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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이혼은

이혼은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일이다.

by 김정희

이혼은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일이다.

나의 사랑이, 나의 결정이, 그 동안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것을,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시인하는 일이며, 겉으로는 화려해 보였던 나의 결혼 생활도 실상은 전쟁 통이었다는 것을 고백하는 일이다. 한때는 그 사람이 아니면 죽을 것 같았는데, 이제는 그 사람만 아니면 살 수 있다는 어이없는 모순을 인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와는 그 어떤 대화나 화해나 조율도 모두 실패했다는 것을 가슴 깊숙이 받아들여 야하는 일이고, 이런 어렵고 힘든 결정을 하고 났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따가운 시선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사실, 모두들 내 편이 되어 줄 줄 알았다. 나의 부모이고, 형제고 자매였으니까.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현실은 내 피붙이건, 친구건, 모두들 나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망했구나. 이제 더는 볼일이 없겠구나. 너로 부터 얻어 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겠구나, 혼자서? 위자료도 없이 이혼을 했다고? 현실을 정말 모르는구나. 미친게지.


그렇게 서서히 친형제로 부터도 멀어지고, 친구로 부터도 멀어지고, 오롯이 혼자가 된다. 어쩌면 마지막 남아 있는 내 자격지심인지도 모른다. 그들 가정은 모두 행복한데 나만 불행한 것 같고, 그들에게 이혼 이야기를 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혼한 이유를 상세하게 설명하다 보면 그들도 힘겨워하거나 이해 하지를 못한다.


따뜻한 위로의 말과 격려 같은 건 처음부터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막상 이혼을 하고 나니 아무도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냐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어쩌면 그 동안 내가 강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위로 따위는 필요 없는.


그러나 위자료를 꽤나 많이 받아서 그래도 넉넉한 이혼녀라면 모를까, 빚을 안고 몸만 달랑 나온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던 것 같다. 형제도 처음엔 동정심으로, 가족이었으니까 위로하는 듯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내 철저하게 계산하고 등을 돌렸다. 아니, 내가 먼저 연락을 끊고 등을 돌렸다. 구질구질해서였다.

예전이나 한 가족이지, 이제 형제들 모두 독립해서 각자의 가족이 있는데 어떤 식으로든 짐이 되기 싫었다. 서로 각자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던 가족에게 비참했던 내 결혼 생활을 모두 알린다는 것은, 나의 정당성을 이해 받으려는 시도보다도 더 비참한 일이다.


기껏 용기 내어 이야기를 해 봐야, 잘 알지도 못하는 내 결혼 생활이 틀렸다고 그들은 쉽게 이야기한다. 그때 네가 이런 건 잘못한 것 같다 라는 어쭙잖은 충고를 들어야 하고, 위로의 말보다는 좀더 참지 그랬냐는 핀잔을 듣기 일수이니까.


이제 와서 이혼해서 네가 뭘 할건 데라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참는다고 해결이 되지 않는 상황들을 그들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었고, 그들의 행복한 가정에서 나는 돌연변이 혹은 외톨이처럼 유별나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가정은 평온하며, 남편이나 아내는 상대방의 의견에 따르며, 아웅다웅 하더라도 최소한 가정에는 성실하기 때문이다.


무리 없는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나의 결혼생활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나라의 이야기가 되고, 왜 그 지경까지 방관했느냐고, 도대체 그 지경이 될 때까지 너는 무엇을 했느냐고……어이없는 질타가 시작된다. 결코, 그들만큼 참지 못해서 혹은 노력하지 않아서 이혼을 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비난의 화살을 제일 믿고 의지하던 가족들에게 또 한 번 맞는 것이다.


상처.

이루 말 할 수 없이 깊고, 예리하고, 아프다. 아이가 있어서 누가 양육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순간이 오면 과연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자괴감에 몇 날 며칠을 불면으로 지새우면서도 오직 고통스러운 것은 나라는 점에 한계에 다다른다.


나 혼자만의 아픔이 아니라, 내 목숨 줄인 가장 사랑하는 아이에게 이런 트라우마를 안겨준다는 것에 대한 심한 죄책감은 끝끝내 결정을 주저하게 만들기도 하고,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이런 가정이 되리 라 고는 상상도 해 본 일이 없었던 일이었기 때문에 결정은 쉽지 않았다.


이혼을 한 사람들이 아이에게 소홀했다 거나, 본인의 이기를 먼저 생각했다는 것은 정설이 아니다. 내온 삶을 다 소진하더라도 아이만큼은 상처 주고 싶지 않았다. 견디기 힘들고 참기 힘들어도 이를 악 물고 버텼지만, 상대방은 이런 연약한 부분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 나약한 부분을 칼로 베듯이 날카롭게 찌른다.


‘네가 뛰어봐야 벼룩 아니겠어? 혹은 ‘넌 그 정도 밖에 안된다는 걸 내가 알아!’ 혹은 ‘그래서 뭘 어쩔 건데’ 라는 식으로.


삶의 끈을 놓아 버리는 사람이 한 순간의 감정이나 경박함으로 삶을 내려 놓지 않듯이, 이혼 또한 목숨 걸고 지키고 싶었던 아이의 삶과 소중한 내 가정, 치열한 내 삶을 이혼이라는 그 소용돌이 속에 집어넣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다.

지키고 싶었지만, 지킬 수 없었을 뿐.


이기적이어서 이혼을 하는 게 아니라 이혼 밖에 답이 없어서 이혼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먼저 죽을 것 같아서 이혼을 하고. 극한까지 다다랐을 때, 이대로 가다 가는 자살할 것 같다. 내가 먼저 목숨줄을 놓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들면, 최후의 순간 이혼을 선택하는 것이다.


반면에 이혼의 다른 한 면은, 이혼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혼을 당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이혼은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서 그렇다. 두 사람의 결정이기에 어떤 이는 억울하게 이혼을 당하기도 한다.


부인이 외도를 하고 집을 나갔다.

‘이젠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이혼하자’라고 한다면

그런 사람을 붙잡아야 하는 걸까? 아니면, 붙잡는다고 붙잡아지는 걸까?

외도는 계속되고 오히려 당당하며, 죄책감도 없다. 그것을 참고 견디고 있는 사람을 비웃고 멸시한다.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괴롭힌다. 당신의 모든 면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처음부터 이런 결혼은 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당신 같은 사람을 만나서 내 인생은 망했다고 이야기를 한다.


이혼을 요구하거나 이혼을 당하거나, 이혼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필연인 것 같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결정이라니…… 나 혼자만이 결정할 수 없는 인생 최대의 시련이 시작된다.

정말 아이러니 하지만, 이혼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혼을 요구하기도 하고, 이혼을 당하기도 한다.


남편의 외도. 언어적 육체적 폭력. 경제적 파산.

혹은 아내의 외도와 가출. 내가 친부가 아니라는 DNA 검사 결과. 이런 사실을 알고도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는 없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기가 막힌 일들이 생각보다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어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이도 하고 내 주변의 이야기이도 하다.


한 인간으로 태어났고, 온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랐고, 무리 없이 공부하여 대학에 들어갔고, 회사에 들어가 열심히 일하고, 무엇보다 인간은 평등하다고 배웠는데, 존중받아야 할 배우자에 대한 태도는 그 어디에도 없고, 나는 열심히 살면 살수록 그에게 이용당했다는 걸 알아 차리고 나면, 아픈 현실을 견디고 견딘 나에게는 피폐해진 영혼만이 남고 그 어떤 보상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제 그만 관계를 놓아 버리고 싶어지는 것이다.


살기 위해 이혼을 한다.

살기 위해서 이혼한 것은 결코 죄가 아니다. 이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이 될 수는 없다. 최후의 방법이 이혼이라면 더 늦기 전에 결정을 내리라고 말하고 싶다.


한번 죽음의 문턱을 넘어 본 사람으로 용기 내어 글을 쓴다. 아직까지 내 주변에는 이혼으로 너무나 힘겨워 하는 친구들이 많고, 그 문제로 죽을 것 같이 고통스러운데도 이혼하지 못하고 불행한 결혼 생활을 지속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에 글을 써내려 갔다.


이혼해도 괜찮다.

차라리 이혼하고 나면, 적어도 죽고 싶지는 않다.

고통스러운 결혼 생활이라면, 타인이나 아이들보다는 자신을 더 들여다 보라고 말 하고 싶다. 내가 살아 있어야 다음이 있는 것이니까.


그리고 어수선했고, 고통스러웠던 지난 5년.


나는 이제야 정상적인 사람처럼 평범하게 살게 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온통 불면의 나날이었고, 고통스러워 정신과를 찾았던 나는 이제 잘 먹고, 잘 잘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 되었다.


이혼해도 죽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 오히려 새로운 인생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결혼에 실패했다고 해서 삶이 끝난 것은 아니라, 지금 보다 더 나은 새로운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 하고 싶다.


어둡고 긴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손 전등 하나 없이 더듬거리며 앞으로만 나아갔다. 두렵고 무서웠던 시절. 희망도 없고, 절망도 할 수 없었던 시절.


지금 당신도 그 터널 속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두렵고 떨린다면, 그 터널을 먼저 빠져나온 사람으로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싶다. 당신이 조금이라도 그 상처에서 훨씬 더 빠르게 벗어날 수만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당신에게 많은 이야기를 수 있을 것 같다.


힘내시라고. 이혼은 생각보다 괜찮다고. 다 지나간다고.


‘이혼해도 괜찮아요. 이혼해도 이전보다 더 잘 살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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