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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리가 아지트가 될 때

by 캐리소

구독하고 있는 작가님의 글에서 아지트 이야기를 인상 깊게 읽었다.

그녀는 학창 시절 '여운카페'라는 곳을 자신의 아지트로 삼았었다며 그곳에서의 추억을 펼쳐 놓는다. 거기서 먹었던 토스트의 각 잡힌 맛이며, 카페 언니와의 추억, 함께 놀았던 친구들의 모습까지 자세히 그리며 그곳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이야기한다.

그 내용을 읽고 나에게는 어떤 아지트가 있었는지 떠올려 보게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우리 학교와 인접한 대학교에서 대학생들이 쏟아져 나온다. 대학생들은 삼삼오오 떠들며 앞다투어 학교 앞 카페로 몰려가곤 했다.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집처럼 생긴 카페가 우리 학교 앞에도 있었다.


단짝 친구인 자희와 나는 졸업하기 전에 꼭 한번 그곳에 가보기로 하고 때를 노리고 있었다.

그곳은 신비로운 장소였다. 우리에게 그곳은 대학생만 갈 수 있는 곳이고 어른들의 비밀한 세계가 열리는 문이었다. 그래서 둘이는 그곳에 갈 계획을 세웠고 그때부터 들뜨고 설레는 마음이었다.


큰 맘을 먹고 카페의 문을 가만히 열었다.

괜히 눈치를 보고 두리번거리기도 하면서 우리가 벌써 합법적으로 이런 곳을 드나들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에 내심 의기양양해했다.


자희와 눈웃음을 주고받으며 홀짝거렸던 체리주스의 맛은 상상 이상이었다. 유리컵을 기울이면서 마구 가슴이 뛰었고 주스의 맛은 마녀의 음료라도 되는 양 붉고 달고 맛있었다. 그러면서 우리의 비밀 이야기도 더 깊어졌다.


묵직한 나무문을 밀면서 가슴이 두근거렸고 오래 앉아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우리만의 아지트였다.

그렇게 그곳은 그야말로 '아지트'가 주는 아늑함과 따뜻함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내가 생각하는 아지트의 느낌은 엄마자궁과 같은 태초의 안락함을 연상케 한다.

그건 자연스럽게 중학교 시절로 날아가고 내 회상의 날개 위에 올라앉은 아이는 선이였다. 같은 반이면서 나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던 선이. 선이네는 오래된 단독주택이었고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삐걱삐걱 신비로운 소리가 났다.

선이의 조용한 방은 이층에 있었다.


선이의 방은 유독 노을이 예쁘게 지던 곳이었고 선이는 자신의 상자를 열어 보물 하나하나에 깃든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나는 마법의 양탄자에 올라탄 듯 선이의 이야기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일본여행에서 가져온 계란모양의 비누, 유럽에 다녀온 기념으로 이모가 준 열쇠고리, 먼 나라에서 공수된 동전들을 번갈이 짤랑대며 선이는 조용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젠가는 저 먼 나라에 가서 살고 있을 거야."

그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우린 까무룩 잠이 들기도 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선이의 방과 우리의 시간.

아지트가 가진 안온함이 추억과 함께 살아있는 곳이다.


지금은 모두 다 사라지고 남아있지 않은 장소들.

어디서 살고 있는지 모르는 친구들.

아마도 아지트는 어떤 특정한 장소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이 있어서 완성되는 이미지일 것이다.




지금 나의 아지트는!

매일 앉아있는 책상 앞, 스탠드 아래인가?

새벽마다 정담과 사상을 나누는 작가들과의 교류인가?

매일 저녁 독서와 글쓰기로 나의 열정을 태우기 위해 에너지를 수혈받는 줌 화면 앞인가?

그것에 더해 매일 함께 글과 책의 통찰을 쌓아가는 사람들과의 관계일까?

다 맞다.

진짜 그렇다.

아지트의 참의미를 곱씹는다면 말이다.


이 상호 연결의 우주에서, 우리가 자신의 사적 세계에서 이루어 내는 모든 발전은 모두를 위해 세계 전체를 개선한다. (중략) 우리 모두는 생명을 이롭게 하려는 노력을 통해 공동의 부력을 높인다. 생명에 봉사하기 위해 하는 일은 자동적으로 우리 모두를 이롭게 하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생명인 것 간에 온전히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명이다. "너에게 좋은 것이 나에게 좋다."는 것은 과학적 사실이다. 주)

상호 간에 연결이 되지 않는 아지트의 쓸쓸함을 말해 무엇하겠나.

소속감이 사라진 아지트가 하는 일은 먼지를 청소해야 할 공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안전한 공간이며 표현의 자유로움이 있고 온전히 내가 되는 길로 이끄는 아지트의 오묘함.

먹고사니즘의 탈출구로서의 역할을 하는 아지트의 특별함을 나는 매일 맛보고 있는 것이다.

이 소박한 아지트인 작은 우주에서 우리는 자신을 탐구하고 이해하며 쓰고 고민하고 읽는다.


그래서 나는 내가 행하는 글쓰기와 그림으로 우리의 세계 전체를 개선하고 있음을 믿는다.

이곳에서 우리 각자는 자기표현의 자유를 누리면서도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자신을 세우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아지트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오래전 선이의 방에서 들었던 환상적인 이야기가 지금 이곳 이 자리에서 이어지고 있다.

지금 우리의 아지트에서.





주) 의식혁명, 데이비드 호킨스. 판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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