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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할 일을 하였다고

by 캐리소



아, 이젠 다시 돌아오지 못할 젊은 시절의 나날이여.
그때는 걸으면서 어느 한 대상에 지나치게 호기심을 갖는 일 따위는 없었다. 나 자신만을 보고, 듣고, 맛보고, 느꼈다. 나 자신, 나의 자라나는 육체, 지식, 가슴 안에 자연이 담겨 있었다. 어떤 벌레나 곤충, 짐승과 새도 나의 시야를 제한할 순 없었다. 나의 눈은 무한한 우주로 열려 있었다. 하늘을 나는 한 마리 새였으나, 이제는 한갓 눈 속의 한 점 티끌이 되었다.


소로의 이 문장에 길게 표시가 되어 있다.

그런데 무엇이 내 마음결을 건드렸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감정선을 따라가 본다.


돌아오지 못할 젊은 시절의 나날... 에서 멈춰 나의 세계로 들어가 본다.

젊은 시절의 소로우처럼 나는 진정 나 자신만을 보고, 듣고, 맛보고, 느낀 적이 있었나?

정말 그게 가능한 일일까?


그는 자신 안에 자연이 담겨 있었다고 했는데 그것을 알아차린 그는 젊은 시절부터 통찰이 남다른 듯하다.


그럼 나는 무얼 담고 있었을까?

그저 찌그러진 인식.

뒤틀어진 자의식.

왜 그렇게 느끼냐면, 나 말고는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마저도 내 안에 웅크린 에고만을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외의 아무것도 담지 못하는 눈은 막혀 있는 하늘이다.


내가 부정하는 나.

그래서 나를 보고 있었는데도 그 안에 나는 없다.

내가 되고자 원하는 것이 바로 나였음에도 나는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어떤 반응도 내게 돌려주지 못했다.


나는 지금이야말로 정신이 젊은 시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야 자연이 나 자신이며 나는 하나의 우주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지나칠 정도의 몰입감도 가져보고 싶고 어떤 대상에 깊이 호기심을 느끼기도 하며 나의 시야를 제한할 정도의 다른 것이 없다는 사실을 내게 증명해 보이고 싶다.


지금은 우주가 열리듯 피어오르는 확장성을 인식으로 막지 않는다. 인식을 지르밟고 의식을 여는 행위가 믿음을 더욱 공고히 할 것이다.

아직 하늘을 여는 한 마리 새도 되지 못했지만 속의 한 점 티끌이어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내가 서있는 이곳에서부터 걷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니까.

채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갈 방향을 잃지 않고 다시 찾을 수 있다면 그동안의 비바람과 천둥이라도 제 할 일을 하였다고 칭송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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