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두 딸 중 둘째는 나름 비혼을 추구하는 아이입니다.
결혼에 대한 생각이 그리 곱지 않거든요. 특히 대한민국에서 결혼이란, 직업을 가진 여성에게 많은 희생을 요구하니까요. 요즘은 남자들도 마찬가지지만요. 게다가 수직상승한 집값은 뜬구름처럼 멀리 있어서 아예 결혼의 싹을 자르는 원흉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결혼제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으로 입을 삐죽거리더니 점점 인식이 달라지는 아이의 변화를 발견합니다.
나름 치열하면서도 신나게 20대를 보내던 둘째의 친구들이 30대가 갓 지나자 하나둘 짝을 찾았다는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그래서 요즘 아이가 친구들의 결혼식에 다녀오는 빈도수가 잦네요. 한 달에 한 건은 옵션이고 한 달에 세 건일 때도 있어서 통장이 텅장이 되어가고 피 같은 휴무일을 바쳐서 이동하느라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랍니다.
친구들의 결혼식 준비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결혼은 왜 그리 해야 할 게 많은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고 하네요.
일하랴, 결혼 준비하랴, 결혼하랴, 결혼생활하랴, 너무 시간을 소진한다며 머리를 도리도리 합니다.
이런 현실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결정적인 이유를 들자면, 도통 자신의 마음을 끄는 사람이 없다네요. 그러면서 둘째는 자기를 끈질기게 추앙하던 여타의 남정네들을 가볍게 물리치고 그저 일, 일, 일에 자신을 내던지더라고요. 그렇게 연애도 결혼도 한쪽으로 제쳐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웬일?
그렇게 말한 지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남친을 데리고 온다지 않겠습니까?
대략 듣기로는 그 애가 3년 동안 둘째만 바라보면서, 둘째를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1년 전부터는 둘째도 그 아이의 진심과 정성을 인정하고 받아주었답니다.
그럼, 그렇지!
근데 연애하면서는 거의 다 그렇지 않나요?
콩깍지의 특징 중 하나니까요.
그래서 저는 응~그렇구나, 하면서 그에 대해 더 묻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둘째가 스스로 털어놓을 때까지 제 아빠에게도 함구했습니다.
사실 말하고 싶어 죽을 뻔했죠. 얼마나 좋아할까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부모를 가장 잘 챙기는 둘째를 뺏긴 것 같은 마음에 무지 싫어라 할 수도 있고요.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한대도 참느라 사리가 생길 뻔했지요.
뜨악한 엄마 태도에 자존심이 좀 상했을까요?
갑자기 집 근처에 온 김에 엄마랑 식사하겠다고 합니다. 뭔 번개도 아니고 말이죠. 속으론 그랬지만 겉으론 우아하게 대답했어요.
그래, 그러렴.
집 앞까지 데리러 온다길래 앞에 나가 기다렸다가 작은 한정식집을 골라 셋이 마주 앉았습니다.
둘째 남친은 우리 큰손자처럼 피부가 까무잡잡하니 쌍꺼풀이 진하고 커다란 눈을 가진 사람이네요.
그 아이가 조금은 어쩔 줄 몰라하는 게 느껴집니다. 얼마나 긴장되었을까요? 상견례도 아니고 뭣도 아니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여친의 엄마를 만나 밥 먹는 자리가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 순간 내면의 제게 물었습니다.
그에게 궁금한 점이 있니?
다른 건 별로 없는데 요즘 가장 관심 갖고 있는 이슈가 궁금하긴 하네.
하지만 저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아침도 거르고 내심 긴장하며 여기까지 왔을 청년을 그냥 밥이나 편하게 먹여 보내고 싶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약속이라 집밥을 해주지는 못했지만 말이지요.
그래서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편한 친구처럼요.
그가 어제 있었던 일을 얘기하면 웃었고, 둘째에게 어떤 헐랭이 기질이 있는지 제가 얘기할 때는 그래도 둘째 편을 들면서 이런 점은 누구보다 잘해요, 하면서 같이 웃었습니다.
그는 밥 두 공기를 뚝딱 해치우고 저는 집에서도 안 하는 반찬 가까이 놓아주기를 해가면서 즐거운 식사를 했습니다.
헤어지면서는 둘째를 아껴주는 그의 마음이 고마워서 정답게 악수도 나누었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잘 지내라는 고마운 인사를 대신하면서요.
집에 도착하니 소식을 전해 들은 첫째가 득달같이 전화해서 따발총처럼 묻네요.
인상은 어땠어?
무슨 얘기했어?
뭐 궁금한 건 없었어?
아빠한텐 얘기했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는 제 얘기를 듣고 나서는 내 그럴 줄 알았어. 그래도 이것저것 물어봐야지 왜 그랬어, 합니다. 자매들의 이슈는 서로 핑퐁거리며 나누는 맛이 꿀이지요.
나중에 둘째가 편하게 대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고 전하네요. 오랜만에 밥 두 공기를 집밥처럼 맛있게 먹었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요. 어머님이 도시 어머니라 세련되고 (이 부분에서 빵 터졌네요) 이야기도 편하게 받아주셔서 좋았다고요.
그러면 됐지요.
결혼 생각도 없는 둘째가 남자친구라고 소개할 때는 자신의 인식의 폭을 넓히고 그동안의 고정된 생각에서 나오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니까요.
가족들이 둘째에게 바라는 것이 둘째의 생각과 다를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존중합니다.
채근하고 권하고 잔소리하는 건 둘째의 독자성을 무시하는 것이잖아요.
둘째가 자신의 고정된 생각을 접고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며 좀 더 확장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좋네요.
새로운 국면이 젊은이들에게 닥칠 때 그 국면을 향한 그들의 태도가 자신에게 당당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형태든지 기성세대가 만든 것을 그대로 따르지 않기를요. 그들이 구축할 세계가 저희가 구축한 세계를 가뿐히 뛰어넘어 새로운 틀을 창조하는 흐름에 넘겨지고 다시 재창조되기를 바라게 돼요.
저는 우리 아이들 또래의 청년들을 대할 때면, 항상 부모의 마음이 됩니다.
사회 안에서 우리 아이들이 너나없이 존중받고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았으면 해요.
어떤 모습이든 자신을 믿고 자신의 판단을 밀고 나가길 바랍니다. 청년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취급당하길 원하지 않거든요.
남친이든
사위든
며느리든
손녀든
새로운 가족이 생기는 건 정말 기쁜 일입니다.
과연, 울 둘째 사위의 자리를 그가 차지할까요?
궁금합니다.
어떤 결론이 났을지 여러분에게 후기를 전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아 참, 김칫국은 사양합니다만 속이 느글거릴 땐 즉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