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경험, 그리고 자원들을 모으고 쌓아 올리는 행위에는 두 가지 궤가 있다. 하나는 '누적(累積)'이며, 다른 하나는 '축적(築積)'이다. 언뜻 보아 같은 의미로 읽히지만, 그 속에 담긴 의도와 작동 방식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를 가진다. 누적이 단순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쌓이는 양적인 증가, 즉 흘러간 시간의 합이라면, 축적은 의지와 의도가 개입된 능동적인 집적이다. 생명이 없는 흔적과 진정한 생명을 얻은 유산 사이의 변곡점은 바로 이 '의도'에 달려있다.
누적은 인간의 의지가 부재한 곳에서도 일어난다. 강물이 흘러와 쌓인 퇴적층, 수억 년의 시간을 통과하며 굳어진 화석은 누적의 산물이다. 그것들은 시간이 남긴 기록일 뿐, 스스로 움직이거나 변형을 일으킬 힘이 없다. 생명이 없는 흔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반면, 의지를 가지고 쌓아 올린 축적은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그것은 단지 개인의 소유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 전달되어 새로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동력, 즉 작동하는 힘으로 기능한다.
우리가 겪는 지식 축적의 가장 비효율적인 현장은 바로 문제풀이식 교육 시스템이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15년 이상의 긴 시간 동안 교실을 오갔음에도, 당장 머릿속에서 핵심 개념을 끄집어내어 "그것은 이것이다"라고 명확히 정의할 수 있는 지식이 과연 몇이나 남아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질문 앞에서 깊은 좌절감을 느낄 것이다. 아예 어떤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는 공백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지식을 축적하는 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시간을 누적시키는 데 익숙해졌음을 의미한다.
지식은 이해하는 것이라는 오해는 축적을 방해하는 가장 전형적인 오류다. 우리는 '이해했다'는 막연한 착각 속에 안주하며 정작 핵심적인 것을 놓친다. 뇌과학적으로 보아도, 이해의 바탕에는 결국 암기(暗記, memorization)가 깔려있다. '외워서 기억한다'는 암기 과정을 생략하고, 즉각적인 정답 풀이식 응용에만 매달리는 것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 같다. 시험이 끝나면 머릿속을 깨끗하게 '포맷'하여 다음 과목을 준비하는 과정의 반복. 이는 변별력이라는 미명 아래 문제를 비비 꼬아서 응용력을 묻고 정답을 찾는 데만 몰두하게 만든 교육 시스템의 슬픈 귀결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헛공부를 했다. 기억해내지 못하는 지식은 공부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식을 축적하지 못한 채 누적된 시간을 지나왔을 뿐이다. 이러한 누적된 시간은 힘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세상은 단순한 '정답'을 찾는 것보다 복잡하고 무한한 '해법'을 찾는 것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정답은 하나일지 몰라도, 해법은 무한대로 많으며, 이 무한한 해법은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조합하고 변형하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진정한 지식과 경험의 축적은 의도된 반복에서 나온다. 지식이 '내 것'이 되는 순간은, 머리로 이해하는 지점을 넘어 입으로 줄줄 읊을 수 있을 때다. 이 지점에서 지식은 더 이상 외부의 정보가 아니라 사고의 일부가 된다. 마찬가지로, 경험 역시 몸이 알아서 움직이도록 체화(體化)되어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 손이 기억하고, 발이 반응하는 무의식적인 능력의 영역으로 넘어가야 하는 것이다.
축적의 과정은 마치 연금술과 같다. 흩어져 있던 파편적인 지식 조각들을 반복이라는 풀과 의지라는 열을 가해 단단한 결정체로 빚어낸다. 이 결정체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변형될 수 있는 강한 내구성을 가진다. 무언가를 완전히 체화한다는 것은, 외부의 자극에 대해 의식적인 판단 과정을 생략하고도 가장 효율적인 반응을 내놓을 수 있게 됨을 의미한다. 일류 장인이나 숙련된 전문가들이 보여주는 번개 같은 판단과 정확한 행동은 모두 의도된 반복을 통한 축적, 즉 체화의 결과물이다.
결국 '산다'는 것은 지식과 경험을 의도적으로 쌓아 올리는 축적의 과정 그 자체다. 이러한 의도적 축적을 통해 비로소 우리는 외부 정보를 그대로 복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변형하고 새로운 기능으로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 이는 남이 만든 해법이 아닌, '나 만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지에 이르게 한다. 바로 이것이 곧 개인의 유일무이함, 즉 '개성(個性)'으로 발현된다.
개성은 단순히 남과 다른 겉모습이나 취향이 아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 의도적으로 쌓아 올린 지식과 경험의 배열 방식이며, 세상을 해석하고 반응하는 자신만의 고유한 필터이자 구조다. 누적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지는 시간의 몫이지만, 축적은 오직 개인이 기울인 노력과 의지의 몫이다.
축적의 과정은 힘과 노력을 요구한다. 의도가 있어야 하기에 필연적으로 힘이 들고, 이 힘든 과정을 반복해야만 진정한 내공이 쌓인다. 힘과 노력 없이 얻어지고 쌓이는 것은 세상에 절대 없다. 설령 무대가로 얻어걸린다고 해도 그것은 절대 '내 것'이 되지 못하고, 사상누각(砂上樓閣)처럼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위험을 안고 있다. 지식의 사상누각이 그렇고, 섣부른 경험이 초래하는 불상사가 그 증거다.
하지만 지식과 경험의 그릇을 채우는 축적의 여정에는 끝이 없다. 지식의 그릇은 우주의 광활한 존재에 대한 경우의 수를 세는 것만큼이나 넓고 크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생명이라는 은총으로 태어나 태양의 밝음을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그 행운의 실체가 무엇인지,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렴풋한 안갯속 윤곽일지라도 내 지식과 경험으로 끊임없이 덧칠을 해보고 싶지 않은가.
쌓아보자. 쌓다가 잊히고 무너져 내릴지라도, 다시 일어나 계속 반복하여 시도하다 보면 그나마 미소 지을 날이 올 것이다. 축적은 그렇게 호랑이 가죽을 남기는 일이며, 역사 속 돌에 이름 석 자를 새기는 일이다. 그것은 분명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