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3. 더 추워지기 전에

by 안개인듯

다소 여윈 느낌은 있었으나 그녀가 틀림없었다. 남편을 빨랫감이라고 했던, 다시 노래한다던 남자의 부인.


해가 중천에 떠있는 정오였지만 겨울 공원은 스산했다. 이 서늘한 기운 속에 무슨 일로 여자는 벤치에 혼자 앉아 있는 것일까. 궁금해도 먼저 다가가 말을 걸진 않았다. 그렇지만 내가 이젤을 놓고 작업하는 장소라서 그 옆에 조용히 화구를 펼치고 앉았다. 여자가 가만히 내 움직임에 시선을 두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화가님, 오랜만이네요.”

먼저 입을 연 여자의 목소리는 기운이 없었고 상당히 느렸다. 어딘가 억양이 좀 불편한 느낌이었다. 풍이라도 맞은 것일까.

“다이어트를 하셨나요? 좀 여위시긴 했는데 좋아 보이네요.”

말을 해놓고는 아차 싶었다. 뭔가 불편해 보이는 여자에게 좋아 보인다니. 그러나 그녀의 전체 모습은 살이 고르게 깎여 나간 듯 부피가 줄어 있어서 좋아 보인다는 게 거짓은 아니었다.

“그래요? 화가님만 그렇게 얘기하시네요.”

나를 향해 입을 연 여자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니 입모양도 조금 일그러졌다. 분명히 무슨 일이 있는 몸이었다.

“여전히 그림은 그리시는 거죠? 저는 여기서 딸을 만나기로 했어요.”

느릿하게 말하는 여자에게 그러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언덕 아래서 젊은 여자가 ‘엄마’라고 소리치며 다가왔다. 추운 날 맑게 갠 겨울하늘처럼 파란 패딩으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두툼하고 긴 패딩이지만 분명히 임신한 몸이었고, 거의 만삭에 가까워 보였다.

“아, 이 분이시구나. 엄마가 화가님한테 그림을 그려 받아야 한다고 굳이 여기까지 오라고 하셨거든요. 오늘 안 나오실 지도 모른다더니 어떻게 이렇게 만났대? 우리 엄마 촉이 대단해요.”

여자의 딸은 보자마자 많은 문장의 말을 했다. 그 모습이 여자가 나를 처음 만난 날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던 모습과 겹쳐졌다. 둘은 닮아 있었다. 어쩌면 딸은 여자의 말을 대신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기 엄마가 말이 느리고 불편하다는 것을 애써 드러내고 싶지 않은 수고로 보였다.

“얘가 내년 이월이 산달이라, 그전에 같이 사진을 찍자는데 내가 그림으로 하자고 했어요.”

여자가 숨을 끊어가며 천천히 말했다. 그 모습을 딸은 애써 편안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남편이 떠났어요. 저는 좀 아팠고요.”

여자의 말에 딸은 살짝 놀랜 표정이었다. 왜 저런 얘길 할까 하는 눈짓을 제 어미에게 했지만 여자는 괜찮다는 얼굴이었다. 정작 놀란 것은 나였다. 노래를 되찾아 콘서트까지 한다던 그 남편이 떠나다니.

“아빠 얘길 화가님에게 하신 줄은 몰랐어요. 맞아요. 아빠는 쪽지 한 장 남기고 떠나셨거든요. 새 노래가 있는 새 세상을 찾아간다고. 하, 정말. 제가 볼 땐 어떤 사이비 집단에 들어가신 것 같아요. 엄마는 그 여파인지 쓰러지셨는데 그나마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아 가볍게 지나가서 다행이죠. 화가님도 예술가지만 저는 정말 예술하는 사람들 이해가 안 돼요. 자기중심적이고 무책임하죠. 아빠만 봐도. 아, 죄송해요.”

딸은 마음에 맺힌 게 많은 사람 특유의 빠른 말투로 그간의 사정을 얘기했다. 딸의 얘길 들으면서 내 마음이 너무 힘들어졌다. 왜들 그럴까. 여준이나 여자의 남편이나.

“엄마가 화가님 얘길 하셨어요. 맘에 드는 친구라고. 꼭 저와 함께 있는 그림이 필요하다고 해서 온 거예요. 아빠 떠나고는 엄마에겐 아무 소망도, 기쁨도 남아있지 않아 속상해요.”

딸이 이야기하는 동안 여자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나는 이 상황을 받아들여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게 마땅치 않았다. 그림도 당연히 수심에 가득 찬 모습으로 그려질 것이므로.


몇 개월의 시간 동안 이 모든 것이 급속도로 이루어진 것에 마음이 아득해지기도 했다. 남편의 요양원에서도 언제 어떤 모양으로 내게 연락을 해 올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일이라도 당장 요양원을 가야 할 것 같았다. 아니, 오늘 가봐야 할까.

<내일의 염려는 내일이 하는 것.>

찬바람이 한 줄기 지나갔고 딸은 엄마의 목도리를 매만졌다.

“추워지려나 보네요. 엄마가 괜찮으시겠어요? 추위엔 힘드실 텐데.”

내 마음이 오락가락하는 것을 눈치챈 딸이 그러니 속히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다. 더 추워지기 전에.


결국 나는 여자와 딸을 위해 초소에서 긴 의자를 빌려와 두 사람을 앉혔다. 아니, 태아까지 있으니 세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기 전에 이 가족에게는 뭔가 사전 작업이 필요했다. 나는 내가 마시려던 커피를 따라 여자에게 권하며 나도 한 잔 마시고 나서 시작하자고 했다.

커피가 든 종이컵이 여자의 손에서 흔들리자 딸이 대신 들고 기울여 조심스럽게 마시게 했다. 그 모습이 다정하고 따사로워 난 얼른 크로키를 시작했다. 커피를 마시게 하는 임신한 딸과 늙은 엄마는 역할이 바뀐 젊은 엄마와 어린아이의 표정이었다.

좋아, 잘 한 선택이었어.

그림을 그리는 동안 딸은 엄마가 천천히 커피를 음미하며 마시는 것을 도왔다.

마침내 그림을 끝내고 나도 남아 있는 커피를 마시려고 텀블러를 기울였다.

“정말 화가님이시네요. 엄마가 그랬어요. 마음을 읽는다고.”

태어나서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내가 마음을 읽다니. 이건 여준에게나 해당되는 말이었다. 나는 언제나 사무적이었고 규격화되어 있으며 유연성이라곤 전혀 없어서 그 어떤 마음도 읽었다는 얘길 듣지 못했었다.

‘숙, 넌 그냥 가만있어. 공감이 쉽지 않은 사람은 그냥 있는 게 제일 나아. 물론 네가 정서가 메말랐다는 건 아냐. 너무 애쓸 필요는 없다는 거지. 하지만 굉장히 계획적이고 실수가 없으니 뭐 인생은 아마도 탄탄대로가 아닐까 싶어. 내게 없는 것을 넌 가졌잖아. 축하해.’

이런 비슷한 얘길 여준뿐 아니라 부모님이나 친구들 사이에서도 들었었다. 물론 그들의 표현은 조금씩 달랐지만 중심 내용은 같았는데 그런 평가가 난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여준의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보다는 나의 평탄한 길이 내게는 맞았다.

그런 나에게 마음을 읽는다는 말을 해 주다니. 아마도 여자의 딸이 나를 잘못 이해했거나 내가 뭘 잘못했거나 둘 중 하나일 거란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래요? 처음 듣는 이야기라서.”

완성한 그림을 건네주자 여자의 딸은 지갑을 꺼내며 탄성을 질렀다.

“오 마이 갓. 그림이 뭐라고 할까. 하여간 참 특별하네요. 너무 좋아요. 어쩌면 이렇게 그리시나요? 제가 이탈리아 여행 중에 거리의 화가한테서도 초상화 그려 받은 적 있는데 비교가 안 돼요. 엄마가 불러낸 이유가 있었네요. 고맙습니다.”

딸의 손에 들린 그림을 본 여자의 표정도 빛이 스며들듯 환해졌다. 살짝 일그러진 입가에 번진 웃음이 꽃처럼 보인 것은 착각이었을까.

“무료예요. 제 모델이 되어 주셨으니.”

딸이 굳이 꺼내든 현금을 밀어내는데 기분이 좋았다. 이 모녀에게, 아니 특히 여자에게 무엇인가 좋은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소망과 기쁨이 없다는 이 여자에게 무엇이 기쁨이 되며 소망이 될까 생각하는데 내 손자 리우가 생각났다.

“어디 살아요?”

여자의 딸은 이곳에서 한참 떨어진 북서울 쪽이었다. 거리가 너무 멀면 어떡하지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대답이 곧 돌아왔다.

“엄마가 불편해지셔서 옆으로 이사하려고 해요. 겨울이라 맘에 드는 집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출산하고 봄에라도 옮기려고요.”

딸의 대답에 여자는 손사래를 치며 그러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딸의 생각은 굳어진 것 같았고 나도 그게 좋겠다고 말했다.

“제가 경험해 보건대 아마 손자가 태어나면 어머니는 정말 행복해지실 거예요. 남편과의 삶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환희가 어머니에게 생길 거니까요.”

내 말에 모녀는 모두 무슨 뜻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하긴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안다는 것이 나의 경우에 쉽지는 않았다.

“남편이며 아빠였던 분이 찾아 떠난 새 노래건 뭐건, 아이의 탄생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랍니다. 새 노래에 비견할 수 없도록 고귀하고 찬란한 기쁨이죠.”

이렇게 떠드는 내가 생경스러웠다.

그러나 처음으로 내 모습이 맘에 들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22. 보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