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프랑스 철학회의 주제가 "프란츠 카프카"라는 게 특이점. 독일어권 작가를 프랑스철학회에서 다루는데 심지어 3발표는 아도르노 주제였다 !
철학도로서 기성학자를 뵙다 보면 연예인을 실물로 보는 기분이 이런 건가, 싶을 때가 있다. 진태원 선생님을 뵌 게 그런 기분이었다. 심지어 같이 담배를 피우는 경험도 했으니... 기조강연부터 마지막 발표까지 전부 선생님들의 스칼라십이 폭발하는 학회였다.
다른 것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좌파적 들뢰즈 읽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국적 막론하고 요즘 쏟아져 나오는 연구들 가운데 들뢰즈를 여기저기 들먹이며 자신의 주장을 들뢰즈의 명성으로 커버하는 듯한 경향을 많이 느꼈는데, 들뢰즈 연구자분들이 이런 경향이 '들뢰즈를 좌파적으로 읽는 것'이라고 정리해 주셨다. 요컨대 들뢰즈의 파괴적이고 역동적인 부분만 쏙쏙 뽑아다가 그것이 들뢰즈 철학의 전부인 것처럼 소모하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나는 들뢰즈를 열심히 읽는 사람은 아니지만, 워낙 핫하고 매력적인 학자라서 접할 때가 많다. 그때마다 했던 말이 "나는 들뢰즈는 좋은데 들뢰즈주의자들은 싫어"였는데, 이런 편견을 심어준 게 소위 '좌파적 들뢰즈 읽기'였던 것 같다. 들뢰즈주의자들은 싫지만 들뢰즈는 좋아. 에세이 제목 같다.
제2회 에라스무스 컨퍼런스. 이 자리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너무 영광이고 감사하다. 얻은 것이 너무 많고, 공부 의지가 말도 안 되게 고양되었던 날이다. 모든 발표가 좋았지만 '디트리히 본회퍼'를 알게 되고 전공자께 소개받은 일은 내 학업 여정에서도 두고두고 상기할 만한 일이다.
(좌) 디트리히 본회퍼, (우) 쇠얀 키르케고르
사실 잘 모르는 것들 투성이라, (특히 회식 때) 말을 못 꺼내고 있었다. 발표자 선생님이 어떤 철학자를 좋아하냐고 물어보셔서, 리쾨르랑 키르케고르 이야기를 했더니 매우 반가워하셨다. 본회퍼가 키르케고르를 몹시 좋아했다고, 거의 따라 쓴 수준의 책도 있고, 인쇄를 맡기는 순간까지 키르케고르의 강화집을 들고 있기도 했다고. 교회공동체에 대한 입장 외에는 두 학자 간의 친족성이 매우 두드러지는 듯하다. 본회퍼 선집 세트를 팔던데, 여력이 된다면 꼭 소장하고 싶다.
학회를 놀러(?) 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박사 선생님들 뒤에 앉으면 말도 못 꺼내는 감자가 된 기분이지만 최전선의 논의를, 그것도 아주 전문적인 논의를 들어볼 수 있다.
리쾨르 강연
8월은 정말 공부의 은총이 끝이 없었다. 리쾨르 공부하라고 누가 협박이라도 하는 듯이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나는 특히 리쾨르의 타자론에 관심이 많은데, 덕분에 독법, 방향성을 잘 찾게 된 것 같다.
이렇게 놓고 보면 공부밖에 안 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봤자 다 합쳐 3일 시간 낸 거다...
열심히 읽어야지. 조만간 뭐라도 써야 하는데. 곧 아세팔 진행원고를 써야하긴 한다. 메를로-퐁티를 소개해야 해서 지금 진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가장 기대했던 부분이 남아있으니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너무 오랫동안 닫혀 있어서 벽인 줄 아는데, 사실 문이다." 두고두고 인상 깊은 대사일 것이다. 닫힌 문을 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