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혼여 #2 DAY 1_pm 01:20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아봤을 때, ‘행운’이란 걸 가진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 삶이 매번 불시에 닥치는 소나기 같은 불운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맞기만 했던가. 그건 또 아니다. 예고를 했든 하지 않았든 맞기 싫은 비는 대체로 우산으로 막아냈거나 우산 같은 존재가 곁에 있었다. 내리쬐는 태양마저 피하고 싶으면 스스로 적당한 선글라스 정도는 골라 쓸 수 있는 인생이기도 했다. 나는 그런 많은 순간들을 그저 ‘보통의 날’로 이름했다. 개중에는 불운했음에도 ‘평범’으로 격상된 날보다 충분히 요행으로 불릴 수 있는 날들이 당연하다는 듯 ‘예사’로 격하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이후마저도 절대 그러지 않고 있다고 자신할 수 없는 것도 여전한 현실이다. 어리석지만.
따져보면 결코 불운하지 않았다. 단지 나는 ‘누구보다’ 더 좋지 않음에 억울하다고 투정 부렸을 뿐. 그렇다. 행운과 행복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있었고, 그건 내가 아닌 타인을 향하고 있었다. 기준을 누구에 두고 있느냐에 따라 나의 성공과 실패는 동요했고, 대부분 좌절이라는 성적표를 받아 들고 스스로 우울의 어둠 속을 걸어 들어갔다. 단 한 번의 반항도 없이. 그렇게 상대 평가에 온통 내맡겨졌던 나의 행복과 행운이 이름 그대로 나라는 문턱을 넘는 일은 안타깝게도 거의 없었다. 스스로 행운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와락 안기지 않는 한 말이다.
대만에서는 여행자들을 위한 특별한 이벤트 '럭키 드로우'가 있었다. 3~90일간 대만 자유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는 행사로 당첨되면 5000 대만 달러를 준다. 현재 환율로 계산하면 약 23만 원! 여행을 가서 그냥 걷고 싶다는 희망 사항 외에 이 달콤한 제안이 나를 대만으로 불렀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내심 큰 기대를 갖고 있으면서도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이라며 실망을 미리 단속했다. 여행 시작부터 기분을 망치고 싶지는 않다는 너무나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기대의 부피를 줄이고 또 줄였다. 그러나 아무리 나를 다그쳐도 기댓값 전부를 없앨 수는 없었다.
어쩌면 나에게는 이미 받아들일 준비를 마친 불운을 인정하는 시간이라고 해야 더 적절할지 모를 행운을 확인하는 길은 길었다.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MRT를 타기만 하면 되는데 마지막 관문인 '럭키 드로우'를 해결하지 못한 채 1시간여 줄을 서서 기다렸다. 얼마나 어이없나. 기대하지 않는다면서 1시간을 공항에서 소비하는 나라는 사람. 기대하는 거지. 실은 아주 많이. 그런데 그게 아닐까 봐, 미리 상처에 빨간 약을 바르듯이 마음에 예방 주사를 놓고 또 맞히는 거지.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잖아'라는 말을 하려고.
그런다고, 기대란 게 없어지는 것도, 작아지는 것도 아니고, 설령 기대가 먼지만큼 작아진다고 하더라도 실망은 클 수 있는데도, 부질없는 시도를 하고 끊임없이 상처받았던 것 같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서 상처는 ‘받은 게’ 아니다. 누가 준 게 아니니까. 분명 누군가가 나에게 준 것도 일부 있겠지만 대부분 스스로 상처를 냈다. 역시 나는 안된다고. 내가 하는 일이 다 그 모양이라고. 상처라고 여겨지는 많은 것들에 주저 없이 자학으로 응답했다. 다만 ‘그럴 수도 있는 경험’, 한낱 '어쩔 수 없는 시행착오', 그저 '불운에 불과한 것'들에 실패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절망이라는 상처를 만들고, 애써 좌절이라는 시련을 키워 나 스스로를 무너뜨린 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이거 안 되는 거 같아’
탈락이라는 결과를 받아 든 내 앞 참가자의 실망 섞인 푸념을 바통처럼 받아 들고 나는 나의 행운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섰다. 방법은 간단했다. 여러 기기 중 하나에 이벤트 참여 신청 후 받은 QR코드를 읽히기만 하면 됐다. 결과가 뜨기 전까지는 간단한 미니 게임이 등장했다. 그 게임을 두고 어떻게 하면 당첨 확률이 높다더라, 하는 여러 ‘카더라’를 접했지만 나는 기대를 접었으므로(!) 저절로 게임오버가 되고 결과가 뜨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스스로 럭키라는 이름표를 붙인 행운이 찾아왔다. 자고로 내가 받아들이는 행운이란, ‘럭키 드로우’에 덜컥 당첨된 이 순간처럼 그래야만 겨우 인정받을 수 있는 것.
행운을 발견할 용기를 잃은 마음 앞에서, 더군다나 두려움을 감싸고, 이미 실망이라는 갑옷으로 무장한 마음 앞에서 행운은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니, 드러낼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불행을 매일 안고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