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혼여 #8 DAY 1_pm 04:47
호텔에서 시먼딩까지는 걸어서 11분 거리. 시먼딩 초입에서 시계를 보니, 정확했다. 오늘 먹은 거라곤 오전 11시 무렵 먹은 기내식이 전부. 저질 체력에 기내식만 먹은 것 치고는 선전 중이다. 이게 고행인지, 여행인지 모를 일... 하하.
이제는 정말 뭘 좀 먹어야겠다. 아니, 먹어야 한다. 이 거리의 우리나라 국룰은 ‘아종면선’의 곱창 국수를 먹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몇 년에 한 번 곱창을 먹을까 말까 하는 나로서는 국룰이라고 무조건 따르기는 무리. 무엇보다 4월의 대만 날씨는 6월의 우리나라 날씨와 비슷했는데, 뜨거운 것을 먹기에는 너무 더운 날씨였다. 완벽한 계획 없이 방황할 나를 알았다. 혹시나 있을 이 순간을 위해 가고 싶은 장소를 구글맵에 열심히 표시해 두었다. 근처의 어딘가를 아무 때고 갈 수 있도록. 구글맵을 켰다. 이럴 수가.
계획이 없다는 사람의 구글맵이라는 사실이 의아했다. 잔뜩 별표로 뒤덮인 지도. 타이베이 한 달 살기를 해도 다 못 가볼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그 시점에 가고 싶은 곳은 딱히 없었다. 체력적으로 너무 지쳤을 뿐 아니라 무더워서 입맛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여행의 시작. 아직 가야 할 목적지가 있는 몸. 에너지 충전이 필수였다. 급한 대로 당만 충전할 무언가를 찾다가 또 다른 국룰 ‘행복당’ 버블티가 눈에 들어왔다.
깔끔하면서도 제법 넓은 매장은 밖에서도 버블티 만드는 전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타피오카라는 ‘버블’의 존재는 생전 처음 봤는데, 한 알 한 알 장인의 손길이 따로 없었다. 한국에서는 그냥 동그란 알맹이들이 ‘버블’이란 건가 보다 하고 말았다. 곱창 국수가 그랬듯 원래 단 것을 싫어하는 내가 버블티를 사 먹은 적은 한두 번 있었을까. 먹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러니 ‘버블티에 대한 식욕’을 느낀 건 그때가 거의 유일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내가 주문한 건 가장 대표 메뉴인 흑당 버블티. 기대가 크지 않은 나에게 가격은 살짝 충격이었다. 120 대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 5천 원. 현지 식당이나 야시장에서 한 끼가 3~4천 원 정도로 저렴한 편인 대만 물가를 생각했을 때 음료 한 잔의 가격으로는 상대적으로 비싸게 느껴졌는데, 다른 대만 버블티 브랜드보다도 비쌌다. 그럼에도 뭐가 얼마나 대단해서 대만을 다녀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행복당 버블티’ 노래를 부르는 것일까, 궁금하긴 했다.
‘웨이팅’이라는 걸 좀처럼 하지 않는 나지만 못 이기는 척 줄을 서본다. 10분 정도 기다렸을까. 내 버블티가 나왔다. 한 모금 힘차게 빨아 당긴다. 대충 빨리 먹고 이동할 심산이었다.
‘와, 이게 뭐야?’
솔직히 ‘버블티’하면 ‘단 거’라고만 여겼다. 당연히 행복당 버블티에 대한 내 기대도 다르지 않았다. 먹어보니 전혀 달랐다. 단순히 ‘단 거’라고 낙인찍으면 안 되는 맛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달지 않았고 딱 적당하게 달면서 고소했고, 수제 버블의 식감도 쫀득쫀득하게 살아있었다. 알알이 터지는 버블을 삼키면 바닥을 치던 체력은 물론 기분까지 덩달아 신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 여행이란 이런 거였지.
몰랐던 깨달음’
스스로 깨닫기 전에는 그 무엇도 알지 못한다. 버블티를 먹으며 그 사실을 다시금 느꼈다.
지금까지의 모든 여행이 좋았다. 내가 좋았으므로 함께한 타인도 당연히 그럴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꼭 그런 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아주 오랜 후에 알게 됐다.
메이 언니는 내 여행의 상당 부분을 함께한 여행 메이트였다. 평소 죽이 잘 맞는 편이라서 많은 여행을 함께 했다. 제주도, 일본, 프랑스, 스페인 등을 함께 다녔고 튀르키예가 우리가 함께한 여행의 마지막이었다. 그 후 다음 여행도 같이 가자고 여러 번 졸랐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그래. 언제 그러자’였지만 그 언제를 정하는 날은 다른 때와 달리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몇 차례 다음 기약을 받지 못한 후 도대체 이유가 뭐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언니는 대답을 망설였고, 오늘은 꼭 알고 싶다는 나의 계속된 요청에 말을 골랐다.
"네가 힘들어하는 표정을 보는 게
나는 조금 힘들었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대답이었다. 메이 언니도 나와 함께한 여행의 모든 순간이 다 좋았다고 했다. 재미있었고, 즐거웠고, 또 가고 싶다고. 하지만 그것만 있는 건 아니라고. 그런 순간순간들에 ‘나의 지친 표정’도 함께 보인다고 했다.
여행의 순간, 나는 어떤 표정이었을까.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보지 못하니까. 그럼에도 메이 언니가 나의 어떤 표정을 봐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저질 체력인 걸 감안해도 다른 사람들보다 에너지 방전이 훨씬 빨랐다. 1-2시간 후면 지치기 시작했다. 사실상 여행 대부분의 시간 동안 지쳐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메이 언니는 체력이 평균보다 좋은 편. 평균보다 완전 아래와 평균 이상에 속하는 두 사람이 함께 다닌 여행. 나는 언니가 무엇을 감당해야 했는지, 그때 깨달았다.
언니는 여행의 매 순간 웃고 있었다. 그런 언니를 보며 나 또한 웃고 있다고 생각했다. 실은 아니었던 거지. 애써 지친 기색을 감추려 했고, 감추고 있다고 믿었지만 전혀 그러지 못했던 거다. 아니, 그럴 수 없었던 거다. 체력적으로 힘들다면 그건 자신의 문제. 혼자 감당하고, 견디고, 이겨내야 하는 것. 단지 ‘힘들다’ 말하지 않는 것으로 티를 내지 않는 게 되는 것이고, ‘괜찮다’ 말하면 잘 감춰질 거라는 최면에 걸렸던 것뿐. 지금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꿈에도 모른 채로 말이다.
만약 내가 여행 내내 메이 언니의 웃는 얼굴이 아니라 지친 나의 얼굴을 마주하고 다녀야 했다면 지금처럼 여행의 좋은 기억만 가질 수 있었을까.
아니.
언니는 그 하나가 신경 쓰였을 뿐, 나머지는 다 좋았다고 했다. 진심으로 괜찮았던 걸까, 궁금했다. 나는 묻지 않았다. 언니가 정말 괜찮았다고 해도, 괜찮지 않았다고 해도 언니에게 전해야 할 미안함은 달라질 것 같지 않았고, 언니라면 그런 나에게 마음 쓰지 않을 사람이 아니었으며 나라면 또 어떤 표정으로 언니를 곤란하게 할지 몰랐다. 어쩌면 이미 곤란하게 해 버린 걸지도......
스스로 깨닫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 당신이 나를 위해 얼마나 애써야 했던 건지. 실은 알게 된 지금도 모르겠다. 그 마음을 무엇으로 갚아야 할지. 갚을 수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