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새노새 젊어 노새 늙어지면 못 노나니~~"
세월의 화살을 피해 갈 수 있는 생명은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시간의 흐름을 악령으로 규정한 인간들에게는 더욱 가혹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논다'라고 규정한 행위들에 있어서, 누리고 행할 수 있는 타임라인이 정해집니다. 시간 대비 에너지 효율성이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젊어서는 가능한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효율성이 떨어지니 몸이 피곤해지는 현상입니다. "세상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는 말은 그래서 진리입니다.
어제저녁, 매달 한 번씩 모이는 저녁 모임이 있어 나갔습니다. 모임의 좌장께서 지난주 열흘이 넘는 일정으로 지중해 크루즈를 다녀오셔서, 대화의 소재가 크루즈로 확 쏠렸습니다.
요즘 시니어들의 여행 트렌드가 크루즈를 많이 선택하는 듯합니다. 가까운 제 주변 지인분들도 알래스카 크루즈를 다녀오시는 등 크루즈를 갔다 왔다는 주변 소식을 심심치 않게 듣게 됩니다. 어제 모임의 좌장께서 다녀오신 지중해 크루즈에도 경북 경산에서 계모임으로 오신 어르신이 무려 80명이나 탑승을 했더랍니다. 아웃도어 등산복으로 무장한 어르신들이 유럽 대륙을 쓸고 간지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이제 여행 패턴이 다양화되어 럭셔리 여행의 끝판왕이라고 하는 크루즈도 거침없이 즐기는 양상으로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크루즈도 이용 형태에 따라 가격차이가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열흘정도의 일정으로 하는 지중해 크루즈라면 왕복 항공료가 포함되어 기본이 1인당 500만 원 정도에서 시작을 합니다. 하지만 가격대비 여행의 효율성을 따지면 크루즈가 압권입니다. 하루 종일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하는 유럽 패키지여행과는 감히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지중해 크루즈의 경우, 열흘 정도면 여러 루트가 있겠지만 보통 이탈리아 사보나를 출발하여 남프랑스 마르세유, 모나코, 니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시칠리아의 팔레르모를 거쳐 로마로 해서 사보나로 돌아오는 일정으로 지중해 연안의 4개국 정도를 들르게 됩니다. 기항지에서 내려 관광을 하고 배로 돌아오면, 배는 밤새 지중해의 파도를 가르고 다음 기항지로 갑니다. 버스로 이들 도시들을 연결해서 간다고 하면 아마 한 달은 버스 타고 돌아다녀야 할 겁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꿈의 여행 스타일입니다. 크루즈 선내에서는 24시간 언제든지 뷔페로 식사를 할 수 있고 저녁이면 여러 공연 및 파티, 이벤트들로 승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 줍니다. 제대로 즐기려면 턱시도에 이브닝드레스 한 벌 정도는 케리어에 넣어가야 합니다. 크루즈에서 파티복을 대여할 수도 있지만 돈이 듭니다. 파티문화에 익숙지 않고 언어소통이 원활치 않은 한국의 시니어들에게는 다소 무리가 있긴 합니다. 저녁엔 그냥 식사하고 자면 상관없는 일이긴 하지만 크루즈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반쪽짜리 여행이 되고 맙니다.
에고 뭐 크루즈여행을 소개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저도 크루즈는 못 타봤습니다. 그렇다더라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하니 언젠가 한 번쯤은 타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이가 점점 들수록 여행을 나서기가 조심스러워진다는 점입니다. 물론 정년퇴직하고 나니 경제적인 이유로 망설여지는 것도 원인일 수 있으나 이젠 몸이 못 따라가는 현상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어제 모임의 좌장이 함께했던 지중해 크루즈에서도 70대 아버님을 아들이 모시고 효도관광을 왔는데 프랑스 니스에서 아버님이 넘어져서 고관절을 다쳐 수술을 하는 상황까지 갔답니다. 수술비가 6,000만 원가량 나온다고 했는데 가입한 여행자보험 비용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고, 수술 후 한국으로 이송하는 항공료만 해도 스트레처를 이용해야 해서 일반석의 6배 정도를 내야 했답니다. 효도하려다가 추가비용만 1억 가까이 들어가는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겁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고 여행 중에 다치면 정말 난감합니다.
그래서 젊어서 다니라는 소리입니다.
나이 들면 신체 반응속도가 느려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순간적으로 대처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넘어지고 다치게 됩니다. 열흘이 넘는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면 시차 적응도 늦어진답니다. 어제 모임의 좌장께서도 60대 중반까지도 여행에서 돌아와서 몸이 피곤하다거나 시차를 못 맞춰 잠이 안 온다거나 해 본 적이 없는데 60대 후반 들어서고부터는 시차적응한다는 소리가 뭔 소리인지 알겠다고 하십니다. 밤에 잠이 안 오는데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그렇답니다. 나이 들어 잠이 안 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더랍니다.
한마디 하십니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많이 다녀. 지금이 제일 젊을 때니 망설이지 말고"라고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앞서 세월을 살아가신 선배님들을 뵈면 딱 70세를 정점으로 여행의 패턴과 속도가 확 바뀌는 것을 보게 됩니다. 유럽과 미주와 같은 장거리 여행을 못 나서고 6시간 미만의 동남아 위주로 말입니다.
여행을 좀 다녀봤다는 사람들의 끝판왕이 북유럽이나 카리브해, 지중해 크루즈와 아프리카 사파리 여행인데, 모두 장거리, 장기 여행입니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다녀와야 할 텐데, 기회를 마련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