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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꼬투리 Nov 25. 2024

삶의 근육이 만들어지는 시간

3년째 치는 테니스, 그러다 깨달음

3년째 테니스를 치고 있다. 공이 제대로 라켓 정중앙에 맞았을 때 나는 소리, 느낌은 정말 쳐본 사람만이 안다. 나는 좋은 게 있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열심히 추천하며 다니는 사람인데, 회사 사람만 무려 3명(현재 내 남편까지 포함)을 테니스의 세계로 ‘전도’했다. 그중 1명은 나보다 더 열정적으로 테니스를 친다. 주 2회 주말마다 3시간 이상 테니스를 친다. 내가 평생 운동으로 삼겠다고 했던 테니스인 만큼 실력이 짧은 시간 안에 늘기를 바라는 조바심은 진작에 내려놨다. 당장 실력이 향상되지 않더라도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은 꽤 테니스를 잘 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한다.


어제는 2주 만에 테니스를 쳤다. 나는 서울에서 포천까지 테니스를 치러 다닌다. 몇 년 전에는 파주로 다녔는데 거리상으로 거의 비슷하다. 테니스 코트장은 일정 수준의 땅 면적이 필요해서 그런지 땅값 높은 서울에 있는 테니스장을 예약하는 건 매우 치열하다.

실력 비슷한 동호회 회원들 몇몇과 함께 파주 혹은 포천행으로 정한 것도 그런 이유다.


이렇게 정착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테니스장마다 예약하는 방법이 각기 다른데 가장 최근에 서울에서 칠 때는 마치 대학생 때 수강신청하 듯 시간을 맞춰놓고 접속을 하기까지 했다. 보통은 자정이 돼야 예약창이 열려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하는 사람도 예외 없이 밤 12시까지 버티다 예약전쟁에 참전해야 했다.

지속적으로 테니스를 치기 위한 곳이 필요했다. 거리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가 운전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이유는 두 가지다. 고양이와 테니스.)

그렇게 사수한 테니스장에서 나는 주 1회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테니스를 친다. 동호회 회원은 7명이고 실력은 다 고만고만하지만 나보다 늦게 시작한 남자 회원들은 훨씬 더 빠르게 실력이 늘었다. 특히나 그들은 프리랜서라 평일에도 좋은 코치에게 레슨까지 받고 있어 그들의 실력과 간헐적으로 레슨 받는 나의 실력을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어제, 2주 만에 테니스를 쳤다. 매주 잡혀 있는 토요일 테니스이지만 부득이하게 여행을 가거나 가족행사가 있으면 빠지게 된다. 지난주엔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온 터라 참석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공백이 무색하게 평소보다 공이 더 잘 맞았다.


하필 그날은 동호회 멤버이기도 한 남편이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자 한 멤버가 나의 발리 실력에 감탄하며

“제주도에서 특훈 받아 온 거 아니에요?”라고 묻더니 급기야 “왜 그렇게 실력이 늘었는지 알 것 같아. 오늘 남편이 안 와서 그렇지?” 라며 농을 섞어 비결을 물었다.

발리도 잘 맞고, 스트로크도 나쁘지 않았다. 서브는 몇 주 전부터 힘을 좀 주고 있는데 그것도 나쁘지 않게 잘 들어갔다. 오늘 유난히 컨디션이 좋은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런지 나도 의아했다.

“희한하네요. 오히려 한 주 쉬었는데 왜 그럴까요?”

광고 감독 일을 하며 본인이 배운 것들을 멤버들에게 자주 전수해 주는 J감독이 말했다.

“그걸 우리 코치님은 ‘테니스 근육’이 생겼다고 하더라고. 하루도 빠짐없이 테니스를 치는 게 아니라 그렇게 휴지기를 갖고 테니스를 치면 테니스 근육이 붙어서 평소보다 더 잘 칠 수 있대”


테니스 근육.

한동안 PT를 한 적이 있었는데, 다른 견 별로 기억나지 않지만 운동선수들이 열심히 운동하고 좋은 음식을 먹고 1~2시간씩 낮잠을 자는 루틴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근육이 만들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젖산이 쌓이면 그게 피로감을 줄 수 있다면서 말이다.

실제로 운동하고 근육이 만들어지는 데까지 4주가 걸린다고 한다. 보통은 이 기간을 참지 못하고 운동해도 불변하는 몸상태에 실망하며 포기를 결정한다.

아마 나의 테니스 근육이 만들어지는 데는 2주 정도가 걸렸던 모양이다.


이직하고 가장 많이 든 생각은 ‘내가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였다. 경력직으로 입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전문성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도무지 보이지 않는 회사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삽질’이 돼 버리는 게 아닐까 싶고, 잘하지 못하는 일만 붙들고 있으니 주변의 시선도 의식됐다.

‘쟤는 뭐 하는 애야?’

사내연애를 하면서부터는 그 시선이 더욱 두려웠다. 내 밥그릇을 잘 챙겨야 하는데 여전히 부유하는 상태인 것 같아 불안했다.

나의 이런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던 옛 직장 상사가 말했다.

“너무 조바심 내지 말고, 지금 그 상태의 너를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해 봐. 나도 데이터 따위는 볼 줄도 모르고 엑셀, ppt 와는 거리가 멀었던 사람이잖아. 나름 노력해서 따라가 보려 했는데 안되더라. 사실 그건 부차적이었고, 소위 말하는 ‘오너리스크’에 나는 취약한 사람이더라고.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과 전혀 다른 길을 가는 오너의 행태를 직접 보니 도무지 그 회사에서 더 버틸 자신이 없더라고. 그때 깨달았어. ‘나는 그동안 참 괜찮은 오너 밑에서 일을 했구나. 그리고 나는 나름 존경하는 오너 밑에서 일을 해야 버틸 수 있는 사람이구나’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나도 미처 깨닫지 못했겠지. 너도 어떤 환경에서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잘 살펴봐. 그게 분명 너의 인생에 자양분이 될 거야”


테니스를 평생 운동으로 삼았듯, 평생을 두고 스스로를 알아가는데 모든 것을 할애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친구들과 농담조로 나는 관뚜껑을 닫을 때쯤 돼 서야 “아, 이제야 나를 알겠네”라고 말하곤 한다. 나도 모르는 새 천천히, 꾸준히 하다가 만들어진 테니스 근육.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부침도 너무 빨리 포기하지 않고 차곡차곡 쌓다 보면 근육으로 만들어지지 않을까? 인생근육으로. 그러면 자연스럽게 근력도, 기초대사량도 좋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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