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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lon Sep 24. 2020

'위험한 여자' 되기를 불사하겠다는 의지

Ariana Grande [Dangerous Woman] (2016)

화려하다. 음반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가 하나 있다면 "이게 바로 메이저 팝"이라는 충만한 자신감이라고 정의해도 될 정도다. 뭐랄까. 아리아나 그란데(Ariana Grande)는 우리 시대의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같은 존재다. 흑인 음악 기반에 압도적인 가창력으로 차트를 쥐락펴락한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단, 조건이 하나 붙는다. [Butterfly](1997) 이후의 머라이어 캐리, 그러니까 힙합과의 적극적인 교류를 시도했던 머라이어 캐리 쪽에 보다 가깝다는 거다.


글ㅣ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사진 출처ㅣ@arianagrande 페이스북


각 시대마다 당대를 호령했던 (여자) 가수가 있었다. 남녀 구분하는 게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렇게 바꿔 설명해보도록 한다. 우리는 대중음악계가 철저하게 "남성 위주의 비즈니스"였음을 알고 있다. 적어도 1980년대까지는 운동장의 기울어진 정도가 극심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상황이 변한 건 1990년대가 개막하면서부터였다. 메이저, 인디 가릴 것 없이 여성 뮤지션의 약진이 눈에 띄게 도드라졌다. 2000년대에 들어서자 여성의 목소리가 비로소, 조금이나마 팝 비즈니스의 중심에 가 닿기 시작했다.

자, 그리하여 현재의 팝 계는 어떤 지형도를 그리고 있는 중인가. 성적 주도권을 한 점 부끄러움 없는 태도로 설파하는 카디 비(Cardi B)의 'WAP'이 1위에 올라있다.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는 7주 연속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석권하면서 우리 시대의 예술가 중 한 명임을 다시금 증명했다.

그리고, 아리아나 그란데가 있다. 스스로를 "위험한 여자"라고 정의하는 앨범의 타이틀을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위험한 여자라는 건 자기 입장 갖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뜻해요. 자기 자신이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정직하게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거죠."

이런 주제를 형상화하려면 아무래도 강렬한 이미지가 필요했을 것이다. 바로 간판인 'Dangerous Woman'에서 록 비트를 바탕에 둔 이유다. 비트 세기로는 'Greedy'도 만만치 않다. 장르적으로는 흥겨운 디스코 팝인데 관악 섹션을 유독 강조해 몸을 저절로 들썩이게 만들었다. 저 유명한 'Uptown Funk' 못지않다. 더불어 노랫말도 곱씹어 봐야 한다. 간단하게, 이 곡의 주제는 "자기 욕망에 솔직하자"는 거다. 카디 비의 'WAP'에 비하자면 순한 맛이지만 어쨌든 큰 틀에서 유사한 노래라고 정리할 수 있는 셈이다.

음반 내 최고라 할 'Side to Side'를 빼놓을 수 없다. 레게를 기반으로 휘청대듯 진행되는 이 곡의 매력은 아리아나 그란데의 디스코그라피를 통틀어서도 최상위권이다. 과연 그렇다. 아리아나 그란데는 가창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발라드는 물론이요 출렁이는 리듬 위에서도 능란한 호흡으로 곡을 장악할 수 있는 재능 덩어리다. 리듬을 갖고 노는 모습이 마치 노련한 서퍼의 그것을 연상케 한다. 참고로 이 곡, 유튜브 같은데 있는 가사 해석을 꼭 보길 바란다. 제목만 설명하면 곡이 휘청대듯 이 곡 속 주인공도 "갈지자로 휘청댄다"는 거다.

후반부에도 좋은 곡들이 여럿이다. 그 중 메이시 그레이(Macy Gray)의 목소리로 이별 뒤의 여운을 표현한 알앤비 발라드 'Sometimes'와 음반 내에서 가장 풍성한 결을 지닌 곡이라 할 'I Don't Care'가 빼어나다. 한데 'I Don't Care'는 가사가 의미심장하다. 곡에서 아리아나 그란데는 "더 이상 상관 않겠다"는 구절을 반복한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이 돼야 하는지에 대해 사람들이 말하게 뒀어. 그런데 내가 나일 수 없다면 그런 충고 따위 아무 의미 없는 거야."

그러니까, 아리아나 그란데는 단순히 가창력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아니 설명해서는 안될 가수다. 그는 이를테면 전천후다. 전통적인 알앤비에 뿌리를 둔 곡이든 현대적인 비트로 운용되는 곡이든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소화할 줄 안다. 기본적으로 흡입력이 탁월한 보컬리스트다. 어디 이뿐인가. 발화하는 노랫말은 사랑스럽다가도 도발적인 자세 취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요컨대, 그에게 가장 중요한 소명은 무엇보다 "나를 지킨다"는 개념이다. 이를 위해서는 "위험한 여자" 되기를 불사하겠다는 의지가 아리아나 그란데 세계의 근간을 이룬다. 아리아나 그란데의 현재까지 최고작은 아마도 [Thank U, Next](2019)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뒤로 하고 이 앨범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Ariana Grande [Dangerous Woman]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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