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자기 정체성을 갖는다는 것은 단순히 남들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자신만의 색깔과 개성을 부여하는 일, 그것이 진정한 정체성이다. 세상에는 80억 명이 넘는 사람이 있지만, 각자 고유한 빛깔로 세상을 채운다. 그 빛깔을 어떻게 드러내느냐의 문제, 다시 말해 ‘다름’을 ‘특별함’으로 바꾸는 방법이 바로 '자기만의 톤 앤 매너(tone and manner)'를 지키는 것이다.
톤 앤 매너는 말 그대로 ‘어조와 태도’를 뜻한다. 쉬운 듯 보이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개념이다. 개성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각자가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개성의 해법이며, 자신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순간이 바로 톤 앤 매너의 출발점이다. 남을 따라 하기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꾸준히 탐색하고 표현하는 과정, 그것이 자신만의 톤 앤 매너를 만들어 간다.
이 개념은 디자인 분야에서 자주 쓰인다. 브랜드나 작업물의 전체적인 콘셉트와 분위기를 일관성 있게 유지하는 원리를 말할 때, 색감·스타일·언어·표현법 등 모든 요소를 조화롭게 맞추는 것이 톤 앤 매너다. 잘 만든 웹사이트나 광고를 보면 한눈에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유도, 바로 이 톤 앤 매너가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지만 감지되는 통일된 리듬, 그것이 곧 정체성의 시각적 언어다.
개인에게도 이 원리는 그대로 적용된다. 인생의 톤 앤 매너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행동하는 태도’의 조합이다. 어떤 사람은 강렬한 원색처럼 삶을 밀어붙이고, 어떤 사람은 은은한 파스텔처럼 부드럽게 세상을 감싼다. 마치 팬톤 컬러 차트 속의 수많은 색처럼,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색으로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색이 더 선명하냐가 아니라, 그 색이 자신에게 얼마나 진실하냐는 점이다.
톤 앤 매너의 핵심은 일관성과 통일성이다. 정체성에 대한 명확한 개념과 방향이 있어야,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사람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사회의 기대나 유행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다 보면 결국 자신의 색을 잃는다. 그러나 톤 앤 매너가 뚜렷한 사람은, 환경이 바뀌어도 자신만의 목소리를 잃지 않는다. 그것이 곧 삶의 품격이자 성숙의 징표다.
글을 쓸 때도 톤 앤 매너는 중요하다. 짧은 에세이라도 꾸준히 써 내려가다 보면 자신만의 문체와 리듬이 만들어진다. 문장을 끊는 호흡, 문단을 전개하는 방식, 단어를 고르는 습관 등 모든 것이 글의 톤 앤 매너를 구성한다. 똑같은 주제를 다뤄도 사람마다 글의 분위기가 다른 이유다. 잘 쓴 글은 문장 사이에 리듬이 있고, 리듬이 있는 글은 읽는 사람의 마음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나는 글을 쓸 때 흐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써 내려간 뒤, 다시 읽으며 리듬이 어긋나는 부분을 다듬는다. 문장이 길면 쉼표를 넣어 호흡을 조절하고, 문장이 짧으면 여운을 남겨 리듬을 만든다. 글은 결국 ‘말의 시각적 변형’이다. 말에는 높낮이와 장단이 있듯, 글에도 리듬이 있다. 말과 글, 그리고 노래는 모두 리듬의 예술이다. 리듬이 무너지면 메시지도 흐트러진다.
자연에 계절의 리듬이 있어 지금 단풍의 칼라를 반복하며 세상을 물들이고 있듯이, 말과 글, 노래에도 리듬이 있고 우리의 삶에도 리듬이 있다. 나는 종종 내 삶의 톤 앤 매너를 돌아본다. 내가 어떤 태도로 세상을 대했고, 어떤 어조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는지. 바쁘게 살아가는 동안 그 리듬이 흐트러지지는 않았는지 맒이다.
달팽이가 지나가며 남긴 물기 자국이 햇살에 스며들 듯, 우리의 삶의 흔적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진다. 그래서 때때로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톤 앤 매너를 정비해야 한다. 그래야만 ‘나’라는 존재의 색이 퇴색하지 않는다.
살다 보면 누구나 만족하지 못할 때가 있다. 계획이 어그러지고, 관계가 흔들리고, 의욕이 식어가는 순간이 찾아온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그래도’라는 단어가 중요하다. ‘그래도 괜찮다’, ‘그래도 잘 살아왔다’, ‘그래도 감사하다.’ 이 짧은 접두어 하나가 삶의 태도와 삶의 톤 앤 매너를 바꾼다. ‘그래도’는 체념이 아니라 지속의 언어, 그리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긍정의 리듬이다. 아무리 삶이 거칠고 힘들어도, 그래도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삶의 의미를 증명한다.
결국 톤 앤 매너는 삶을 바라보는 자세이자, 나를 표현하는 방법의 철학이다. 글의 리듬이 문장을 살리고, 색의 조화가 디자인을 완성하듯, 인생의 리듬이 삶의 질감을 만든다. 세상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기준으로, 남의 시선이 아닌 내 내면의 목소리로 삶을 조율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기 다운 톤 앤 매너를 갖게 된다. 삶의 정점에서 스스로에게 “그래도, 잘 살아왔다.” 이 한마디면 충분하다. 그 말속에는 감사와 회한, 그리고 품격이 함께 깃들어 있다. 세상이 뭐라 하든, 자기만의 톤 앤 매너로 삶을 완성해 가는 사람, 그가 진정 잘 사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