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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꼼히 겨울을 마주하다

by Lohengrin

아침에 일어나 환기도 시킬 겸 창문을 빼꼼히 엽니다. 빼꼼히 여는 이유는 추울 것이라는 지례짐작을 했기 때문입니다. 휴대폰 화면에 영상 4도의 숫자를 봤기 때문입니다. 확연히 낮아진 숫자입니다.


그러고 보니 빼꼼히 내려다본 아파트 정원의 느티나무잎 색상이 퇴색한 갈색으로 변해있음을 눈치챕니다. 그렇게 23.5도 기운 지구의 기울기를 따라 변해가는 순환의 과정을 지켜봅니다.

이미 낮아진 온도의 외부 환경에 몸을 맞추어온지도 상당시간이 지났음도 압니다. 바깥을 뛰는 조깅을 멈추고 실내 피트니스센터로 들어간 지도 꽤 됐습니다. 조깅을 한 지 25년도 넘은 습관이기도 하지만, 바깥을 뛸지 피트니스센터로 갈지의 기준온도는 영상 10도이며 대충 이 기준일은 10월 말쯤이 됩니다. 11월부터는 실내운동으로 전환한다는 뜻입니다. 조깅을 하면 운동복이 젖도록 땀이 나게 되는데 가벼운 반팔에 반바지가 제격입니다. 트레이닝복을 입고 뛸 수도 있지만, 뛸 때의 그 느낌과 맛의 기분이 다릅니다. 뛰어 보고 땀 흘려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미묘한 차이라고 할까요? ㅎㅎ


저는 여름에서 가을로의 천이(遷移)는 반팔옷에서 긴팔옷으로 바꿔 입어야 할 때로 구분하며, 아침마다 샤워할 때 적어도 미지근한 물이 나오게 수도꼭지를 돌리고 있는지 보고 알아챕니다. 또한 가을에서 겨울로의 이동은 목도리를 하느냐의 시점으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사실 추우면 입고 더우면 벗는 것이 체온의 항상성을 유지해야 하는 털 없는 원숭이의 기본 생존 조건입니다. 패션과 멋이라는 미명아래 계절의 온도를 초월한 복장을 하는 경우를 간혹 보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아주 예외적인 개인적 취향일 뿐입니다. 아마도 집에 들어가면 보일러나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 것이 틀림없을 겁니다. 뭐 부자의 상징이 '한여름에 밍크코트 입고 한겨울에 비키니 입고 다닌다'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이제는 겨울맞이 채비를 해야 할 때인 듯합니다. 이미 지난 주말, 발 빠르게 김장을 한다는 친구 몇몇이 있습니다. 선제적으로 시간을 관리하는 소식을 들으며 벌써 겨울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음에 화들짝 놀라게 됩니다.

겨울이 왔다는 사실은 한 해의 끝자락에 다가서 있다는 이정표입니다. 반복되는 12개의 숫자 중에 하나만을 남기고 그 속으로 들어감을 의미합니다. 매듭이 없는 시간의 굴레지만 숫자의 의미를 통해 매듭을 지어 구분하고 시간의 경과를 되돌아봅니다. 아무것도 한 일없이 한 해가 지나고 있음을 매년 후회하며 사는 것이 범인들의 모습입니다.


눈앞에 다가온 숫자로 겨울을 봅니다. 숫자 앞에 - 가 붙어 영하임을 표시하는 순간, 본격적인 겨울이라 칭하는 경계에 근접해 있습니다. 지구의 생명체로 사는 한, 가장 민감한 것 중의 하나가 온도입니다. 체온의 항상성을 유지해야 하는 개체로서 온도의 적응 속도는 건강의 척도가 됩니다.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적응 과정이 필요합니다. 급격한 변화에도 몸이 휘둘리지 않게 면역력을 키워야 합니다. 운동입니다. 적절한 긴장과 적절한 극복의 힘을 동시에 갖추어야 합니다.


곧 대기의 물방울들이 눈이라는 형태로 대지로 내려올 때 그 현상을 낭만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몸이 자연에 순응을 잘해야 계절도 예쁘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만추를 넘어 겨울의 초입이 더 어울리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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