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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울다

by 안개인듯

민들레가 땅 위로 하나씩 돋아나던 봄날, 남편은 가만히 떠났다.

나와 루아를 포함해 누구도 알지 못했다.

장례를 마치고 나는 길게 잤다.

기면증에 빠진 듯 사정없이 졸고 있는 나를 루아가 병원에 입원시켰고 삼 박 사 일을 내처 잔 것이다. 내가 잠에서 깼을 때 루아는 없었다. 옆에 있던 여자가 아는 체를 했다. 이제 정신이 나요? 여자는 중국교포의 말투로 물었다.

어렴풋이 잠들기 전의 일이 생각났다.

남편을 어머니 유골함 옆에 넣어두고 추모공원이라는 거대한 공원을 둘러봤다. 좀 걷고 싶었으나 공중에 발이 떠있는 듯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결국 고꾸라지듯 주저앉았다.

“망자들이 거닐기에는 너무나 넓지 않니?”

내 질문에 루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지도 않겠구나. 몸이 없으니 가벼이 날아다닐 수도 있겠다. 새처럼.”

역시 아무 대답이 없었다.

“나도 이제 떠나고 싶네.”

“무슨 소리야?”

루아가 처음으로 물었다. 아주 퉁명스러워서 뭐가 못마땅한지 물으려다 그만두었다.

“이사하려고. 집 내놔야겠다.”

“우리 집으로 와.”

“내가 왜?”

루아는 한숨을 푹 쉬고는 한참 만에 대답했다.

“엄마 또 어디로 숨으려고? 숨지 않으려고 이 동네 온 거 아냐? 아직 아냐?”

루아의 말은 도발적이었고 화로 가득 차 있었다.

“알아듣게 말을 해라. 내가 어딜 숨어?”

정말 나는 알 수 없었다. 내 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제, 아무도 없어. 아빠도, 여준 이모도. 할머니도 엄마를 구속할 누구도 없다고.”



내가 뭐라고 소릴 질렀는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예측해 보건대 루아에게 불같이 화를 내지 않았을까. 그래서 모녀가 추모공원에서 거의 싸움질을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상상일 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 채 나는 지금 병원에서 잠을 깬 것이다.

“저녁때 따님 온다고 했슴다.”

링거를 빼고 옷을 찾는 나에게 여자의 황당해하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으니까 퇴원할게요.”

창밖은 벚꽃이 봉오리를 터뜨리려 분홍빛 안개에 둘린 듯 온화했다. 얇게 누벼진 녹색 원피스를 머리로부터 덮어쓰면서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밖이 추워요? 내가 왜 이런 누비옷을 입었을까?”

멀쩡한 얼굴로 여자에게 물었지만 간병인으로 보이는 여자는 안절부절못하는 얼굴이었다.

그녀가 왜 그랬는지는 잠시 후 병실 문을 왈칵 열고 들어온 루아 때문임을 알았다.

루아는 서둘러 뛰어온 느낌이 물씬했다.

“벌써 벚꽃이 폈네. 네 머리에.”

루아의 머리카락에 붙어있는 여리고 작은 분홍빛 꽃잎을 손으로 집어 들고 한참 바라봤다.


“엄마, 왜 울어?”

루아는 벚꽃 잎 따위는 보지도 않고 내 앞에 얼굴을 갖다 댔다.

운다는 걸 알지도 못했는데 루아의 말을 듣고 보니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왜 눈물이 날까.

가슴속에서 막연한 상실감이 올라오고 있었지만 아직 난 그 정체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막막하게 서러웠다.


“엄마 우는 거 처음 보는 거 같아. 막상 아빠 가셨을 때는 아무렇지 않더니.”

딸은 기가 막힌다는 듯 나를 내려다보다 옆에 걸터앉았다. 루아에게서는 더 이상 벚꽃 잎이 떨어지지 않았다. 향긋한 솔향이 루아임을 얘기하고 있었다.

“무슨 말이니. 아빠가 어딜 가?”

내 말에 루아의 눈이 전등처럼 환하게 켜졌다. 오 마이 갓. 엄마, 뭐야.

내가 어디로 간 적은 많았어도 남편이 내게서 간 적은 없었다. 남편은 아무 데도 혼자 가지 않았고 간다면 같이 갔다. 그런 남편이 갔다고 했다. 어딜 갔을까. 한 번도 궁금하지 않았던 남편의 행방이었다.

“엄마 정신 차려 봐. 엄마 이름 뭐야? 응? 왜 이래?”

루아의 외침에 순간 남편이 없다는 사실이 현실로 다가왔다.


아. 그가 떠났지.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가만히. 몰래.

이젠 어딜 가도 남편은 없다는 거지.

그러나 나는 남편과 괴리된 현재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평생 무덤덤하기 이를 데 없는 부부였는데 지금 왜 남편의 죽음이 이렇게 허망할까. 뭔가 왜곡된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요양원에 가면 반쯤 감은 눈으로 나를 보며 부를 것 같았다.

“왔어요? 내 아내 고여숙, 그림쟁이.”

그리고 슬며시 잠이 들 것이었다.

그러나 남편의 부재는 확실한 현실이었고 난 절망감마저 느꼈다. 그러면서 생각지 않은 눈물이 마구 솟았다. 의지와 상관없이 흐르는 눈물은 의지로 그칠 수 없었다. 우는 시간이 길어지고 흐느낌이 커지자 루아가 나를 안고 같이 울었다.


괜찮아, 엄마. 괜찮아.

그러나 어떤 말도 눈물을 그치게 하지 못했다. 내 평생 흘려야 할 모든 눈물이 모였다가 나오듯 눈과 코로 쉼 없이 흘렀다. 괜찮아, 엄마. 괜찮아.

루아가 나를 감싸 안고 토닥였다.

그렇게 한 동안 울고 난 후 병원을 나섰지만 차 안에서 또 눈물이 흘렀다. 주체할 수 없다는 게 이런 것이었다. 울어서 슬픈 건지, 슬퍼서 우는 건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마치 가슴 한가운데가 뚫리고 그 자리에서 서늘한 바람이 계속해서 불어대는 것 같았다. 손을 얹어 진정하려 했지만 구멍이라 만져지지 않았다.

“엄마가 맘대로 울지 못해서 기절한 거야. 엄마 울어. 괜찮아.”

루아는 내 엄마 같았다.

차에 실려 루아네 집에 도착할 때까지도 나는 쉬었다가 울고 쉬었다가 울었다. 집에 있던 사위가 공손하게 맞아들였어도 나는 여전히 울었다. 어디선가 아이의 옹알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이를 보러 갈 기운이 없었다. 루아와 사위는 내 방을 살펴주고는 조용히 나갔다. 여전히 아이의 칭얼대는 소리와 어르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아, 손자가 있었지.

정신이 나갔다가 들어왔다가 하는 것 같았다. 선명한 것은 없고 슬픔과 설움만 안개처럼 가득했다.

그렇게 울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잠든 듯 잠들지 않은 남편의 모습이 현실처럼 펼쳐졌다.


“곧 갈 것 같아요. 그리던 분에게.”

임종하기 이틀 전 남편은 농담처럼 비식 웃으며 말했다. 난 안다. 그리던 분이 누구인지. 그래도 심술궂게 물었다.

“그리운 어머님이 기다리시겠네요. 좋으시겠어요.”

그러자 남편은 눈을 다 감고 입모양만으로만 웃었다.

“고여숙, 당신이 농담을 다 하네요. 됐어요.”

그리고는 실눈을 떠서 눈이 부신 듯 날 보고 다시 웃었다.

그 순간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나는 도대체 얼마나 둔하기에 이렇게도 때를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어떻게 그런 식의 대화밖에는 할 수가 없었을까.

남편이 몹시 보고 싶었다. 강렬하게 보고 싶은데 볼 수 없어 탄식이 나오고 탄식은 눈물로 이어졌다.

결혼생활 통틀어 남편을 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그의 몸이 사라져 버리자 이토록 그리운 것은 무엇일까.

눈이 부어서 제대로 떠지지 않는 것을 느끼며 다시 잠이 들었다. 깨어나기 싫은 잠 속으로 무한히 헤엄쳐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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