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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화 Oct 12. 2021

괴성을 지르며 퇴근하는 남자

 저희 집은 대기업 근처에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큰 도로를 사이에 마주 보고 있어요. 회사와 가까워서 그런지 아파트에는 그 회사 직원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가, 누군가의 아빠가 다니는 회사라서 건너 건너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됩니다. 그래서 알게 되었습니다. 선망의 대상인 대기업에서의 생활이 많이 힘들다는 사실을요.


 처음 이사 와서 며칠 안 지난 새벽이었어요. 밤 12시를 넘어 새벽 1시가 다 돼가는 시간이었습니다. 평소보다 더 조용한 시간이잖아요. 그때 갑자기 큰 괴성이 들렸습니다.

 '으악~~~!'

 '아~~~~악!'

 '아~~~~~~~~~~~~~~악!'


 별의별 상상을 다했습니다. 누군가 괴한을 만났나. 어느 집에서 싸움이 났나. 정신 나간 사람이 돌아다니나. 10분 동안 나던 괴성은 조용해졌습니다. 그런데 그 괴성 소리는 그날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일주일 뒤에 괴성이 또 들리더라고요. 그날 창 밖에서 소리의 근원지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집 앞에 위치한 큰 회사의 정문을 나온 한 남자였습니다.

 회사 밖을 나오자마자 괴성을 지르기 시작합니다.

 정신 나간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와의 싸움에서 나오는 괴성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회사에서 열심히 일한 아버지가 퇴근하며 토해내는 절규였습니다.


 괴성이 들리는 시간도 참 늦은 시간이에요. 밤 12시나 새벽 1시쯤 들리니까요. 일이 항상 많은 큰 회사는 늦게까지 일한다고 들었습니다. 주말도 없고요. 월급이 많아서 선망의 대상이 되기는 하지만, 그만큼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다고 합니다.  


  이곳에 이사 온 지 1년이 다 돼가는데, 잊을만하면 들립니다. 한두 번의  짧은 괴성으로 끝날 때도 있고, 10분 이상 지속될 때도 있습니다. 저희 집과 회사 사이에 위치한 넓은 도로에 차량이 많을 때는 차 소리와 크랙션 소리로 괴성 소리가 묻힐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들립니다. 차 소리보다 더 또렷이 한 남자의 괴성 소리가 들려요.


  소리의 근원지는 알게 되었지만, 괴성이 들릴 때면 계속 상상을 하게 됩니다. 얼굴도 모르고 어렴풋한 실루엣만 아는 한 남자의 괴성 소리로 한 인간의 삶을 계속 상상하게 돼요.   

 

 얼마나 힘들지 가늠도 안 됩니다. '힘들면 그만두면 되지 않나.'라는 생각도 감히 못하겠어요. 한 가장의 무거운 책임감을 조금은 아니까요. 사회적인 이슈는 안 됐지만, 일에 대한 스트레스로 잘못된 선택을 한 사람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학업을 끝내고 선망의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좋았을까요. 회사를 다니는 지금도 주위에서는 부러움의 시선을 보낼 거예요. 하지만 정작 본인은 불행합니다. 월급날에 잠깐의 위안은 받겠지만, 그때뿐이에요. 그런데도 계속 똑같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틀에 박힌 삶에서 벗어나 멋진 삶을 삽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텔레비전이나 책에서만 봤습니다. 제 주위에는 없어요. 세상에는 보통 사람이 더 많으니까요. 저도 특출 나지 않은 그냥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서 괴성을 지르는 한 남자에게 '그렇게 괴로우면 때려치워'라고 말을 섣불리 못 하겠어요. 오죽하면 그렇게 힘든데도 계속 회사에 다니면서 일을 하겠어요.  


  저희 부부도 인생 짧으니 좋아하는 일을 찾자고 큰 결심은 했지만, 아이들과 기본적인 생활은 영위해야 하기에 세상과 타협했습니다.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만족하고, 하기 싫은 일이더라도 우선은 돈을 벌어야 되겠더라고요.


 어젯밤에도 괴성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제는 짧게 한 두 번 토해내는 짧은 괴성이었지만, 소리를 지름으로써 조금이라도 마음의 돌덩이가 덜어졌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저희 집과 큰 회사의 사이에 있는 인도가 인적이 드물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퇴근하는 남자가 마음껏 소리라도 지를 수 있으니까요. 저희 집과 큰 회사의 사이에 있는 도로가 넓고 차량이 많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남자의 괴성 소리가 차 소리에 묻혀서 시끄럽다는 민원이 있지 않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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