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니 섬세한 아이
가끔씩 몸이 가려워 팔과 다리를 벅벅 긁으면서 힘들어하던 엄마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면 순식간에 다리에는 붉게 부푼 살이 불룩 솟아올랐다. 너무 가려운데 어쩔 줄 몰라서 물을 바르기도 하고 두드리기도 하던 엄마.
'나는 참 건강한 체질이야.
특별히 아픈 곳도 없고 그 흔한 알레르기도 없으니.'
항상 건강하다고 믿고 살았던 나는 크게 아팠던 기억이 없다.
크게 인후염을 한두 번 앓았던 거?
내가 병원을 가장 많이 다녔던 건 임신하고 다닌 산부인과였다.
예민하거나 둔감하거나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둔감한 사람이라고 손을 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이들을 키우며 내가 생각보다 민감하고 예민한 사람이구나. 섬세한 사람이었구나 하고 깨달았다. 나 스스로 민감하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살았던 거다.
최근 지방 일정이 있어서 이동을 하다가 바나나빵을 먹었다. 지인이 손수 만든 정말 맛있는 빵이었는데 한입 베어 물고 삼키니 입천장이 아팠다.
어? 나 전에도 바나나 먹고 혓바닥 아팠는데?
기억이 떠올랐다.
최근에 해독을 하고 난 뒤, 음식을 먹었는데 혀끝이 얼얼했다. 이상하다? 왜 혀가 아프지? 내가 섬새해진건가? 하고 넘겼는데 집에서 바나나를 먹다가 다시 혀가 얼얼하고 아팠던 기억이 난 거다.
'바나나 알레르기'
바나나 알레르기?? 증상을 보니 나와 비슷하게 천장이 아프고 혀에 통증이 있다고 한다. 심한 경우 목이 부을 수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고 쓰여있었다
어머나. 정말 건강하고 알레르기 하나 없다고 믿었던 나인데, 이게 갑자기 생긴 걸까? 그동안 모르고 지나간 걸까?
30대를 마무리하는 시기를 살고 있는 나는 요즘이 내 생애 가장 섬세하게 내 감정과 감각을 느끼는 중이다. 그래서 정말 즐겁기도 한데 바나나 알레르기가 무척 반갑게 느껴졌다.
그동안 여러 감정과 감각이 많이 억압되어 있었는데 봉인해제가 되는 것처럼 내 세포가 깨어나고 감각이 깨어나는 것 같았다.
올봄 꽃가루 등 알레르기가 특히 심했던 환절기를 기억한다. 멀쩡하던 우리 두 아이도 갑자기 코가 막히고 답답해해서 병원을 찾은 일이 있다. 간 김에 이비인후과에서 알레르기 검사를 했는데 두 아이 모두 새우에 대한 약간의 민감도가 나왔다. 평소에 잘 먹었던 식재료이긴 한데 컨디션이 안 좋거나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먹게 되면 반응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지 걱정할 정도가 아니라고 했었다.
하지만 옆에서 듣고 있던 둘째는 그 이후 새우를 보면 자기는 알레르기 때문에 먹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난리부르스.. 먹기 싫은 게 아니라 알레르기 있는 것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한동안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자기는 새우 알레르기가 있다고 묻지도 않았는데도 소문내며 배시시 웃고 다녔다.
참 신기하네. 뭐가 좋아서 저렇게 소문을 내고 다니지? 알레르기 있어서 좋은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이의 모습을 지켜봤었다. 지금 내가 느끼는 마음도 그런 거 같다.
내 딸은 그런 자기를 지켜주고 관리해주는 엄마가 있어서 안심이 되고 또 엄마가 내가 먹는 음식을 더 신경 써주겠지? 하는 마음이 컸던 거 같은데 나는 나 스스로가 나를 돌볼 수 있는 하나의 장치가 생긴 거 같아서 한편으로 반가운 마음이 든다.
자라면서 나는 굉장히 섬세한 사람이었는데 그 감각이 싹 죽어버린 거 같은 생각을 많이 했다.
작은 소리에도 옅은 냄새에도 민감한 나.
작은 변화와 낯선 환경 낯선 사람에 대한 불안이나 민감도가 높은 사람인데 그런 상황에서 안정감을 느끼지 못해서 아예 민감한 나를 눌러버리고 살았나 보다.
갑자기 쿵 소리가 난다거나 큰 목소리가 들리면 깜짝 놀라며 움츠러드는 나.
좋은 향기든 좋지 않은 냄새든 강한 향이 코끝을 지나면 머리 아플 정도로 어지럽고 아주 옅은 냄새가 코끝에서 느껴져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한 번 본 것도 잘 잊히지 않고 한 번 맛본 것도 잘 기억해서 맛을 낼 수 있고, 물건의 재질도 중요해서 속옷이나 옷의 촉감, 물건의 그립감 등도 나한테는 선택할 때 중요한 작용을 한다.
그러고 보면 오감이 되게 민감하고 예민한 나인데 나는 나를 둔감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만큼 나는 나를 잘 모른다. 그래서 참 삶이 어려웠다.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것처럼 삶의 순간순간이 순탄하게 풀리지 않았다.
민감하다는 말 예민하다는 말은 뭔가 불편한 느낌이 든다.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말이다. 물론 이건 내 생각이다. 그런데 나는 이 말을 섬세하다는 것으로 바꾸어 말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예민한 게 아니라 섬세한 거라고 칭찬해 주었고, 그런 아이들의 엄마여서 때론 버거운 점도 많았지만 그 덕분에 나 역시 섬세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평생 둔감하다고 믿고 살았던 나인데 세상 섬세한 사람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화책 중에 <완두콩 위의 공주>라는 책이 있다. 왕자가 진짜 공주를 찾아 헤매는데 어느 날 공주처럼 생기지 않은 공주를 만났고 진짜 공주인지 알아보기 위해 완두콩 한 알을 놓고 그 위에 켜켜이 이불을 깔고 그 위에서 공주가 잠을 자게 하는 장면이 있다. 공주는 다음날 이불아래 작은 완두콩 때문에 잠을 못 자고 설쳤다며 몸에 멍까지 들었다고 말한다. 왕과 왕비는 이렇게 섬세하게 살피고 느끼는 공주가 진짜 공주라고 하며 왕자와 짝을 지어준다.
아무리 예쁘고 보석이 많고 키가 큰 여러 공주들 중에 공주처럼 보이진 않으나 섬세하게 느끼고 살피는 공주를 진짜 공주라고 표현하는 대목이 인상에 남는다. 내 안에 있는 것들 내가 느끼는 것들에 대해 잘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겠구나. 작은 것 하나라도 말이다.
작다고 덮어두고 별거 아니라고 축소시키고, 괜찮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나는 실은 너무 섬세한 아이였다. 그 섬세한 것을 표현하는 게 서툴었던 그런 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