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나타나는 이너비전(inner vision)
이전 연재글에서 명상할 때 나타나는 이너비전에 대해 살펴보았으니, 이번에는 일상생활 중에 나타나는 이너비전에 대해 살펴볼까 합니다. *공감각적 기능이 유달리 발달한 유형은 명상 중이 아닐 때도 이너비전 현상을 경험합니다. 또는 *초감각적 지각 기능으로 물리 감각을 넘어서는 인지작용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발달한 기능으로 인해 일반적으로는 잘 감지하지 못하는 감각 정보들을 인지하며 다채로운 정보를 수용하게 됩니다. 다만 이런 상태가 필요에 따라 다스려지지 않고 통제를 벗어난 상태로 지속되면 또 다른 고통의 요소가 됩니다. 아래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 공감각: 오감 중 한 감각 기관에 자극이 일어날 때 다른 감각 영역을 함께 지각하는 현상
* 초감각: 텔레파시, 예지, 투시, 심령 능력 등을 포함. 오감 작용을 통하지 않고 인지하는 감각 현상
case 1. 당신의 색깔이 보여요.
음악형 영재들 중 소리를 들으면 동시에 색깔을 인지하는 유형이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영재로 키워지지 않았더라도 분명 공감각적 기능이 발달한 유형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에게는 그런 감각이 당연하기 때문에 어려서는 특별한 줄 모르다가 성인이 되어서야 공감각 능력이 있음을 알아차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간혹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의 정보 부족과 지나친 오해로 인해 문제적 성향으로 인식되어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경우도 있죠. 한 내담자는 후자에 해당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내담자의 공감각 능력을 이해하지 못했고, 내담자 스스로도 그런 시선에 익숙했습니다. 때문에 이 능력을 잘 개발하거나 다스리지 못하고 방치해 두었습니다. 그렇게 성인이 된 후에는 방치된 공감각 능력이 제멋대로 기능하여 어려움을 겪게 되었죠.
내담자는 타인의 내면적 특성을 쉽게 파악하고, 그것을 색깔로 인지했습니다. 생명기능을 하는 모든 존재들은 고유한 열기를 지니며 미약한 전자기 작용을 일으킵니다. 우리가 스마트폰 터치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죠. 내담자는 이런 생명 기능을 예민하게 파악하고, 더 나아가 색깔 정보로 치환해 인지하는 유형인 듯했습니다. 문제는 이 기능이 수많은 대중이 모인 공간에서도 매우 예민하게 작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인구가 밀집된 도심에서는 전자기기의 전자파와 더불어 불필요하게 인지되는 정보가 너무나 많습니다. 따라서 이렇게 예민한 감각을 지닌 사람이 살아가기에는 불편함이 많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해가 갈수록 내담자의 이 능력은 고통스러워졌고, 대인기피 증상까지 생겨 사회생활에도 큰 문제를 겪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유형은 필수적으로 명상을 통해 마음의 힘을 키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중에서도 알아차림 명상이 좋습니다. 마음의 유용한 기능 중 ‘사띠(sati)’는 예리한 분별의 힘입니다. 이 힘은 예민한 감각을 지닌 마음에 균형을 갖춰줍니다. 예민함은 예리함으로 발전되죠. 다소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지만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입니다. 허리 디스크 환자들이 척추 근육 운동을 통해 지탱할 힘을 얻듯이 마음도 비슷합니다. 공감각 능력은 큰 축복입니다. 다만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재능이 되기도 하고, 고통의 요인이 되기도 하는 것뿐입니다. 내담자는 명상 수행과 개인 인터뷰를 통해 마음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을 견뎠습니다. 이후 안정을 찾게 되었고, 불편하기만 했던 능력을 유용하게 활용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담자의 얘기 중 기억에 남는 내용을 적어봅니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일부 표현을 각색했으며, 표현적 유사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매 순간 보였다. 유용한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순간에는 고통으로 작용했다. 차라리 몸에 붙은 혹이었다면 수술을 통해 떼어내기라도 했을 텐데, 마음이 하는 일이기에 떼어낼 수도 없었다. 그렇게 고통을 끌어안고 살다가 문득 스스로를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았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 기왕 있으니 잘 가꿔보았으면 좋았을걸. 한참 힘들고 나서야 달리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설고 싫기만 했던 감각이 축복과 기회가 되던 날, 비로소 그것이 사랑임을 알았다.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모든 것은 달라진다. 내가 이런 기능을 갖추고 이곳에 온 이유는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함이었다. 더 이상 두려움은 없다. 온전한 알아차림이 나의 마음을 지탱한다. 누군가 자신의 특별함을 고통으로 알고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그것을 고통으로 여기면 영영 고통이지만 사랑으로 바라보면 온 우주가 당신을 위해 존재하게 된다고.
당신이 언제나 영적으로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삶의 피할 수 없는 고통과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인내심과 용기를 지닐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용서와 사랑, 알아차림과 지혜로 늘 평온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