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집으로

유부녀의 캐나다 스타벅스 워홀 [完]

by 꿈뀨

[完] 집으로


“에릭! 잘 있었어요?”

단골 고객 에릭 보니

반가움 반, 씁쓸함 반으로 마음이 가득 찼다.


“꿈뀨! 나야 잘지내지!

오늘도 에너지 넘치는 모습이 보기 좋구나!”


에릭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에릭, 저 이제 집으로 돌아가요.

항상 제게 다정히 대해주셔서 감사했어요.

이 말 꼭 드리고 싶었어요”


“오우.. 꿈뀨..”

에릭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의 푸른 눈.

내가 실수를 해도 자상히 바라봐 주던

저 푸른 눈이 그리울 것 같다.


“나는 캐나다에 너가 평생 머물 줄 알았다만..”

에릭의 말속엔

아쉬움과 갑작스러움이 공존했다.


“캐나다가 맘에 들지 않는 거니?”

걱정스러움이 가득 담긴 물음이었다.


“캐나다는 너무 좋은 곳이에요.

저는 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에요.

캐나다에서 좋은 추억을 가득 안고요.”


진심이었다.

1년 동안 캐나다에 머무는 순간,

한순간도 후회스러운 적이 없었다.


매 순간이 행복했고,

매 순간이 감사했고,

매 순간을 사랑했다.


인생을 사랑하는 것이

이런 기분이란 걸 배우는 순간이었다.


“그래..

캐나다가 너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는다면

나야 너무 기쁘구나.

한국으론 언제 돌아가는 거니, 얘야?”


“내일이요.”


내일이다.

믿기지 않는 마지막 날이 내일로 다가왔다.


“어어??

출국이 내일인데 지금 여기서 일하고 있는 거니?!”


믿기지 않다는 표정의 에릭을 보고,

싱글 웃었다.


“여기서 일하는 순간이

제일 행복해서요.”


내 옆에서 에릭과 나의 대화를 듣던

아떼가 조용히 눈물을 닦았다.


“꿈뀨, 나 눈물 나게 하지 좀 마”

아떼가 나를 원망스럽게 쳐다봤다.


그런 아떼를 보며 에릭이 씩 웃었다.


“너가 여기서 일했기에,

내가 스타벅스에 오는 게 참 행복했단다 얘야.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너는 다 잘 될 거란다.

행운을 빈단다.”

따뜻한 에릭의 마지막 인사였다.


“올라!! 세뇨리따!”

남미 출신인 사라 아주머니는

짙은 남미 억양을 가지고 있었다.


매주 스타벅스에 와서

항상 쉐이큰 티를 트렌타 사이즈 주문하는 사라 아주머니는

항상 간단한 스페인어를 가르쳐 주며

나보고 항상 ‘스마트 걸’이라고 해주었다.


“아가, 너에게 주고 싶은 게 있단다.”


사라 아주머니가

무언가 쓰윽 들이밀었다.


“이게 뭐예요?”


포장지를 벗겨보았다.


30구짜리 페레로 로쉐였다.


“너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서?

디에고가 말해 줘서 알았다.

왜 진작에 말해주지 않았니..?

아줌마 서운했다.”


눈물이 가득 찼다.


“제가 말하면서 울까 봐요..

울까 봐 말 못 한 거예요”


눈을 가득 채운 눈물방울이 볼을 타고 흘렀다.

이내 내 눈은 또 눈물로 앞이 가려지고 말았다.


“이럴까 봐..

제가 차마 말을 못 했어요..”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참.. 일하는 와중에 우는 나도 주책인 듯싶었다.


“아가.. 너는 마음이 참 따뜻해서

보는 내가 기분이 다 좋았단다.

어딜 가든 지금처럼만 하렴.

항상 응원하고 있을게”


사라 아주머니의 따뜻한 말들에

눈물이 펑펑 터졌다.


“아디오스, 사라.”

사라 아주머니가 가르쳐 준

스페인어로 작별 인사를 했다.


“아디오스, 꿈뀨”


- 꿈뀨!! 오늘 출국 날이지!

너에게 줄 게 있어!'


마지막 날, 아침.

방을 정리하고 있는 와중

이사벨에게 문자가 왔다.


- 나 지금 너네 집 앞이야!

내려와 꿈뀨!


이사벨이 집 앞까지 차를 끌고 왔다.

차에서 내리는 이사벨에게 달려갔다.


“이사벨!! 아침부터 이게 무슨 일이에요!"


“너 오늘 가는 날이잖아!!!!”


이사벨이 나에게 선물 박스를 건넸다.


“이사벨…”


이사벨을 꼬옥 안았다.


“헤어지는 건 언제나 쉽지 않다. 그치?”

이사벨이 훌쩍였다.


“너무나도 그리울 거예요. 이사벨”

다시 한번 눈물이 터졌다.


“이사벨,

그때 그날, 날 고용해 줘서 고마워요.

덕분에 제가 너무 행복했어요.

제게 기회를 주어서 너무 감사해요”


“나야말로,

우리 가족이 되어주어서 너무 고마워”

이사벨이 나를 꼬옥 안아주었다.


“보고 싶을 거야, 꿈뀨”


“자기!! 뭔 짐이 이렇게 많아?!”

케이트가 차 트렁크에

내 캐리어를 구겨 넣으며 말했다.


반차까지 내고 와서

공항까지 데려다주는 케이트가

너무 고마웠다.



“내 옷은 거의 없고,

그냥 가족들 선물 줄 거ㅋㅋㅋㅋ”

캐리어 2개를 들고 가는데,

그중 하나는 정말 선물만 그득한 캐리어였다.


“아주 그냥 가족들 곁으로

돌아갈 생각에 신났구먼?"

케이트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럴 리가..

내 캐나다 가족들은 여기 있는데..”


진심이었다.

캐나다에 1년 머무는 기간 동안,

내 친구들은 내 가족들이 되었다.


다시 캐나다에 돌아간다면,

그 이유는 그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 맘이 편할 리 있나…”

진심을 한숨처럼 내뱉으니

케이트가 꼬옥 안아줬다.


“마지막으로 스타벅스에서

음료 하나 사들고 가자!”


“꿈뀨!!!”


디에고, 페라, 크리스, 아떼, 찰리, 제이가

나를 반겼다.


“다들! 아침 일찍부터 와 있던 거야?!”


“마지막 인사는 해야지!”


본인 근무시간보다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

눈물이 찼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한 명 한 명 꼬옥 안으며

작별 인사를 했다.


“꿈뀨, 그동안 너무 고마웠어.

너는 최고의 바리스타였어.

우리 모두가 널 그리워할 거야.”

크리스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참나.. 크리스가 울 줄이야.”


모두들 어이없어했다.


“꿈뀨, 빠른 시일 내에 돌아와.”

아떼 또한 울면서 나를 꼬옥 안아주었다.


“모두들 고마워!!”

케이트, 찰리 그리고 제이와 함께 차에 오르며

손을 힘껏 흔들었다.


내가 마지막까지 일했던 이 매장.

이곳이 많이 그리울 거다.


“잘 갈 수 있지?”

공항까지 마중 나온 찰리가 물었다.


“당연하지. 내가 애도 아니고.”


“넷플릭스에서 영화 좀 다운받아 놨어?”

제이가 옆에서 거들었다.


“5편이나 다운 받아 놨어!

이거 각 2시간짜리라 비행 내내 다 못 볼걸?”


“15시간 비행 동안 몸 안 굳게

스트레칭 잘 해주고..”

케이트가 내 옷을 여며주며 말했다.


“알았어. 팔다리 수시로 펴줄게”


“가.. 비행시간 다 와간다.”


“알았어.. 나 이제 가볼게..”

출국장 쪽으로 몸을 옮겼다.


“얘들아…”

눈물이 또다시 앞을 가렸다.


“으휴, 오늘 아침에만 벌써 몇 번을 우는 거야”

케이트가 내 등을 토닥였다.


“또 만나자, 우리.”

찰리가 나를 꼬옥 안아줬다.


“한국에 들릴게, 꿈뀨.”

제이도 나를 안아줬다.


“한국에서 보자, 자기.”

케이트가 마지막으로 나를 안았다.


캐나다 처음 왔을 때,

마중 나온 이 하나 없던 이 공항..


떠날 땐

배웅 나온 사람들 속에 안겨 떠나는 곳이 되었다.


마중은 없었지만,

배웅은 만들었던 1년이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다.


경력 4년 차,

퇴사하고 왔던 용기.


결혼 2년 차,

남편 두고 워홀 왔던 용기.


워홀 2.5일차,

스타벅스 매장 다짜고짜 찾아가 인터뷰 요청했던 용기.


단골 고객 영수증에

이름, 주문 메뉴 적고 외웠던 노력.


그날 실수했던 음료들은

직접 주문해 보고 복습했던 노력.


흔한 영어 이름들 다 적어놓고

스펠링 연습했던 노력.


스몰톡 한다고 상황극 적고

혼자 연습했던 노력.


이렇게 나의 용기와 노력들이 모여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가족, 친구 하나 없던 외국인 여자애.


영어가 서툴던 동양인 여자애.


그렇다고 카페 경력이 있던 것도 아닌 여자애.


그런 애가

하나의 팀에 들어와서

팀원들과 스며들고, 정을 나누고, 인정받기까지..


캐나다에서 1년은

많은 걸 이루었고,

한층 더 성장했다.


“유한한 인생에 무한한 경험을 선물해 주는 것.

그래서 살아가는 동안에

내 가능성을 내가 알아보고,

내가 최대한 펼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 워홀 가던 날 일기장에 남겼던 기록



이렇게 난 다시 한번

내 삶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었다.


“여보!!!”

따뜻한 그의 품에 폭 안겼다.


그의 손에는 꽃다발이 들려있었다.


7년을 열애하며

그에게 받는 두 번째 꽃다발이다.


한 번은 내 대학 졸업식 때.

그리고 지금.


“뭐야! 이게!!!”


꽃다발을 안겨 받고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그이 얼굴을 바라봤다.



“고마워”


단순히 꽃다발이 고마운 게 아니었다.


내 모든 도전의 시작은

이 사람이 있기에 쓰여질 수 있다.


내가 타지에서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던 이유는

이 사람의 지지와 응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람은

내 인생의 자랑이자, 사랑이었다.


이 사람은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주는 사람이었다.



“가자, 집으로”


소중한 추억을 가득 안고,

사랑하는 내 사람과 함께

집으로.



[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남의 집 귀한 자식이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