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성을 따르는 삶
놀이공원에 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놀이기구 중에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컵이 있다.
회전컵은 모양도 비슷하고 돌아가고 오르내리는 방향이나 형태도 비슷하다.
이 회전컵은 작동자의 명령에 따라서 일정한 시간에만 움직인다.
공원이 개장해야 하고, 손님이 있어야 한다.
손님의 안전을 기본으로 장착하고 즐거움과 짜릿함을 주어야 한다.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한다고 해도 이 패턴은 비슷하다.
우리에겐 각자의 내면에 회전하는 컵을 가지고 있다.
내면의 회전컵은 모두 다르다.
색깔도, 재질도, 방향도, 크기도.
인간 내면의 회전컵은 작동자와 인간의 협력이 시너지를 내는 구조다.
방향과 때를 부여받았으나 그것을 거절하고 수락하는 것도 인간의 이성에 달려있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것이라면 내가 해야 가장 좋은 것이다.
회전의 속도나 방향이 다르지만 작동하기 시작하면 다함이 없는 에너지로 폭발력을 만든다.
에너지는 다른 사람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그래서 일단 돌면 원심력에 의해 더 넓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이럴진대,
나라는 컵이 다른 컵을 보고
'아, 저 컵이 훨씬 예뻐.'
'저 컵이 도는 방향이 더 좋아 보여.'
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도 우리는 흔히 비교의 맨홀에 빠지고 만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시편 49편 20절]
나 자체가 완전한 회전컵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사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각자에게 할당된 넓이와 깊이가 다르다. 그 넓이와 깊이대로의 우리 자신을 발견하기란 바닷속에 떨어진 바늘을 찾는 일과 비슷하다. 아무리 바다가 깊고 넓다고 해도 바다에 떨어진 바늘은 존재한다. 그만큼 우리는 우리의 역량을 눈치채지 못한다.
그래서 현실을 창조할 힘을 가졌지만 사용하지 못한다.
회전하는 컵의 잠재력, 회오리처럼 일으키는 에너지를 사장시킨다.
다른 사람의 컵만을 바라보는 일을 멈춘다면,
내 모습을 거울로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나를 투명하게 들여다볼 시야가 트여 있다면, 바닷속 바늘을 찾을 수 있다.
창조는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 내가 준비되면 바늘은 신기하게도 내 앞에 떨어질 것이다.
스키에서 '회전'을 가리키는 말에 '슈붕'이라는 단어가 있다.
독일어인데 어린아이의 말처럼 직관적이고 가볍다.
가볍다고 해서 그 안에 든 의미까지 가볍다는 뜻은 아니다.
이 말을 입 안에서 굴리면 슈붕슈붕슈붕하고 회전하는 힘이 느껴진다.
단어도 생명력이 있어 자체동력으로 힘을 가진다.
자신이 가진 역량대로 슈붕~ 하고 회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세상을 바꿔놓을 것인가,
내 안의 에너지를 움직여서 더 큰 나를 향해 회전하려면 삶이 계속해서 주어지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임을 받아들이고* 내면의 상상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현실에 쪼그려 앉아있기보다 내 안의 창조성을 일깨워서 더 넓은 쪽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을 계속 성장시키려는 회전력이 필요하다.
포기하지 말고 우리 안에 있는 보화를 찾아 나서야 한다.
지금의 나에게 회전력이라고 하면 매일 쓰는 힘에 사색을 더해 관찰하고 정신에 물기를 공급하는 독서라고 할 수 있다. 읽은 책을 혼자가 아닌 함께 나누며 내면의 에너지로 만들고 그 에너지를 믿는 힘이 또 다른 회전력을 불러오는 구심력이 된다.
실재하는 구심력과 가상의 원심력이 나의 내면을 유지시키고 균형을 이루어 더 큰 힘으로 확장시킨다.
그래서 계속 글을 쓰는 동력을 얻는 것이다. 다듬어지지 않고 거칠고 치기 어린 글이 나오더라도 자체검열에 빠지지 않으려고 한다. 그저 매일 숨 쉬듯 쓰고 매일 책으로 영양을 공급받는다.
현재 엄마의 유산 두 권의 책이 슈붕 하고 있다.
12명의 작가들이 두 권의 책을 낳으려고 정신의 즙을 만들고 자신을 일구고 파헤치고 짜내는 농번기를 보냈다. 이제 한 걸음만 더 걸으면 이들이 자신의 날개를 달고 회전할 것이다. 우린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매일 성실하게 해낸 것뿐이다.
오늘 읽은 문장에서 나는 '확고성, 신념, 성실성이 가장 진실한 철학'**임을 알았다.
원래 알고 있는 인식이 아니라 감각을 따르면서 내게 오는 깨달음의 소리를 똑바로 듣고 회전하는 컵의 법칙을 믿고 나아간다.
그게 오늘 내게 온 오성(悟性) 임을 안다.
* 네빌고다드의 부활, 서른세개의계단.
** 나는 무엇을 아는가, 몽테뉴, 동서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