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2학년 2학기를 마쳐갈 즈음이다. 우리 학과 내에서 진행한 작은 학술제가 있었다. 나는 감사하게도 이 학술제의 운영에 관여하고, 또 발표자로도 참여할 수 있었다. 특히 교수님들의 적극적인 장려와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직 너무 어리고 경험이 없던 나였지만, 학술제의 이면에서 복잡다단한 일들을 처리해 준 조교 선배님들의 도움도 컸다.
발표주제를 요약하자면 "데카르트의 코기토 논증과 신 현존 증명 논증이 양립할 때 모순이 발생한다는 것", 그리고 "코기토 논증은 현존하는 신의 보증(전제) 없이도 자생적으로 정당화될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성공적인 논증은 아니었지만, 완주하고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의가 있는 발표였던 것 같다.
적절한, 그리고 탁월한 논평자 선생님을 배정받은 덕에 말 그대로 시원하게 까였다. 지금의 나는 그 논평의 함의가 "연구사적으로 진부한 논증이고, 이미 수없이 지적되어 온 주제의 반복에 불과하다"라는 말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참고한 선행연구의 지평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선행연구가 갖는 전제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라는 지적도 받았다. 발표자로서 마땅히 디펜스를 수행했어야 했지만, 맞는 말에 무슨 토를 달겠는가. 나는 그저 기어들어가는 심정으로 (그러나 최대한 떳떳한 척을 하며) 답변을 이어나갈 뿐이었다.
"예... 지적해 주신 선행연구 참조 문제는, 제 논증 --페이지를 봐주시면요. 선행연구와 달리 저는 이 코기토 논증 전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그... 앞서 지적해 주신 연구사는 참조해서 공부를 더 하도록 하겠습니다."
논평문에서 미리 받아보지 못한 질문도 들었다. 내가 참고한 문헌이 가지고 있는 자체적 한계들, 간과하는 사항들과 번역의 문제들로 인해서, 실제로는 문제 될 게 없는 것까지 내가 문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평에 무슨 답을 할 수 있었을까. "네, 지적해 주신 부분은 더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대답이 최선이자 가장 솔직한 답변이었다.
뒤풀이 자리로 이동했다. 분명 홀가분했지만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그럴 수밖에. 공부하는 사람이면 기분이 좋아선 안 됐다. 나는 바보다. 더 잘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게 했다. 미처 생각이 닿지 못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 술을 마시고 싶었다. 아주 많은 양을 말이다.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던 와중에, '자리를 옮겨 2차를 가자'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생각이 많아져서 담배를 한대 피우려고 먼저 일어나려던 때에, 교수님 한 분이 나를 불러 세웠다. "현재 씨, 잠시만. 저랑 얘기 좀 할까요?"
교수님과 나는 식당 밖으로 나와 대화를 시작했다. 주차장을 크게 빙글빙글 돌았다. 아무래도 쌀쌀한 날씨에 제자리에 서서 대화하는 건 웃긴 모양새였을 것이다. 두 줄로 세워진 자동차들을 중심 삼아 몇 바퀴를 도는 것도 우스운 일이긴 했겠지만, 그렇지 않기엔 날이 춥고 바람은 날카로웠다. 코가 절로 훌쩍여졌다.
"현재 씨, 대학원 오실 거죠?"
교수님은 저돌적인 분이셨다. 말을 돌려하시는 분은 아니란 걸 알았기에 나도 직접적으로 대답을 해야 한다고 의식했던 것 같다.
"네, 계속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예, 제가 생각하기에 현재 씨는 계속 공부를 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뭐... 공부해보고 싶은 주제가 있을까요?"
나는 길게 떠들었다. 프랑스 현대철학을, 그중에서도 현상학과 실존철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왜 그걸 하고 싶은지, 어떤 부분에서 매력을 느꼈는지를, 이 부분에 학술적인 기여를 한다면 어떤 걸 할 수 있을지를 말씀드렸다.
내 말을 끝까지 들은 뒤 교수님은 냉담하게 답변을 주셨다.
"현상학을 한다면, 혹은 해석학을 한다면 그 뿌리가 되는 학자를 공부하세요. 다룰 수 있는 지평의 범위가 달라집니다. 얘기하신 주제들, 그 뒤에 실컷 공부해도 늦진 않거든요. 이건 아주 현실적인 조언입니다."
아주 현실적인 조언이라고 말하셔서, 그리고 실제로 아주 현실적인 조언이기도 해서 대꾸하기가 어려웠다. 대답할 말을 찾기 전에 교수님이 먼저 말을 이었다.
"그냥 데카르트를 계속해봐도 좋습니다. 오늘 보여준 포텐셜이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요. 만약 우리 학교에서 학업을 이어가신다면, 선생으로서 도와줄 방도를 많이 찾아보겠습니다. 특히 학비나 생활비. 중요한 문제니까요."
나는 감사하다는 말 외에는 입 밖에 나올 것이 없었다. 뼈아픈 말은 진지하고 고귀한 것이니까. 어느덧 날씨가 춥지 않은 것 같았다. 몰아 마신 술 때문에 열이 올라서였는지, 상념에 잠겨 찬 공기를 느낄 겨를이 없었던 건지는 모르겠다. 여전히 훌쩍였지만, 추워서라기보다는 관성에 가까웠다.
돌이켜 생각하면 이 선생님께는 감사한 것만큼 죄송한 것도 많다. 결국 나는 선생님이 주신 조언 가운데 이행한 것이 없었다. 이후 두 차례 더 뵙고 인사드릴 일이 있었고, 그때마다 다정한 표정으로 나를 격려해 주셨다. 한 번은 이적한 대학의 동료 교수님들이 곁에 계신 때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격려는 조금 과대평가를 해주신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만큼 내 기를 살려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 후로도 몇 번의 통화로 안부를 주고받았지만, 최근에는 대화를 나눈 적이 없게 되었다. 마지막 통화 중에 내 굳은 결심을 들으신 뒤로는 내 전공 방향성에 대한 조언은 일절 하시질 않으셨다. 나는 끝내 고집을 꺾지 않았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나는 2020년의 11월처럼 프랑스 현대철학을 읽는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끝까지 내가 '이 바닥의 미래가 될 거란 걸 의심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누군가의 기대는 무거운 것이다. 무거운 짐을 이고 가면서 나는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
2020년 11월의 기억은 여전히 중요한 과거로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글을 쓰는 게 무서워졌다. 글을 쓸 정도의 일이 생긴다면 알아둬야 할 게 얼마나 많은지를 깨달은 날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 있던 모든 공부에서 나는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떨치지 않았다. 무서운 건 공부 자체가 아니라 내 부족한 능력이다. 중요한 건 역량을 키우는 것, 하나를 하더라도 양질의 학습을 하는 것이다.
또한 현실감각을 많이 깨우치기도 했다. 하고 싶은 걸 한다는 것의 무게감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바른 길을 가지 않겠다면 적어도 설득력을 갖춘 채로 나아가야 한다. 설득력은 내가 만드는 것이다. 내가 왜 이걸 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게 얼마나 그리고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납득시켜야 한다.
요즘도 공부를 할 때면 선생님 생각이 나곤 한다. 내가 계속 학계에 머문다면 또다시 마주할 것이다. 언젠가 어엿한 학자가 되어서, "선생님, 그 말 안 듣던 애가 그래도 이렇게 컸습니다"라고 농담할 날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