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저녁, 리모컨으로 TV 채널을 돌리다 MBC에서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토크쇼, '질문들'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전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이 대담자로 나왔다. 채널을 돌리다 걸려든 거라 아마 대담 중반 정도부터 본 듯하다. 대담 중 박용만 회장의 은퇴 후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들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아주 긍정적으로 삶을 바라보고 계셨고 선한 영향력을 위해 지속적인 봉사활동도 빼놓지 않고 하고 계신 모습이 보였다. 우리 사회의 가진 자들이 보여줄 수 있는 모범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방송이라 한 면만 보일 수 있겠으나 그렇다고 쳐도 존경받고 따를만한 어른임은 분명한 듯 보였다.
그 대담을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에 '저런 인품의 어른들이 곳곳에 계셔서 사회가 유지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됐다. 그래봐야 박 회장께서 올해 연세 70이시니 나하고 9살 차이밖에 안 난다. 어르신이라고 하기엔 그렇고 인생 선배님 정도면 좋을 듯하다. 사회에서 열 살 정도의 나이차는 맞먹는다고 하는데 뭐. 하지만 삶을 살아온 궤적의 크기는 전혀 달랐다. 나를 되돌아보게 된 시간이었다.
대담 중에 박용만 회장이 직접 기획했다는 "죽음에서 돌아오다, 메일린의 기적"이라는 다큐멘터리 영상이 잠시 나왔다. 메일린은 2012년 프랑스 리옹에 살던 세 살짜리 여자아이였는데 음식을 먹다 기도폐쇄로 쓰러져 뇌사상태에 빠진 한국 입양인 가족 2세였다. 메일린은 뇌사 상태에 빠져 의료진이 안락사를 권유할 정도였지만 9일 만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깨어났다. 의식회복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신경학적 후유증이 없이 정상적으로 회복한 사례인지라 바티칸 교황청에서도 '의학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기적'으로 공식 인정을 했다고 한다. 박용만 회장의 다큐는 이 기적의 당사자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박 회장은 메일린의 가족들이 포기하지 않았던 사랑의 힘과 누구도 단정할 수 없는 생명의 힘을 보았고 메일린을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가 더해지고 누구나 삶의 끝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모습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박 회장의 다큐와 비슷한 스토리의 영화도 있다. 2016년 5월에 개봉했던 '미라클 프롬 헤븐(Miracle from Heaven)'이다. 이 영화도 불치병에 걸린 딸아이를 회복시키기 위한 가족들의 놀라운 사랑을 담고 있다. 끝내 병명을 알지 못하고 좌절하던 때 집 앞 나무에 오르다 추락하는 사고를 당하고 난 뒤 그렇게 아프던 증상이 사라진다. 이 영화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는데 절망 앞에 맞섰던 가족들의 사랑과 주변인들의 배려를 눈물겹게 펼쳐 보여주고 있다.
의학적으로 이렇게 치료 없이 질병이 예상치 못하게 호전되거나 완치되는 것을 '자연 치유' 혹은 '자발적 차도(spontaneous remission)'라고 한다. 이 현상은 암과 같은 질병이 저절로 퇴행할 때 발생하지만 정확한 유발 요인은 아직 의학적으로 이해되지 않고 있다. 신체의 면역 체계와 관련이 있는 정도로만 이해할 뿐이다. 이런 현상을 종교에서 '기적'이라는 단어로 차용한다.
희망 중에 헛된 희망이 있을까? 헛되면 희망이 아닐 것이다. 선한 마음도 기적이다. '미라클 프롬 헤븐' 영화에 감초처럼 사랑과 배려를 해준 병원 접수처 직원, 항공사 카운터 직원 등등 사랑을 전하는 모든 이들의 진정한 조력이 모여 꺼져가던 한 생명의 회복을 만들었다.
세상엔 악한 놈도 많지만 더 많은 선 한 사람들이 있기에 지금 생명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세상에 절대 고독과 절대 소외는 없다. 반드시 내 옆에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 나를 기다리는 사람, 나를 즐겁고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이 있다. 내가 못 찾고 내가 신경 쓰지 않았을 뿐이다. 세상은 혼자 버텨내기엔 너무도 냉엄하지만 같이 옆에 있고 같은 방향을 바라봐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면, 지금 삶이 천국이다.
삶에 기적을 펼칠 것인지, 악몽의 시간 속에 빠져있을 것인지는 오로지 내가 세상을 보는 시각과 태도에 달렸다. 긍정을 사랑하고 옆 사람을 포옹하며 온기를 나눈다면 세상의 기적은 언제나 일어나는 일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