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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브엉은 뒤샹의 <샘>을 어떻게 해석할까?

by 발걸음


젊은 베트남계 미국 작가인 오션 브엉(Ocean Vuong)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첫 소설,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흑적이다 (On Earth We're Briefly Gorgeous, 2019)를 읽어보셨나요? 마르셀 뒤샹의 <샘>에 대한 강의를 앞두고 문득 소설의 한 부분이 생각나서 이렇게 몇 자 적어봅니다.


내일은 학교를 졸업하고 어른이 되어 다시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는 어른 학생들을 처음으로 만나는 날이에요. 세 달 동안 매주 한 번, 세 시간씩 만나게 될 사람들. 얼마나 반짝이는 눈들이 기다릴지 생각해 보면 기대가 되고 또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또 한편으로는 용어도, 개념도 어렵기만 한 현대, 동시대 미술의 세계를 어떻게 입문할 수 있도록 도와드릴까 항상 고민이 되어요. 그러다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어떤 작가의 작업이나 전시를

나의 이야기로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이 내 경험의 일부가 되어 누구에겐가 얘기할 수 있다면




마치 몇 년 전 작고한 존 버거가 딸한테 보낸 무수히 많은 편지에서처럼, 주저리주저리 미술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 의미가 삶과 하나로 녹아들어 이야기가 지극히 자연스레 흘러가는 상태 말이에요. 물론 우리가 갑자기 존 버거가 될 리는 없겠지만요.


그런 생각을 마음 한편에 마음에 품고 있다가 문득 뒤샹의 <샘>을 두고 내가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질문해 보았어요. 그랬더니 이미 다른 학자들이나 비평가들이 했던 생각을 그대로 내 생각인 듯하고 있었던 거예요. 물론 그들의 해석에 동의를 하는 게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 사실이 작품과 나 사이의 엄청난 간극을 드러낸다는 의미예요. 그건 단지 100년 전에 있었던 특별한 사건이고, 나는 그것에 매우 끌리지만, 나의 개인사와 그건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 말이지요. 물론 작품을 대하다 보며 그렇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커다란 울림이 있기도 하지만요. 그래서 그러지 말고 학생들이 함께 공부를 하면서 각자 새로운 걸 알게 되는 기쁨을 경험하는 것은 물론 개인적인 성찰이나 발견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요.




왼. 마르셀 뒤샹, <샘>, 1917




저는 장난기도 정말 많고, 여자친구도 너무 많았을 게 분명한, 뉴욕으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잘생겼던 프랑스 남자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그가 쓴 연애편지, 그의 여자 친구의 사진, 전시, 책, 이런 자료를 숱하게 보면서도 그의 작업은 늘 수수께끼 같고 파악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물론 이 변기, <샘>이라 이름 붙인 이 변기가 미술의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것이 역사적으로 지닌 의미가 어떤 건지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요. 참고로 잘 모르시는 독자들을 위해 이 작품의 역사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아요.



마르셀 뒤샹은 뉴욕에 설립된 미국 독립미술가협회(American Society of Independent Artists)의 창립 멤버였다. 이 협회는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열린 민주적 공간을 목표로 삼았다. 협회는 "심사 없음, 상 없음(no jury, no prizes)" 정책을 채택했는데, 이는 작품을 공식적으로 심사하지 않고, 어느 한 작가도 다른 작가보다 우월하게 평가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협회의 전시에는 누구나 6달러를 내면 작품을 제출하고 전시할 수 있었다.

뒤샹은 협회에서 작품의 전시 순서를 결정하는 위원회를 직접 이끌었다. 그는 한두 명의 취향에 따라 작품을 배치하는 대신, 작가의 성을 기준으로 알파벳순으로 전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뒤샹은 배관용품점에서 구입한 소변기를 <샘>이라는 제목을 붙여 미국 독립미술가협회의 첫 전시에 익명으로 출품했다. 그는 작품에 ‘R. Mutt 1917’이라고 서명해, 이 작품이 자신의 것임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했다. 자신의 유명세가 이사회 구성원들의 작품 평가에 영향을 미칠까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사회는 소변기가 외설적인 데다가 예술이 아니라는 이유로 작품 수락을 거부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이 결정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예술 작품에서 흔히 기대되는 장인의 손길과 그것이 주는 미적 즐거움, 그런 것들을 무시했다. 논란을 통해 질문을 던지자 하는 것이 그의 의도였다.

예술이라 함은 반드시 예술가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야 할까?
예술이란 무엇인가?

그는 변기를 뒤집어 제시하면서 그것을 <샘>이라 불렀고
가장 우스꽝스러운 방식으로 이러한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들은 혹시 뒤샹의 <샘>에 대해 자신만의 의미부여를 해본 적이 있나요?


"이 작품은 '예술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지!" 이런 말 말고요.

그러던 어느 날 오션 브앙의 책을 읽던 중 '이 작품을 이렇게 해석할 수 있구나' 싶어 놀랐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이 소설은 주인공이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되어있어요. 작가의 실재 경험처럼 할머니, 엄마, 나로 이어지는 이 가족은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미국에 난민 자격으로 이주해서 살아가요. 평생 전쟁의 고통과 환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메리칸드림을 꿈꾸기에는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힘든 이 가족의 유일한 남자인 주인공은 암에 걸린 할머니가 병에 걸려 죽는 과정을 눈앞에 두고 있어요.


그는 이제 삶에서 죽음으로 이행 중인, 곧 다가올 할머니의 완전한 변신에 대해 성찰하면서, 화장실이라는 맥락에서 떼어져 나와 미술관에 뒤집혀 놓인 변기야말로 할머니의 죽음과 매한가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요. 뒤집히면, 완전히 전복되면, 그 전후는 닮은 점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요. 그러니 숨을 쉬던 할머니의 신체와 정신은 이제 곧 먼지로 변할 것이고요. 사람이 아닌 먼지 말이에요. 작가는 그러한 진실을 그렇게 노골적으로 표현한 뒤샹을 밉다고 해요. 하지만 그 분노는 아마도, 뒤샹을 향한 것이 아니라 할머니의 삶과, 할머니가 겪은 전쟁과 그로 인한 정신 분열의 상흔과, 그 모든 것에 대한 것이겠지요.


전 이 부분을 읽으면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눈앞에서 함께 겪는 아픔 속에서도, 살아있는 인간이라면 결코 포착할 수 없는 '죽음'의 개념을, 작가가 뒤샹의 <샘>에서 찾고 있다는데 놀라웠어요. 그 동떨어진 것 같은 작품을 완전히 자신의 이야기로 껴안는데서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어요. 이전에 그 누구도 <샘>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해석한 걸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 누구도 그러한 방식으로 이야기할 생각은 미처 못했을 테고요.


물론 우리의 뒤샹은 훗날 어느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소설에서 그렇게 포용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겠지만요. 그래서 제가 이 글에서 느낀 건 이런 성찰이야말로 예술의 힘 아닐까 하는 것이었어요. 과거의 종교가 했던 역할 말이에요. 삶과 죽음의 의미에 다가가는 것.


그래서 소설의 그 부분을 번역해 보았고 그걸 어서 어른 학생들과 공유하고 싶어요. 사람들은<샘>을 공부하고 난 수 이 글을 과연 어떻게 느낄까요? 이 책은 한국에서도 번역 출판이 되었지만 곧 절판되었어요. 영어권 국가에서 엄청난 인기와 명성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국에서 오션 브엉을 아는 독자들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번역본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오지 않고 원문을 가지고 다시 번역 작업했어요.


여러분은 아래 오션 브엉의 글을 읽고 어떻게 느끼실지 궁금하네요.



오션 브엉,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흑적이다, 2019




Ocean Vuong, On Earth We're Briefly Gorgeous 중

pp. 196-199



할머니가 진단을 받으시던 날, 저는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의사 진료실에 서 있었어요. 의사는 백라이트 화면 위에 핀으로 고정해 둔 할머니의 골격 사진을 가리키며 다양한 부위들을 설명했고, 그 목소리는 물속에 있는 것처럼 들렸어요.


그러나 제가 보았던 것은 비어있음이었죠.


저는 엑스레이 사진으로 다리와 엉덩이 사이의 공간을 보았어요. 암이 할머니의 넓적다리뼈 윗부분의 3분의 1과 관절 일부를 갉아먹어버린 자리였어요. 관절구에는 공 모양이 완전히 사라지고 오른쪽 엉덩이뼈는 다공성이 되어 썩어가고 있었어요. 그 사진을 보고 있으니 녹슬고 부식되어 얇아진 쓰레기장의 금속 조각이 떠올랐어요. 할머니의 그 몸 일부가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에 대해서는 어떤 증거도 없었어요. 더 가까이 들여다보았어요. 한때 뼈를 이루었던 반투명한 연골과 골수, 미네랄과 염분, 근육, 칼슘은 다 어디로 간 거죠?


순간, 제 주위로 간호사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동안, 저는 새롭고 특이한 분노를 느꼈어요. 턱에 힘이 들어가고 주먹은 움켜쥐어졌죠.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알고 싶었어요. 이런 일에는 반드시 그렇게 만든 특정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의식이 있고, 분명히 규정되어 죄를 물을 수 있는 존재가 있어야 한다고 느꼈어요. 이번 단 한 번이라도 저는 적을 원했고, 적이 ‘필요’했죠.


골암 4기가 공식 진단명이었어요. 엄마가 휠체어를 탄 할머니와 복도에서 기다리시는 동안 의사는 제 시선은 피한 채 엑스레이 사진이 든 파일 봉투를 건네며, 할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가 아무거나 드시고 싶은 것을 드시게 하라고 했어요. 2주, 어쩌면 3주가 남아 있었어요.


우리는 할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와 시원한 타일 바닥 쪽의 매트 위에 눕혔고, 다리가 제자리에 유지되도록 할머니 옆에 베개를 받쳤어요. 더욱 최악이었던 것은, 엄마도 기억하시겠지만, 할머니가 한 번도, 심지어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불치병에 걸린 사실을 믿지 않으셨다는 것이었어요. 우리는 할머니께 진단 결과를 설명해 드렸고, 종양과 세포, 전이에 대해서 말씀드렸지만 단어들은 너무 추상적이어서 마법에 대해 설명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어요.


우리는 할머니께 당신이 죽어가고 있다고, 두 주 정도가 될 거라고 말씀드렸는데, 그것이 한 주가 되고, 이제 어느 날이 될지 모르는 시점이 되어 있었어요. “준비하세요. 준비하셔야 한다고요. 원하시는 것 있으세요? 뭐가 필요하세요? 하고 싶으신 말씀 있으세요?” 우리는 애원했어요. 그러나 할머니는 받아들이지 않으셨죠. 할머니는 우리가 어린애들에 불과하다며, 아직 우리가 모르는 게 있다고, 우리가 크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될 거라고 하셨어요. 더구나 부정과 꾸며내기, ‘이야기하기’야 말로 할머니가 자신의 삶에서 한 발 앞서 살아가는 방식이었죠. 그러니 누가 할머니께 틀렸다고 말씀드릴 수 있었겠어요?


그러나 고통 그 자체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마지막 며칠간, 엄마가 밖에 나가 장례를 준비하고 관을 고르는 동안, 할머니는 길고 날카로운 울부짖음과 비명을 질러대셨어요. “내가 뭘 잘못했니?” 할머니는 천장을 보며 소리치셨어요. “하느님, 제가 뭘 했기에 이렇게 저를 짓밟아대시나요?” 우리는 의사가 처방해 준 합성 진통제인 바이코딘과 옥시콘틴, 그리고 모르핀, 더 많은 모르핀을 드렸어요.


저는 할머니가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나기를 반복하는 동안 종이 접시로 부채질을 해드렸어요. 플로리다에서 밤새 차를 몰고 온 마이 이모는 좀비처럼 멍한 상태로 집안을 오가며 음식을 만들거나 차를 끓였고요. 할머니는 씹을 기운조차 없어서, 이모는 간신히 벌어진 할머니의 입에다 오트밀을 떠 넣어드리곤 했어요. 그동안 제가 계속 부채질을 하면, 두 여인, 엄마와 딸의 검은 머리칼이 동시에 흔들리며, 서로의 앞이마가 거의 닿을 듯 가까워졌지요. 몇 시간 뒤 당신과 이모는 할머니를 한쪽 옆으로 돌려 눕히고, 고무장갑 낀 손으로 자신들의 엄마의 몸, 스스로의 오염물을 제거하기에는 너무 오염된 몸에서 변을 제거했어요. 저는 엄마가 작업하시는 동안 땀이 보석처럼 맺힌 얼굴에 계속 부채질을 해드렸고 할머니는 눈을 감고 계셨어요. 일이 끝났을 때 할머니는 그냥 가만히 누워 눈을 끔뻑끔뻑하셨고요.


저는 할머니께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여쭤보았어요. 할머니는 마치 긴 꿈에서 깬 것처럼 텅 빈 듯한 단조로운 어조로 대답하셨죠. “나는 소녀였단다, 리틀독. 알고 있니?”


“예, 할머니, 알고 있어요.” 그러나 할머니는 듣고 계시지 않았어요.


“나는 머리에 꽃을 꽂고 햇볕을 돌아다녔지. 큰비가 온 다음, 햇볕을 돌아다녔어. 귀에다 꽃을 꽂고, 촉촉하고 시원했어.” 할머니의 눈길이 제게서 떠나 떠다녔어요. “바보 같은 일이야.” 고개를 흔드셨어요. “멍청한 일이지. 소녀가 된다는 것 말이야.” 잠시 후, 할머니는 마치 제가 거기 있다는 것을 떠올리신 듯 돌아보셨어요. “밥 먹었니 아직?”



우리는 생명을 보존하려고 애써요. 설사 우리의 행위가 몸을 지속시킬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조차도요. 우리는 몸을 먹이고, 편안하게 유지하고, 씻기고, 약을 주고, 어루만지고, 심지어 노래까지 불러줘요. 우리가 이런 기본적인 돌봄을 수행하는 이유는 우리가 용감하거나 이타적이어서가 아니라, 숨을 쉬는 것처럼, 그것이 우리 종의 가장 근본적인 행위이기 때문이죠. 시간이라는 것이 뒤로 물러날 대까지 그 몸을 보존하는 행위.


저는 지금 뒤샹과 그의 악명 높은 ‘조각’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어떻게 변기처럼 안정적이고 영구적인 효용을 지닌 사물을 뒤집어놓음으로써 그 반응을 급진적으로 만들었는지에 대해서요. 게다가 그는 <샘>이라는 이름까지 붙임으로써 대상에서 의도된 정체성을 빼앗고, 알아보기 힘든 새로운 형식으로 표현했어요.
이런 점 때문에 저는 그가 미워요.
저는 그가 단순히 하나의 사물을 뒤집고,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중력, 우리를 지구에 붙잡아두는 그 힘으로 완성된 행위를 통해, 이름에 새로운 각도를 드러냄으로써, 존재 전체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그 방식이 미워요.
무엇보다도 미운 건, 그가 옳았기 때문이에요. 왜냐하면 그것이 할머니께 벌어지고 있던 일이었으니까요. 암은 할머니의 겉모습뿐 아니라 존재의 궤적까지도 다시 만들어버렸어요. 란 할머니가 뒤집힌다면, 심지어 마치 ‘죽어가는(dying)’이란 단어가 ‘죽은(dead)’이란 단어와 닮은 점이 없는 것과 같이, 먼지로 변해 버릴 예정이었죠. 할머니가 아직 편찮으시기 전에 저는 이 유연한 행위, 한때 하나의 모습이었던 사물이나 사람이 일단 뒤집히면, 그 단일성을 넘어선다는 것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발견했었어요. 한때 과거의 저이자 지금의 저인, 퀴어 황인종 호모 새끼임을 자랑스레 여기도록 했던 이러한 진화를 위한 작용이, 그런데 지금은, 저를 배신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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