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든다는 것은 단순히 낡아가는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이라 지칭되는 모든 존재가 짊어진 운명적인 ‘에너지 관리 시스템’의 작동 결과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 또한 이 거대한 시스템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다. 환경에 적응하며 생존해야 한다는 대전제 아래, 우리 몸은 끊임없이 선택과 집중을 반복한다. 이것은 모든 생물이 기본적으로 장착한 숙명과도 같다.
인간의 신체는 태아에서 유아로, 그리고 성인으로 성장하는 긴 시간 동안 놀라울 정도로 유연한 변화를 겪는다. 생명과학에서는 이를 ‘발달적 리모델링(Developmental Remodeling)’이라 부른다. 특정 시기에는 생존에 필수적이었던 기관이, 환경이 바뀌거나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과감히 폐기되거나 전혀 다른 기능으로 재편되는 현상이다. 이는 건물을 짓고 부수는 물리적 공사보다 훨씬 정교하고 비가역적인 생명의 구조조정이다.
이러한 ‘덜어냄’과 ‘바꿈’의 가장 극적인 사례가 바로 흉선(胸腺 ; Thymus)이다. 가슴뼈 뒤편, 심장 앞쪽에 있는 이 기관은 우리 몸의 면역 훈련소다. 유년 시절, 흉선은 외부의 적을 식별하고 공격하는 T세포를 길러내느라 쉴 새 없이 가동된다. 세상의 수많은 병원균 정보를 수집해 방대한 ‘면역 라이브러리’를 구축하는 시기다. 그러나 사춘기가 찾아오고 성호르몬이 분비되기 시작하면 흉선은 자신의 임무가 끝났음을 직감한다. 성인이 되었다는 것은 면역 데이터베이스가 거의 완성되었음을 의미하며, 신체의 우선순위가 ‘성장과 방어’에서 ‘번식’으로 전환되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우리 몸은 냉정한 에너지 효율화 모드로 돌입한다. 유지비가 많이 드는 흉선 조직은 40대를 기점으로 지방으로 대체되어 급격히 쪼그라들고, 80대가 되면 거의 흔적만 남는다. 흥미로운 점은 흉선의 퇴화를 유도하는 직접적인 신호가 바로 ‘성호르몬’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생식과 면역이라는 두 가지 거대한 생존 과제 사이에서 일어나는 치열한 ‘트레이드오프(Trade-off)’를 보여준다.
조선시대 내시(內侍)들의 족보인 ‘양세계보’를 분석한 내용을 보면, 그들의 평균 수명은 약 70세로 당대 양반들보다 무려 20년 가까이 더 오래 살았다. 현대 과학은 이를 남성 호르몬의 부재가 흉선의 조기 퇴화를 막아, 노년기까지 강력한 면역 기능을 유지해 준 덕분으로 해석한다. 번식 능력을 포기한 대가로 면역을 얻은 셈이다. 자손 번식과 개체 유지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자연의 계산법은 이토록 철저하고 빈틈이 없다.
흉선뿐만이 아니다. 우리 몸 곳곳에는 ‘한때는 전부였으나 지금은 사라진’ 기관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엄마 뱃속의 태아는 폐호흡을 하지 않기에, 심장에서 폐로 가는 혈액을 대동맥으로 바로 빼돌리는 우회로인 ‘동맥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세상에 나와 첫울음을 터뜨리고 폐가 팽창하는 순간, 이 문은 즉시 닫히고 ‘동맥관인대’라는 끈 형태의 흔적으로만 남는다. 생존 환경의 변화에 따른 즉각적인 리모델링이다. 또한, 신생아 시절 체온 유지를 위해 스스로 열을 내던 특수 난로인 ‘갈색 지방’ 역시, 성인이 되어 체온 조절 능력이 생기면 목 주변에 극소량만 남기고 사라진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진화의 흔적들도 발견된다. 파충류나 조류가 눈을 보호하기 위해 쓰던 순막의 흔적인 눈 안쪽의 ‘제3안검’, 소리 나는 쪽으로 귀를 움직이던 ‘이개근’, 그리고 균형을 잡던 꼬리의 흔적인 ‘꼬리뼈’까지, 이것들은 인간이 직립 보행을 하고 도구를 쓰며 사회적 동물로 진화해 온 역사가 몸에 새겨진 화석들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리모델링은 뇌와 혈액에서 일어난다. 뇌는 태아기부터 3세까지 시냅스(신경 연결)를 폭발적으로 늘리지만, 청소년기를 거치며 자주 쓰는 회로는 고속도로처럼 넓히고 쓰지 않는 회로는 과감히 잘라내는 ‘가지치기’를 단행한다. 에너지 효율과 정보 처리 속도를 높이기 위한 뇌의 결단이다. 피를 만드는 공장 또한 태아 시절에는 뼈가 물렀기에 간과 비장이 담당했으나, 뼈가 굳으면 골수에게 그 임무를 넘긴다. 대신 간은 해독과 대사로, 비장은 노화된 혈구를 파괴하는 청소부로 업종을 완전히 변경한다.
이처럼 우리 몸은 한 번 지어지면 끝나는 고정된 건축물이 아니다. 생애 주기의 필요에 따라 끊임없이 증축하고, 폐쇄하고, 용도를 변경하는 유연한 시스템이다. 현재의 생존을 위해 과거의 영광이었던 기능을 과감히 버리는 선택, 그것이 바로 진화이자 노화의 본질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기억의 데이터를 반도체라는 외장 하드에 담아두고, 판단과 일처리의 상당 부분을 AI에 일임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흉선이 성호르몬의 등장으로 퇴화했듯, 우리의 뇌 또한 ‘디지털 편리함’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무언가를 퇴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족의 전화번호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마주할 때면, 이것이 단순한 건망증이 아니라 뇌의 ‘디지털 가지치기’가 아닐까 하는 서늘한 자각이 든다. 진화 과정이 한두 세대 만에 급격히 발현되지는 않겠지만, 사용하지 않는 기관은 도태된다는 자연의 법칙은 예외가 없다. 편리함에 기대어 사고의 근육과 기억의 세포를 스스로 흉선처럼 쪼그라들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두려워만 할 일은 아니다. 우리 몸이 그랬듯, 비워낸 자리에는 새로운 기능이 채워진다. 단순 기억과 정보 처리를 AI에게 넘겨주어 생긴 뇌의 여유 공간을 우리는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깊은 사색인가, 통찰인가, 아니면 그저 무기력한 공백인가.
나의 신체와 정신에서 무엇을 퇴화시키고 무엇을 새롭게 발현시킬 것인가. 그것은 이제 자연의 선택을 넘어, 내가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결정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 잃어버리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비워진 공간에 어떤 새로운 가치를 채워 넣을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