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데 없는 아이
의젓하다
말이나 행동 따위가 점잖고 무게가 있다.
의젓하다는 말이 아이한테 어울리는 말일까? 아이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점잖다면? 무게가 있다면? 너무 안 어울리지 않을까? 그렇게 행동하면 아이다울까?
내가 바로 의젓한 아이였다. 의젓하고 듬직하고 아이답지 않아서 애어른이라는 말도 종종 들으며 자랐다. 단순히 내 이름 뒤에 따라오는 말이어서 이상할 것도 없이 언제나 의젓하고 무게감 있는 사람으로 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의젓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으나 존재감이 있는 편은 아니었다. 소위말하는 인싸도 아니거니와 조용조용하고 남 앞에 나를 드러내는 편이 아니어서 한없이 존재 감 없이도 지낼 수 있었다.
강사로 한 고등학교에 수업을 갔을 때 우연히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을 마주쳤다. 반가운 마음 반, 한때 제자로서 인사드려야 마땅하다는 생각에, 그리고 나는 인사라면 끔찍이 잘하는 착하고 예의 바른 아이였기 때문에 그 선생님께 가서 나를 소개하며 인사드렸다. 역시 그분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셨으나 선생님이 알법한 같은 반이었던 친구의 이름을 말하니 그 친구와는 아직도 가끔 연락을 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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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분명 그때 거기 있었는데, 없는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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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아직 연락한다는 그 아이는 중국에서 한국으로 왔기 때문에 선생님과 따로 공부도 하고 학교생활에 도움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맺었던 것이 나도 기억이 날 정도다. 나는 그 친구의 짝이었으나 선생님 기억에는 굳이 떠오르지 않아도 상관없는 아이였겠지. 누군가에게 기억이 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게 그 사람과 나의 관계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어찌 보면 나는 선택적으로 내 존재를 드러내기도 하고 숨기기도 하며 살았던 거 같다.
의젓한 아이는 사연이 있는 아이다. 아이다움을 드러내지 못하고 의젓하게 굴어야 했다면 그만한 까닭이 있었을 거다. 내가 생각했던 의젓함은 말없고 잘 참고 인내하고 조심성 있고 잘 견디는 거다.
(의젓하다는 말을 아주 오해하고 살았구나..)
잘 참고 견디는 것 역시 아이와 거리가 먼 단어다. 잘 참으면 참을성 있다고 칭찬받고 조심성 있으면 조심성 있어서 칭찬받고 덜렁거리고 실수하지 않으니 혼날 일이 없고 정신 사납게 행동하지 않으니 차분하다고 칭찬받고 그래서 나는 의젓한 애어른으로 살기를 선택했었나 보다.
굳이 나 아니어도 힘들일 많았을 부모에게 힘든 존재가 되기 싫어서 나는 본 것도 보지 않은 척 들어도 듣지 않은 척하고 싶어도 하고 싶지 않은 척 그렇게 돌처럼 커다란 바위처럼 단단하게 굳은 채로 살았나 보다.
오늘 어떤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있는데 없는 아이로 살아갔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초등학교 시기의 나는 정말 이 표현이 너무 어울리는 아이로 항상 있었지만 없는 아이로 살았다. 소아우울증이었을 거 같다는 생각이 최근에 들 정도로 말이다.
중학교 시기는 있는데 눈치 보여 없는 척도 하는 아이, 있었다가도 잘 숨어버리는 아이였던 거 같고 고등학교 때는 있는데 나를 아는 사람들한테만 있는 아이라 모르는 사람 모르는 분야에는 관심도 안 두던 그런 아이였다.
참고 사느라 힘들었지? 애썼어.
의젓하게 행동하느라 버거웠지?
잘 견뎌줘서 고마워.
일부러 의젓하게 굴지 않아도 돼.
하고 싶은 행동 하고 싶은 말 다 해도 괜찮아.
아이잖아.
가끔씩 그때의 내가 떠올려지는 순간들이 있다. 이제는 다시 접어두지 않고 그때의 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그때의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해주고 싶다.
그 아이한테 필요한 말을 해줄 수 있는 어른이 되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