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뒤샹은 뉴욕에 설립된 미국 독립미술가협회(American Society of Independent Artists)의 창립 멤버였다. 이 협회는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열린 민주적 공간을 목표로 삼았다. 협회는 "심사 없음, 상 없음(no jury, no prizes)" 정책을 채택했는데, 이는 작품을 공식적으로 심사하지 않고, 어느 한 작가도 다른 작가보다 우월하게 평가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협회의 전시에는 누구나 6달러를 내면 작품을 제출하고 전시할 수 있었다.
뒤샹은 협회에서 작품의 전시 순서를 결정하는 위원회를 직접 이끌었다. 그는 한두 명의 취향에 따라 작품을 배치하는 대신, 작가의 성을 기준으로 알파벳순으로 전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뒤샹은 배관용품점에서 구입한 소변기를 <샘>이라는 제목을 붙여 미국 독립미술가협회의 첫 전시에 익명으로 출품했다. 그는 작품에 ‘R. Mutt 1917’이라고 서명해, 이 작품이 자신의 것임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했다. 자신의 유명세가 이사회 구성원들의 작품 평가에 영향을 미칠까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사회는 소변기가 외설적인 데다가 예술이 아니라는 이유로 작품 수락을 거부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이 결정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예술 작품에서 흔히 기대되는 장인의 손길과 그것이 주는 미적 즐거움, 그런 것들을 무시했다. 논란을 통해 질문을 던지자 하는 것이 그의 의도였다.
예술이라 함은 반드시 예술가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야 할까?
예술이란 무엇인가?
그는 변기를 뒤집어 제시하면서 그것을 <샘>이라 불렀고
가장 우스꽝스러운 방식으로 이러한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저는 지금 뒤샹과 그의 악명 높은 ‘조각’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어떻게 변기처럼 안정적이고 영구적인 효용을 지닌 사물을 뒤집어놓음으로써 그 반응을 급진적으로 만들었는지에 대해서요. 게다가 그는 <샘>이라는 이름까지 붙임으로써 대상에서 의도된 정체성을 빼앗고, 알아보기 힘든 새로운 형식으로 표현했어요.
이런 점 때문에 저는 그가 미워요.
저는 그가 단순히 하나의 사물을 뒤집고,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중력, 우리를 지구에 붙잡아두는 그 힘으로 완성된 행위를 통해, 이름에 새로운 각도를 드러냄으로써, 존재 전체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그 방식이 미워요.
무엇보다도 미운 건, 그가 옳았기 때문이에요. 왜냐하면 그것이 할머니께 벌어지고 있던 일이었으니까요. 암은 할머니의 겉모습뿐 아니라 존재의 궤적까지도 다시 만들어버렸어요. 란 할머니가 뒤집힌다면, 심지어 마치 ‘죽어가는(dying)’이란 단어가 ‘죽은(dead)’이란 단어와 닮은 점이 없는 것과 같이, 먼지로 변해 버릴 예정이었죠. 할머니가 아직 편찮으시기 전에 저는 이 유연한 행위, 한때 하나의 모습이었던 사물이나 사람이 일단 뒤집히면, 그 단일성을 넘어선다는 것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발견했었어요. 한때 과거의 저이자 지금의 저인, 퀴어 황인종 호모 새끼임을 자랑스레 여기도록 했던 이러한 진화를 위한 작용이, 그런데 지금은, 저를 배신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