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5. 나침반

by 안개인듯

새벽에 소변 때문에 잠이 깼다. 3시가 조금 안된 시각이었다. 화장실을 다녀와 다시 잠을 청했으나 말똥말똥했다. 내 잠은 비교적 신사적이어서 깼다가 자거나 잠자리가 바뀐다거나 하는데 예민하지 않았다. 다시 이불을 턱 밑까지 끌어당기는데 까칠한 것이 턱에 스쳤다.


“엄마는, 좋은 이불 사라니까 왜 고집이야. 거위솜털이 얼마나 좋은데. 이건 뭐 섞였네. 깃털에 찔리고 싶어?”

몇 년 전 겨울 이불을 사러 나갔다가 루아에게 지청구를 먹고 산 오리털 이불이었다. 루아가 고른 것은 가격에서도 차이가 컸지만 어쩐지 거위 앙가슴털이란 말이 불편했다. 어차피 거위고 오리고 잡아서 털을 뽑아내는 것은 마찬가지나 그땐 그랬다. 그때까지는 제정신이었던 남편이 웃으며 놀렸다.


“그냥 목화솜을 사지 그랬어요. 오리를 덮고 자는 건 글쎄.”


남편의 말에 잠깐 상상력이 동원되어 오리털 이불을 한 동안 쓰지 않았다. 해마다 세탁만 해서 놓아두었는데 겨울을 한 번 지낼 때마다 부피가 얇아지고 깃털 끝이 박음질 밖으로 기어 나와 있곤 했다. 그러다가 꺼내 쓰기 시작한 것이 남편의 요양원행 이후인 올 겨울이었다.


턱 밑에서 까끌거리던 깃털을 다시 속으로 밀어 넣고 잠을 청했으나 헛일이었다. 결국 일어나 휴대전화를 들고 거실로 나갔다. 안팎이 시커먼 공간 속에서 휴대전화의 불빛은 지나치게 밝아 옆에 있는 조명등을 켰다.

루아가 보낸 손자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고 있자니 아기가 보고 싶었다. 그러나 오늘은 남편에게 가기로 한 날이었다. 여기저기 뉴스를 뒤적이고 광고를 보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어제 요 앞 개천에서 청둥오리를 봤어요. 여전히 이쁘긴 한데 이젠 북쪽으로 안 날아가나 봐. 여기가 여름이 시작되는데도 그냥 있더라고. 적응이 되면 텃새가 된다더니 그렇게 된 건가? 가고 싶을 텐데.”


소매 없는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은 남편이 현관문을 밀며 들어와 한 첫소리였다. 나는 에어컨을 작동시키려고 리모컨을 들고 있다가 바닥에 떨어뜨렸다. 하필 깔려 있는 러그를 건너 타일로 된 바닥에 부딪친 리모컨은 완전 분해가 되었다.

남편의 이야기에 반응할 사이도 없이 벌어진 일이라 아무 말 없이 흩어진 조각을 모으는데 좀 짜증이 났다. 난데없이 웬 청둥오리.


“리모컨은 다시 사면되니까. 우리 냉면이나 말아먹읍시다.”


저 사람은 온갖 식재료가 집에 다 있는 줄 아는 모양이네. 갑자기 냉면은 어떻게 만들라는 거야?

속으로 툴툴거리며 일단 주방으로 들어서는데 남편이 큰 소리로 웃었다.


“아, 당신도 참. 냉면 만들 줄이나 알아?”

나중에 알았다. 남편의 말은 밖에 나가 맛있는 냉면을 사 먹자는 것이었다는 걸.



갑자기 몸에 한기를 느껴 뒤척이며 일어나니 소파에서 웅크린 채 잠이 든 걸 알았다. 집안에 난방은 최소한으로 했고 이불도 없이 잠옷 바람이었다. 부르르 떨며 일어나 방으로 가서 오리털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커튼이 내려진 창으로 희미한 아침빛이 스며들 때까지 꽤 잠을 자고 눈을 떴다.

남편과 청둥오리 꿈을 꾸고 나니 마치 남편이 옆에서 이야기하는 것 같아 다시 가만히 눈을 감았다.



“당신 철새들이 하늘에서 어떻게 길을 찾는지 알아? 기러기랑 보면 줄지어서 멋지게 한 방향으로 나가잖아.”

그 정도는 들어봤다. 새들은 지형지물과 냄새, 바람의 방향을 감각으로 알아낸다고. 그리고 까치도 여섯 살 아이의 지능이라는 데 그 정도야 찾지 않을까. 그런데 생각해 보면 여섯 살 아이는 아무 길도 찾지 못한다. 손자 리우가 여섯 살이 된다 하더라도 혼자 길을 찾는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위험한 일이지 않은가. 그러니 소위 말하는 지능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그 감각이 몸에 내재되어 있는 거겠지 뭐, 본능처럼.”

그때 남편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나를 대견한 듯 바라봤다. 어머니 앞에서는 늘 아이 같던 남편은 가끔씩 내게 커다란 산이 되곤 했다.


“맞아, 그게 지자기라는 거야. 지구에 남북으로 흐르는 자기장을 본능적으로 알아챈다는 거지. 결국 나침반 따라가는 게 맞아. 고대에 사막 여행자들이 북극성 보고 갔다는 기록도 그런 거 아닐까? 지금도 사막이나 바다, 정글에서는 나침반이 필수래.”

나는 그저 대답 없이 들었다. 이따금 설명이 필요한 사건이나 물건에 대해 남편이 얘길 하면 난 입을 꾹 다물었다. 남편의 이야기는 그냥 듣고 있으면 대개 재미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혼잣말하듯 흘린 말이 뇌리에 남았다.

“처제는 나침반 챙겨간 것 맞지? 영 소식이 없어서.”

그 당시 이집트에 있던 여준 얘기였다. 사하라를 종단한다나 횡단한다나 하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는 한데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혼자 가는 것도 아닐 테고. 나침반을 챙기든지 북극성을 보던지 다 알아서 할 일이었다. 언젠가 중얼댔던 말처럼 내가 동생을 지키는 사람도 아니고 중년을 향해 가는 마당에 그런 걱정을 하는 남편이 도리어 신기했다.

“요새 누가 나침반 갖고 여행을 해요? 대항해 시대도 아니고. 걔가 한두 번 이상한 지역을 가는 것도 아니고.”

샐쭉해서 던진 말에 남편은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웃을 일도 아닌데 웃는 남편이 더 이상했다.

“인간에게도 새들처럼 내장된 나침반이 있을 텐데 처제가 그걸 잘 챙겼나 해서 하는 얘기야. 직감이라고 해야 하나? 꼭 그런 것도 아니지만. 하여간 처제가 그런 게 뛰어나긴 한데 건강한 상태가 아니면 오작동하니까. 당신은 걱정이 안 되나 봐?”

기억은 그곳에서 끊겼다. 남편이 무슨 이야기를 더 했는데 내가 딴청을 하며 대꾸를 하지 않았거나 아예 듣지를 않았거나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즈음에 남편이 내게 나침반 선물을 한 기억이 났다. 물론 장난스러운 일이었고 난 그 물건을 어느 서랍엔가 던져 놓고는 잊어버렸는데 갑자기 궁금해졌다. 아직 있으려나? 이사하면서 다 정리해 버리진 않았나.


침대 밑으로 기어 내려와 서재로 쓰는 방의 오래된 책장 서랍을 열었다. 남편이 쓰던 필기구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는 구석에 작은 상자가 보였다. 아이들 문구점에서 파는 나침반이 다 헐어버린 종이상자 속에서 반들반들 흔들렸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마치 그 나침반은 잊힌 연인에게서 받은 선물인 양 묵은 그리움을 끌어냈다. 유통기한 따위가 없는 그 물건을 꺼내서 핸드백에 넣어뒀다. 오후에 남편에게 가져가서 물을 생각이었다.

아직도 내가 나침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거실 창문으로 겨울 햇살이 조용히 스며들었다. 창 앞의 나무들은 잎을 떨어뜨리고 가지만 남아 새들의 움직임이 선명하게 보였다. 내가 이름을 알 까닭이 없는 재색의 아름답고 긴 깃털을 가진 새가 나무에서 무언가 쪼아 먹고 있었다. 아직까지 여기에 남아 있으면 텃새인가 아니면 길을 가던 철새가 잠시 머문 것일까.

커피를 내려서 다시 거실 소파에 앉아 밖을 내다보니 새는 날아가고 없었다.

우리 집은 거실이 남쪽을 향해 앉아 있으니 주방은 북쪽이고 서재는 서쪽이었다. 내 집의 방향 정도는 해가 뜨고 지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해가 지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서재에 가야 했다. 크지 않은 서재의 창문으로도 붉게 물든 저녁 하늘을 넉넉하게 볼 수 있으니까.

그러나 남편이 요양원에 들어간 이후에는 노을을 보러 서재에 가지 않았다. 서쪽에 서재가 있다는 사실을 잊었다. 그뿐 아니라 남편이 있었으면 했을 일상적인 일들을 내 삶에서 삭제하고 있었다.

생각이 이에 이르자 머리가 멍해지며 질문들만 우르르 쏟아졌다.


내 삶의 방향은 남편이었던 거야? 그럴 리가.

남편에게 나는 방향을 잃고 뒤떨어진 철새였을까?

그래서 나는 어디로도 움직이지 못하고 고여 있는 걸까?

갑자기 내 안의 견고한 무엇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24. 처음 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