몇 통 와 있었다. 전여자친구로부터 한 통, 고향 친구로부터 한 통, 모르는 번호로부터 두 통이었다.

 그는 전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발신음이 몇 번 들리더니 이윽고 스피커 너머로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나야.” 그가 말했다. “잘 지내?”

 “이 새벽에 무슨 일인데?” 그녀의 말투는 냉정했다. 그러나 무슨 일인지는 알고 싶어하는 듯했다. 아마도.  그가 기억하는 그녀의 화법에 따르면, 그랬다.

 “궁금한게 생겼어.” 잠깐의 간격이 있고 현석이 말했다. “몇 달이나 지나서 갑자기 묻는 게 미안해. 하지만 참을 수 없었어.”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었다. 그는 사실 별달리 할 말이 없었다. 다만 ‘그냥, 외로워서.’라고 말할 용기가 없을 뿐이었다.

 “알면서도 이러다니, 믿기지가 않네.” 그녀가 말했다.

 “미안.”

 “말해봐, 들어나 볼게.”

 “우리, 아직 친구야?”

 “뭐?”

 “친구로 지내자고 말했던 거 기억나?”

 그녀는 답하지 않았다.

 “그 말, 혹시 지금도 유효해? 그게 궁금해서 전화했는데.”

 “아니.” 그녀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혀.”

 “그래?”

 “그 말이 유효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넌 그 말이 진심이라고 생각했어?”

 “으응.”

 “멍청한 건지 순진한 건지 알 수 없네.”

 “진심이 아닐 이유도 없었잖아.”

 “정신 차려. 술이라도 마신 건지 모르겠지만 인정해. 우린 이제 남이야. 우리한테 옛날은 없는 거라고. 우리가 헤어진 그때부터 옛날은 없었어. 전처럼 또 무슨 피곤한 생각을 하나본데, 그게 뭔진 모르겠지만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 어른스러워지라고.”

 “어른스러워지라고?”

 “그래. 그리고 다신 나한테 전화하지 마.”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아까 그 여자만큼은 아니어도 역시 대화는 급작스럽게 끝나버렸다. 머쓱해진 현석은 머리를 긁적였다. 궁금해졌다.

 옛날이란게 그렇게 쉽게 없어지나?

 없어져도 되나?

 어른이 하는 행동이라고 모두 어른스러운 건 아닌건가? 내가 어른이 아니었던 건가?

 그렇다면 어른스러운 건 뭘까?

 어른이란 건 뭘까?

 어느 하나도 쉬이 답할 수 없는 문제들이었다. 도무지 머리가 굴러가지 않는 건 싸구려 대마의 기운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일 거라고 그는 애써 믿으려 했다. 분명 몇 시간 전까지는 이러지 않았다.


 핸드폰을 괜히 만지작거리던 그는 이번에는 모르는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그 번호의 주인은 첫 발신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마포경찰서 이정훈 경사입니다.”

 “경찰서요? 아까 전화주셔서 전화했는데요……”

 “아, 몇 시간 전에 연남파출소에 지하차도 관련해서 신고 문의 넣으신 분 맞습니까?”

 “네? 네.” 경찰서라는 말에 현석은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지레 겁을 먹었다.

 “다름이 아니라 해당 지하차도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해서, 그 시간대에 지하차도를 출입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예? 살인 사건이요?”

 “그렇습니다. 전화 주신 분은 지금 자택이십니까?”

 “아뇨, 밖인데요.”

 “용무가 바쁘시지 않다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저희 서로 출석하셔서 증언 부탁드리겠습니다.”

 “저, 저기요.” 당황한 현석은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혹시 얼마나 빨리 가야 하나요? 그러니까, 마포 경찰서……“

 “말 그대로 가능한 빨리 오셔야 좋습니다. 내일 중으로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혹시 안 가면 불이익이 있나요?”

 “안 오신다고요?”

 “네.”

 “혹시 오실 수 없는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좀 취해서…… 아, 마약은 아니고요, 절대로, 그냥 술 같은 거……”

 잠시 수화기 너머로 아무 말도 없었다.

 “……이제 막 접수된 건이라 출석 의무는 없으신데, 수사가 진행되고 정식으로 출석요구서가 발부됐을 땐 출석하지 않으시면 과태료를 물게 됩니다. 피의자로 지목되실 수도 있고요.”

 “진짜요?”

 “네.”

 “알겠습니다……“

 말끝을 흐리던 현석은 전화를 끊었다. 혹시나 다시 전화가 올까봐 휴대폰을 물끄러미 쳐다보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그는 그가 지하차도에서 본 것을 떠올렸다. 큰 걸인이 작은 걸인을 무자비하게 짓밟던 장면을 상기했다.

 큰 걸인이 결국 살인을 저지른 걸까?

 작은 걸인이 개미처럼 밟혀 죽은 걸까?

 아니면 작은 걸인이 구타를 참다 못해 반격해버린걸까?

 무엇으로 반격했을까?

 밀쳐서 머리를 바닥에 찧은 걸까?

 아니면 칼로 찔렀을까?

 망치로?

 그는 수많은 가능성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가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당장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대마 기운이 완전히 가시고 흔적이 사라지기 전에 경찰서를 가는 건 미친 짓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있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사람이 죽었다. 현석의 상식으로는 그건 큰일이었다.

 사실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혼미했다. 마냥 대마때문은 아닌 듯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제자리에서 전전긍긍하던 현석의 전화가 또 울렸다. 그는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 혹시나 경찰서에서 온 전화일까봐서였다.

 “여, 여보세요?”

 “여보세요? 자냐?” 다행히, 전화를 건 것은 현석의 고향 친구 영인이었다. 현석은 까닭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아, 아니. 안 자.”

 “딸딸이 쳤냐? 왜 이렇게 당황한 목소리야.” 영인이 놀리듯 말했다.

 “뭐래. 왜 전화 했어?”

 “아, 다른 건 아니고. 다음 주에 서울 올라간다고.”

 “서울? 왜?”

 “나, 취업 됐다. 문래역쪽에 있는 회사야. 다음 주 목요일부터 출근이야. 그래서 방을 알아보러 다녀야 하는데, 그전까지 혹시 며칠만 네 집에서 신세 좀 질 수 있나 해서.”

 “당연하지. 얼마든지 지내. 축하한다야.”

 “고마워. 서울살이 선배랑 며칠 붙어 살면서 서울살이 좀 배워야겠다.”

 “서울살이?”

 “응. 너 서울 올라간지 얼마나 됐지?”

 “한 이 년 됐나? 기억이 안 나네.”

 “이 년이면 여기저기 다녔을 거 아냐? 나도 좀 데리고 다녀줘. 자취방도 같이 봐주고. 부탁할게.”

 현석은 갑작스러운 영인의 소식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캥키듯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영인에게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의 생각을 절제해서 표현할 이유는 없을 듯했다.

 “……그런데 말야.” 그래서 현석은 영인의 말을 도중에 끊고 말했다. “나, 잘 모르겠다.”

 “잘 모른다고? 뭐가?”

 “서울살이 말이야. 서울에서 산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왜 서울에서 굳이 살아야 하는지…… 생각이 너무 복잡해. 요새 온갖 생각을 다 하고 살아. 오늘은 이상한 일도 많았어.”

 “너 취했냐? 갑자기 무슨 말이야.” 영인의 그 말은 사실이었다. 현석은 어느 순간엔가부터 대화를 하고 있지 않았다. 그의 언술은 단지 방백이었다.

 “잠이 안 와서 걸었는데, 실수였던 것 같아. 서울에서 말야, 너무 많은 걸 본 것 같아. 살면서 처음 보는 것들. 살면서 처음 겪는 일들. 그런 것들이 서울에 있는 전부야.”

 영인은 말이 없었다. 현석은 개의치 않고 말했다.

 “언젠가 스노클링을 갔던 꿈을 꿨어. 그땐 모든 게 좋았어. 모르는 물고기도 많고 모르는 산호도 많지만 그냥 그게 다 좋았어.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여기에 있는 내가 모르는 것들이 나는 좋지 않아. 알 수 없는 이상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 세상에. 여기 올라오기 전까진 이곳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


 “……많이 힘드냐?” 한동안 가만히 그의 말을 듣던 영인이 말했다. “너도 힘든게 많았나보네. 말하지 그랬냐.”

 영인의 말에 정신을 차린 현석은 얼굴이 화끈해졌다. 방금까지 자신이 무슨 말을 했던 건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서였다. 말을 주워담고 싶어졌다.

 “올라가면 술이나 먹자. 그래도, 임마, 서울에서 살아야지 어떡하겠냐. 취직해서 먹고 사려는데 이 밑에서 계속 살 순 없잖아.” 영인이 다정하게, 다독이듯 말했다.


 현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문득 돌이켜보니 오늘 밤 내내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런데 무엇에 나는 수긍하고 있는 건가.


 어느새 동이 트고 날이 밝았다.

 도시의 구석구석을 햇빛이 어루만지면 새벽이 가시고 없었다. 새벽에 몸을 내맡기던 이들도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도시는 다시 평소의 모습대로 돌아갈 것이다. 현석은 의미를 알 수 없는 그 사실이 감사했다. 아마도 괜찮았다. 어차피 뜻 모를 것들로 이 도시의 밤이 가득 차 있었다. 추위도, 무심함도, 노래도 몸짓도 대화도.


 그가 알 수 있는 것은 그 사실 뿐이었다.


 현석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가서, 몸을 씻고, 푹신한 침대에 누워, 누군가가 자신을 짓누르는 꿈을 꾸지 않으며 깊은 잠을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럴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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