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많은 아이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될까? 저렇게 하면 저렇게 될까? 내가 이 말을 해도 되나? 하면 안 되나? 저 사람은 왜 저런 표정을 하고 있지? 내가 뭘 실수했나? 내가 뭘 하면 되지? 내가 놓친 건 뭐지? 내일은 뭐해야 되지?
참 여러 가지 상황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나는 생각이 멈추지 않는 아이다.
7년 전쯤? 우리 동네 문화 축제에서 멍 때리기 대회가 진행됐다. 저게 뭐야? 저런 걸 왜 하는 거야? 옆에 있는 친구한테 이야기했던 게 떠오른다.
참 쓸데없어 보였다. 이 시간에 왜 이러고 있는 거야? 굳이 이렇게 넓은 마당에 주저앉아 멍 때리는 대회라니 누가 더 오래 멍 때리나 대회를 해야 하는 거야?
그때 친구가 이야기해 줬다. 멍 때리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뇌를 쉬게 해주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말이다.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 뒤로 가끔 그때 그 장면이 떠오른다. 멍석에 앉아서 진짜 멍 잘 때리는 사람 키득키득 웃다가 금방 포기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구경하는 나 같은 사람 등등
사람들이 얼마나 쉬지 않고 일하면 쉴 새 없이 세상이 빠르게 돌아가면 이런 멍 때리기 대회까지 열리는 걸까.
농경사회로만 돌아가 봐도 인간은 해가 뜨면 나가 일하고 해가 지면 돌아와 쉬고 잠을 잤다. 그런데 문명이 발달하면서 어두우면 밝게 불을 켜고 일하고 낮과 밤이 바뀐 채로 일하기도 하고, 24시간 365일 쉬지 않는 지구가 되어버렸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는 정말 쉼이 너무 중요하다. 잘 쉬는 것이 잘 먹는 것만큼 중요한 것을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완전히 알게 됐다. 몸이 쉬는 것만큼 중요한 게 정신, 생각을 멈추고 쉬는 것이다.
참 쉴 틈 없이 일하고 쉴 틈 없이 생각하는구나.라는 것을 알아차리면서 했던 것이 명상이다. 하루에 짧게 10분 길게는 40분 정도 명상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어떤 날을 명상하다 그대로 잠들어버리기도 한다.
생각을 멈추면 내 몸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고 모든 감각이 깨어난다. 생각 회로는 멈추고 나머지 감각은 모두 깨어 활성화되는 느낌 나는 그 느낌이 참 좋았다.
지난달 엄청난 에너지를 모아 일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요즘 나는 잠이 쏟아진다. 평소에 낮잠은 절대 안 자는 나인데 주말에 3시간 넘도록 낮잠을 자고 이동하면서도 계속 잠이 쏟아지는 내가 낯설었다. 게다가 글자를 들여다보기 싫고 나중에 하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오는 나를 대면하게 됐다. 하는 일에 지체가 일어나기 시작한 거다.
과부하가 왔다는 신호임을 바로 알았다.
나는 생각하다가 에너지를 다쓰는 사람이다. 생각하다 지쳐서 결국 아무것도 안 하던 나를 안다.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이렇게 해도 될까? 안될까?
그 생각하는 시간에 그 생각하다 에너지 다 쓰고 지쳐서 결국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하는 거 말이다.
그런 반복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더는 미루지 말자하고 했는데.. 세상에.. 5분도 안돼서 끝날 일이었다.
왜 막연하게 하기 싫고 어렵게 느껴지고 미루고 싶었던 걸까? 막연하게 이 일을 어렵다고 생각하고 또 실수하면 안 된다는 강박이 나한테 너무 큰 영향을 준 것 같았다.
외국에 있는 분들과 처리할 일이어서 소통하기 전에 소통이 잘 안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나를 스트레스에 노출시켰고, 이걸 언제 다 하지? 하는 생각이 과도하게 할 일이 많다고 착각하는 스트레스를 불러왔다. 나 이거 잘 못할 거 같은데 지금 좀 피곤한데 하면서 나를 무능하게 여기니 스트레스가 올라오고 피곤하다고 느끼니 기쁨이 사라지고 과도한 스트레스처럼 받아들이게 된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이미 다 정리해둔 거였고, 처음부터 내가 한 일이어서 전혀 어려울 게 없는 일인데 불필요한 내 생각이 스트레스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다. 스트레스받으려고 똥 폼 잡은 거나 다름없다.
어찌 보면 그게 일 열심히 하는 척일 수 있겠다. 뭔가 심각하게 몰입하고 바빠 보이고 그래야 뭐라도 하는 것 같은 존재감을 뿜어내는 것만 같아서.
적당한 스트레스를 즐기는 것은 오히려 정신 건강에 좋다고 했던가? 그런데 누가 그걸 알고 이 정도면 괜찮은 스트레스야 이 정도는 너무 지나쳐. 하고 알아차릴 수 있을까?
에라 모르겠다. 나는 그냥 즐겁게 해 보련다~닥치는 대로 해보련다~ 생각하고 계획하고 고민하는 대신 행동해 보는 걸 선택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