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혼여 #9 DAY 1_pm 05:42
1일 차 계획 시먼딩 투어는 구글맵에 찍힌 별표들을 즉흥적으로 추가하면서 점점 뚱뚱해지고 있었다.
먼저 눈에 들어온 곳은 시먼딩 역 6번 출구 바로 앞에 위치한 무지개 횡단보도. 2019년 아시아 최초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대만의 성평등과 포용성을 상징하는 공간이자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지지하는 상징이기도 한 이곳은 SNS 인증숏 덕분에 타이베이의 가장 핫한 포토존 중 하나이다. 그래서인지 사람이 정말 많았다. 일행들끼리 서로의 최고 인생샷을 찍어주기 위한 품앗이가 끊임없이 펼쳐진다. 혼자라 차마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도 그냥 지나가기는 아쉬워 수많은 인파 사이 무지개 한쪽 끝에 얼굴을 들이밀고 셀카를 남겨본다.
다음으로 발길이 닿은 곳은 1908년 일본 식민지 시절에 지어진 타이베이의 대표적인 역사적 건축물인 시먼홍러우(西門紅樓). 현재는 극장, 카페, 기념품 가게, 전시 공간 등 다양한 문화·창작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내가 간 날은 휴관일이라 내부를 구경할 수는 없었다. 곧바로 다음 장소를 추가. 여기서 800미터 정도 더 가면 나타나는 보피랴오 역사 거리. 이곳은 청나라 시대 모습 그대로 붉은색 벽돌로 지은 건물이 쫙 늘어서 있는데, 각종 드라마와 영화 촬영 장소로도 쓰인다고 한다. 각각은 짧게는 100 미터 이내 길게는 800 미터 이내에 모여 있어서 걸어 다니면서 구경하기 좋았다.
이렇게 나는 아종면선, 행복당 버블티, 무지개 횡단보도, 시먼홍러우, 보피랴오 역사 거리를 거쳐 용산사로 가고 있다.
사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야심 찬 기획(!)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여행 유튜버에 도전해 보는 것. 핸드폰을 최신 기종, 가장 좋은 사양으로 바꾼 것도 이러한 야심 때문이었다. 여행 정보를 얻기 위해 수많은 여행 유튜버와 일상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면서 왠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군가의 성취한 결과가 때로 쉬워 보인다기보다 어려워 보이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했어도 그 정도는 했을 거라는 자만이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 말을 등에 업고서 나타났다. 그 누군가의 무엇이 실은 너무 부러우면서도 그걸 인정하면 내가 실패자나 패배자가 되는 것 같아서 그러기 싫었다. 그들은 그들이고, 나는 난데. 마치 나의 일부를 뺏긴 사람처럼 굴었던 시절이었다. 셀 수없이 많은 이들을 지독히 미워하고, 깎아내리기에 여념이 없던 때이기도 했다. 그래야만 내가 지켜지는 것 같아서.
"누구를 인정하기 위해서 자신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어. 사는 건 시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네의 문제 같은 거니까. 각자 발을 굴러서 그냥 최대로 공중을 느끼다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내려오는 거야. 서로가 서로의 옆에서 그저 각자의 그네를 밀어내는 거야."
김금희_경애의 마음
그 시절 나는, 저만치 올라간 시소 반대쪽에 나를 앉히고, 상대를 탓했다. 내가 올라갈 수 없는 건 너 때문이라고. 당신만 아니면 얼마든지 올라갈 수 있다고. 웃긴 건, 정작 그 누군가를 앉히지 않고서는, 나 스스로는, 단 한 뼘도 올라가지 못했다는 사실. 미워하고 원망하는데 전력을 쏟은 내가 올라갈 곳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올라갈 욕심도 내지 못했다. 잘 알았으니까. 그게 얼마나 대단하고, 힘든 건지. 그 과정을 겪을 용기도 자신도 내겐 없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내려오길, 나와 같은 자리에 있기를 바랐던 건지도 몰랐다.
시소가 아니라 ‘나의 그네’를 밀어 보고 싶었다. 프레임 밖 보이지 않는 것, 볼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간과한 채로 나도 할 수 있을 거라며 자신까지는 아니고, 약간의 용기를 냈다.
하지만 프레임 속으로 들어가기로 한 여행 1일 차에 ‘여행 유튜버’ 야망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영상이고, 사진이고 너무 더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영상에는 내가 품은 야망의 몇 배 이상의 노력과 체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다. 어려워 보이지 않았을 뿐, 그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 이대로 그 어려운 일에 집착하다가는 여행의 ‘ㅇ’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쯤 해서 그냥 관광객이 되기로 한다. 그나마 영상다운 영상(!)의 마지막이 용산사가 되어버린 것은 바로 이 결심이 이뤄진 곳이라서였다.
여행에 다녀온 후 영상 조각들과 사진을 모아 편집해 보기로 했다. 여행 전부터 ‘유튜버의 꿈'을 가지고 편집툴을 익힌 게 도움이 됐지만 그래도 5일 동안 매일 8시간 편집을 해야 했다. 난생처음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채널 배너 만드는 법도 배웠다. 10분 남짓 되는 세 편의 여행 영상을 업로드 한 지 1년이 훨씬 지난 지금. 조회수는 세 자릿수를 넘지 않는다. 다 합쳐야 살짝 넘는다. 하하하.
채널이 내 기대보다도 훨씬 못 미친 데에는 나보다 앞서간 누군가 때문이 아니다. 그렇다고 부족한 나 때문도 아니다. 그냥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꼭 누군가를 탓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날도, 그런 일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