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부터 진단까지.
살면서 스무 살에 관절염을 경험해 볼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가 모르기는 몰라도 아마 많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처음 류마티스 관절염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스무 살 초여름이었다. 지금은 쳐 주지 않는 빠른 나이로 대학을 들어가 이제 막 2학년이 된 나는 그냥 아주 평범한, 노래를 전공하는 대학생이었다. 당시의 나는 입시를 짧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얼떨결에 추가 합격으로 학교에 오게 된 터라 전공 지식이 많이 부족했고, 또 그래서 열등감에 가득 절어 있었다. 그래서 스무 살의 패기와 질투, 열등감 같은 것들을 연료 삼아 대학 생활에 매진했다.
그때의 나에게 학교 생활 중 가장 즐겁고 뿌듯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피아노 부전공 수업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어릴 때 다녔던 피아노 학원과 고등학교 시절 잠깐 다녔던 피아노 학원, 그리고 음악 전공을 반대하던 부모님에게 하던 일종의 시위 같은 것들로 혼자서 열심히 코드를 외웠던 시절이 있었기에 수업을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었다. 수업은 전공이 아닌 학생들이 피아노에 흥미를 가질 수 있게 연습하고 있는 노래나 좋아하는 노래의 악보를 가지고 오면 그 악보의 반주를 알려 주는 식으로 진행됐다. 혼자서 멋들어지게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하는 내 모습이라니.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행복했고, 무엇보다 더 좋았던 건 갈 때마다 교수님이 해 주시는 칭찬 같은 거였다. 남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 있던 스무 살의 나는 누가 나에게 해 주는 달콤한 말들이 절실했을 때였다. 그래서 더 열심히 참여했다.
그랬는데, 안 좋은 일은 참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왔다.
처음에는 엄지 손가락부터 쭉 이어지는 손목이 아팠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이렇게 손이 아플 정도로 연습을 했던 건 아닌 것 같은데. 처음에는 그냥 의아했다. 동기들에게 "나 손목이 욱신거리는데 이거 왜 그럴까?" 물어보면 "그냥 건초염 같은 거 아니야? 병원 한 번 가 보는 게 어때."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친하게 지냈던 피아노 전공 친구가 건초염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나 역시 내 손목이 아픈 것 정도는 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자마자 정형외과를 찾았다.
병원에서는 그냥 절차대로 진료를 받고, 엑스레이를 찍고, 물리치료를 했고, 약을 받았다. 병원에서도 별말이 없어서 그냥 물리치료나 받고 집에 왔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아지지를 않았다. 아니, 오히려 범위가 더 넓어졌다. 어느날은 손가락이 다 퉁퉁 부어 움직이지를 않았다. 굽혀지지 않는 손가락을 보면서 나는 내가 큰 병에 걸렸을까라는 생각보다는 이게 왜 이러지 같은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 게 여태 살아오면서 크게 아팠던 거라고는 예방 접종 맞고 갑자기 고열이 끓었던 것과 신종 플루 걸렸을 때가 다였으니까. 가끔 발목에 물이 차서 정형외과를 가긴 했지만, 그건 태어날 때부터 평발을 가지고 태어난 터라 어쩔 수 없었으니까. 아무튼 그냥 갓 스무 살이 된 대학생 병아리였던 나에게 그런 큰 병이 찾아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쭉 병원을 다니고 약을 먹었다.
그렇게 내리 이삼 주 정도 병원을 다녔을 때, 그제서야 나는 무슨 큰 병이 생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집안에 대학 병원에서 일하는 친척이 있어 검사 날짜를 예약할 수 있었다. 대학 병원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예약 날짜까지는 꼬박 한 달이 남아 있어 나는 아픈 손을 어찌 할 방도 없이 학교를 다녔다. 피아노 수업은 실기로 시험을 봤는데 교수님께서 편의를 봐주셔서 악보 그리기로 제출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정정당당하게 시험을 보고 싶어서 그냥 악보도 내고, 실기 시험도 봤다. 아무래도 영 현실 감각이 없었다. 몇 개의 병원을 더 옮겨 다니다가 깨진 독에 물 때려 붓는 기분이 들어 그것도 그만두고 집에서 얌전히 기다렸다. 드디어 기다리던 검사 날짜가 되었다.
학교를 벗어나 그렇게 멀리로 가 본 것도 처음이었고, 대학 병원에 가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막상 검사를 받기 위해 버스를 탔을 때는 마음이 그렇게 차분할 수가 없었다. 정형외과 검사는 후루룩 지나갔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약 삼 주 정도가 더 걸렸다. 그리고 더 자세하게 검사를 해 봐야 할 것 같으니 다른 과로 가 보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게 류마티스 내과였다.
일전에 아팠다는 말을 밥먹듯이 써 놓기는 했지만 사실 나는 아픔에 꽤 무딘 편이기 때문에 검사한답시고 피 열댓 번 뽑는 것 정도는 별로 무섭지도 않았다. 다만 정말 무서웠던 건 병원비였다. 피 몇 번 뽑고 오줌 한 번 쌌을 뿐인데 삼십만 원이라니. 아빠에게 병원비 송금을 부탁하고 로비에 앉아 기다리던 그 이십 분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혹시 나 진짜 아프면 어떡하지? 관절염은 할머니 됐을 때 걸리는 거 아닌가? 만약에 이 병에 걸리게 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이건 나을 수 있는 병인가? 끝없는 물음표. 다행인 건 그때의 내가 이미 병원을 옮겨 다니는 것에 지쳐 있었고, 결과가 나와 진단을 받고 약을 먹으면 어떻게든 이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꽤 의연했다는 점이다.
그렇게 이 주가 흘렀고,
나는 류마티스 관절염 진단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