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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시대에 글쓰기를 고집하는 이유

2025년 8월 4일 월요일의 기록

by 그라데이션

도파민 중독의 시대에서

글로 써진 컨텐츠 고집하기


사람들이 나에게 유튜브를 권하는 일이 자주 있다. "글을 이렇게 잘 쓰는데 영상으로 만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볼 텐데", "요즘 시대에는 영상이 대세잖아요"라는 말을 듣는다. 내가 쓰는 글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영상 콘텐츠는 안 하냐는 말도 많이 한다. 또한 콘텐츠 자체로 돈을 더 벌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쉬운 마음에 추천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영상 콘텐츠가 텍스트보다 더 많이 소비되고 있고, 수익화도 더 쉬울 수 있다.


나는 글쓰기 자체를 좋아한다. 영상을 만드는 것보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얻는 만족감이 크다. 생각을 정리하고, 문장을 다듬고, 논리를 구성하는 과정이 즐겁다. 글쓰기는 나에게 단순한 콘텐츠 제작 수단이 아니라 사고하는 방식이고 표현하는 방법이다.


게다가 묘하게 영상에 내 얼굴이 나오고 내 목소리가 나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다. 꼭 직접 나올 필요 없는 콘텐츠도 많지만, 글을 쓰는 속도보다 영상 콘텐츠를 고민해서 만들고 업로드하는 속도를 고민해봤을 때도 글이 훨씬 빠르게 써지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이다.




빠르게 소비되는

정보에 길들여지는 위험함


영상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생각이 얕아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짧은 영상들이 끊임없이 흘러가면서 깊이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15초, 30초 분량의 숏폼 콘텐츠에 익숙해지다 보면 집중력도 그에 맞춰 짧아진다. 긴 글을 읽거나 깊이 있는 내용을 소화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빠르게 소비되는 정보에 길들여지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표면적인 정보만 습득하고 넘어가는 패턴이 반복되면 사고의 깊이가 얕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복잡한 주제나 미묘한 감정을 다룰 때는 영상보다 글이 더 적합하다고 느낀다. 영상은 시각적 임팩트는 강하지만, 섬세한 뉘앙스를 전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글은 독자가 자신의 속도로 읽으면서 생각할 시간을 준다. 중요한 부분은 다시 읽어볼 수 있고, 필요하면 멈춰서 곰곰히 생각해볼 수도 있다. 이런 능동적인 읽기 과정에서 더 깊은 이해와 사색이 가능하다. 영상 시대에 역설적으로 글의 가치가 더 부각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쓰면서 정리되는 생각,

나중에 다시 읽는 기록의 힘


글쓰기가 주는 생각 정리의 힘과 기록의 가치는 다른 매체로 대체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생각이 정리된다. 막연했던 아이디어가 구체적인 문장이 되고, 흩어져 있던 생각들이 논리적인 구조로 재배치된다. 이런 과정 자체가 사고력을 기르는 훈련이다. 영상을 만들 때도 기획 단계에서는 글로 정리하게 된다. 결국 모든 콘텐츠의 뼈대는 텍스트로 시작된다. 글쓰기는 다른 형태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기본기이기도 하다.


기록의 가치도 중요하다. 글로 남겨진 생각들은 나중에 다시 읽어볼 수 있다. 몇 년 전에 쓴 글을 읽어보면 그때의 생각과 감정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어떤 고민을 했는지, 어떤 결론에 도달했는지,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기록들이 쌓이면서 내 생각의 변화 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 영상도 기록이 되지만, 글만큼 접근하기 쉽지 않다. 특정 부분을 찾기 위해 전체를 다시 봐야 하는 경우가 많다. 글은 검색하거나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읽기 용이하다.




3분 글 vs 10분 영상,

효율성에서 오는 차이


한 번에 훑어볼 수 있는 글과 끝까지 봐야 하는 영상의 차이도 크다. 같은 내용이라도 글로 읽으면 3분이면 되지만 영상으로 보면 10분이 걸린다. 글은 자신의 속도로 읽을 수 있지만, 영상은 제작자가 정한 속도에 맞춰야 한다. 빨리 읽는 사람에게는 영상이 답답할 수 있고, 천천히 읽는 사람에게는 글이 더 편할 수 있다. 개인차를 고려하면 글이 더 유연한 매체다. 또한 글은 스킵하거나 건너뛰기가 쉽다. 목차를 보고 관심 있는 부분만 읽을 수도 있고, 중요한 부분만 골라서 읽을 수도 있다.


업무 중에 정보를 찾을 때도 글이 더 효율적이다. 회사에서 영상을 보기는 어렵지만 글은 언제든 읽을 수 있다. 소리가 나지 않아서 주변에 방해되지 않고, 빠르게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실용적인 측면에서도 글의 장점이 있다. 물론 영상이 더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경우도 있다. 복잡한 과정을 설명하거나 실제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는 영상이 효과적이다. 하지만 개념을 설명하거나 생각을 공유할 때는 글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피로감과

아날로그가 주는 몰입의 힘


전자책보다 종이책을 선호하는 이유와 비슷한 맥락이 있다. 디지털 기기를 통해 소비하는 콘텐츠들은 어느 정도 피로감을 준다. 화면을 계속 보고 있으면 눈도 피곤하고 집중력도 떨어진다. 알림이 오거나 다른 앱으로 넘어가고 싶은 유혹도 있다. 반면 종이에 인쇄된 글이나 책은 그런 방해 요소가 없다. 온전히 텍스트에만 집중할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 더 깊은 몰입이 가능하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영상을 만들려면 편집용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하고, 컨텐츠를 촬영하거나 생성해야 한다. 하지만 글쓰기는 상대적으로 단순하다. 텍스트 에디터만 있으면 된다. 기술적인 복잡함 없이 순수하게 내용에만 집중할 수 있다. 이런 단순함이 창작에는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도구의 복잡성이 생각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 바로 기록할 수 있고, 수정하고 다듬는 과정도 직관적이다.




같은 내용이라도

글로 읽을 때 더 깊게 남는 이유


텍스트가 전달하는 정보의 밀도와 몰입의 차이도 있다. 같은 내용이라도 글로 읽을 때 더 깊게 남는 느낌을 받는다. 영상은 시각적, 청각적 자극이 많아서 화려하지만, 그만큼 산만할 수도 있다. 글은 순수하게 언어와 의미에만 집중하게 만든다. 독자가 상상할 여지도 많이 남겨둔다. 같은 글을 읽어도 사람마다 다른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이런 능동적인 독서 과정에서 더 깊은 인상을 받게 되는 것 같다.


정보의 밀도 면에서도 글이 유리하다. 같은 시간 동안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영상은 설명하는 시간, 화면 전환하는 시간, 음악이나 효과음 등이 들어가면서 실제 정보 전달에 사용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다. 글은 모든 공간이 정보 전달에 활용된다. 효율성 면에서 글이 더 압축적이고 집약적이다. 물론 이것이 항상 장점은 아니다. 때로는 여유롭고 편안한 전달 방식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제한된 시간 안에 깊이 있는 내용을 전달하려면 글이 더 적합하다.




슬로우 콘텐츠가 주는 매력


빠르게 소비되는 콘텐츠보다 천천히 음미할 수 있는 글의 매력을 포기할 수 없다. 요즘 대부분의 콘텐츠는 빠른 소비를 전제로 만들어진다. 짧고 자극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트렌드에 모든 콘텐츠가 맞춰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슬로우 푸드처럼 슬로우 콘텐츠도 필요하다. 천천히 읽고, 깊이 생각하고, 오래 기억될 수 있는 콘텐츠 말이다.


글쓰기는 이런 슬로우 콘텐츠의 대표적인 형태다. 빠르게 소비되고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읽히고 곱씹어지는 콘텐츠다. 이런 특성이 현재의 디지털 환경에서는 단점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나는 오히려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빨라지는 시대에 천천히 갈 수 있는 여유와 깊이가 더 소중하다. 영상 시대에 글쓰기를 고집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가치를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영상이 대세인 시대에 글쓰기를 고집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비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효율성이 모든 것의 기준은 아니다. 글쓰기가 주는 고유한 가치와 즐거움, 그리고 깊이 있는 사고를 위한 도구로서의 역할을 포기할 수 없다. 다양한 매체가 공존하는 것이 건강한 콘텐츠 생태계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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