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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초보가 되는 일

by 캐리소


초보 일러스트레이터로, 초보작가로의 걸음마를 시작하고 나서 뭔가 초보가 되는 일은 침 꿀꺽 삼키게 하는 마력이 있습니다. 저는 초보운전도 못해본 사람이지만 그 긴장도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간접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코칭자로의 과정도 역시 그렇네요.

늘 마음을 다잡고 코치로서의 페르소나를 입기 위하여 저를 바로 세웁니다.

그래도 결국은 허둥대고 실수하고 머릿속이 멍~하고 내 위치를 잊어버리기 일쑤입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계속 가기만 한다면 길이 열릴 것이고 언젠가는 저만의 특성화된 코칭이 나오지 않을까요?


열심히 코칭실습 중입니다.

아직까지 제가 코칭을 진행한 건은 네 건 뿐입니다. 제가 피코치가 된 게 네 건이고요.

코칭을 진행한 건에 대해선 말씀드릴 수 없어요. 피코치의 프라이버시 문제이기도 하지만 제가 한 일이 별로 없거든요. 그냥 그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하시도록 제 자리를 지킨 것? 코칭 도중에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고 그 해결책까지 스스로 찾아내도록 기다려준 것?


크~

쓰다 보니 정말 내적 희열이 차오르네요.

이건 경험해보지 않고는 절대 알 수 없는 거니까요.(당연한 말이구먼)

그럼 제가 받았던 코칭이야기가 관건이네요.

코칭자는 저에 대해 많은 부분 모릅니다. 그냥 함께 글을 썼던 문우이고 나이가 어느 정도고 어디에 살고 자녀유무를 알 뿐입니다.

사실 이게 나인건 아니잖아요.


그런 상태에서 우린 마주 앉습니다.

근황이나 일상을 묻고 점점 깊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저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됩니다. 내가 마주치는 나는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나이기도 하고 오래 묵혀놨던 나이기도 합니다.





얼마나 생경할까요?

낯선 이를 낯선 곳에서 맞닥뜨린 것처럼 당황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울컥이가 소환됩니다. 이럴 땐 울컥이를 막으면 안 됩니다. 울컥이는 울컥 터져야 제 길을 찾는 것입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그렇습니다. 여기선 아무렇게나 울컥여도 뭐라 욕하지 않습니다. 코칭자는 피코치를 다함없이 존중하니까요.


이러면서 저는 제가 단단해지는 것을 곁에서 지켜봅니다. 이 경험을 돌려놓으면 피코치의 이런 모습을 저도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르겠습니다.

'나'와 '너'가 충분한 '나'와 '너'로 채워지는 것을 경험하는 건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경험이 아닙니다.


오늘은 제 딸나이의 코칭자에게 코칭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평소 언제나 겸손한 자세로 성실의 아이콘 같은 모습을 보여주던 분입니다.

그녀는 제게 큰 비전을 물었지만 저는 모르겠다고 대답합니다.


그런 제게 그녀는 평소에도 궁금해서 묻는다며 다시 한번 꿈이 뭐냐고 질문합니다. 그래서 그냥 힘 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그녀가 제 꿈에 대해 눈을 빛내며 공감합니다. 소름이 돋는다고 하면서 제 꿈이 이루어질 게 진심으로 믿어진다며 놀라워합니다.


그때부터였나 봅니다. 제 눈이 반짝이고 목소리톤이 높아지고 얼굴이 환해졌다고 관찰자 선생님이 피드백해주시네요. 그녀는 저와 댄싱을 한 것입니다. 하나로 어우러진 코칭은 함께 추는 춤이네요.

내 안에서 새어 나온 새로움과 희열이 제 양볼을 붉게 물들입니다. 저 스스로 찾아낸 해답에 제 자신도 놀라면서요.

역시 코칭이란 것은 놀라운 도구입니다.


이렇게 또 작지만 내적으론 커다란 경험으로 하나의 도약을 쌓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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