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를 어떻게 보고 있나요?
저는, 웬만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받습니다. 다행히, 제 주변에는 드라마 작가, 콘텐츠 제작자, 배우, 잡지기자 등 나름 업계 전문가라고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 그들의 추천을 신뢰하는 편입니다. 보통은 이동진 기자처럼 이름 있는 사람의 추천을 받고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저는 그보다도 제 주변인들의 추천을 신뢰합니다.
<슬픔의 삼각형>은 드라마 작가를 하는 동생이 추천했습니다.
묘해요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어떠냐는 질문에 그녀의 대답ㅇ었습니다.
한동안 영화 <기생충>에 버금가는, 현대사회 계급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영화로 홍보했던 이 영화는 아니나 다를까 제가 진작에 찜해놓은 영화이기도 하더군요.
큰맘 먹고 124분을 투자해 영화를 봤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흥미롭다!입니다.
해석의 여지가 많은 이 영화 엔딩 장면에서도 저는 “엥? 정말 이대로 끝이야?”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습니다.
참고로, 제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는, 영화그 끝나고 나서도 잔상이 오래 남는 장면이 한두 개 이상은 있거나, 해석의 여지가 많은 것인데 이 영화는 두 가지 조건에 모두 부합합니다.
본격적으로 썰을 풀기 전에 슬픔의 삼각형,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의 의미를 살펴보면 간단히 말해 미간 주름입니다. 뷰티업계에서 말하는 티존 사이에 만들어지는 주름. 이 제목은 단순히 미용적인 의미뿐 아니라 두 남녀, 크루즈, 무인도 이렇게 3부작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에 들어가 있는 피라미드 모양의 계급사회를 의미합니다. 돈이 기준이 되는 현대사회의 계급 문화를 블랙코미디로 그려낸 이 영화. 저는 세 가지 꼭짓점으로 표현해보고 싶습니다.
첫 번째 꼭짓점 <칼과 야야>
아직 갈 길이 먼 무명의 남자 모델 칼과 화려한 런웨이를 거닐며 살아가는 패션모델이자 인풀루언서인 야야는 연인입니다.
첫 장면에서 칼은 오디션에서 단 몇 초 만에 H&M, ZARA등과 같은 SPA브랜드의 카탈로그에서 보일 법한, 깃털처럼 가벼운 표정과 발렌시아가, 에르메스 등과 같은 명품 카달로그에서 보이는 심각하고 진지한 표정을 보여줘야 합니다. 모델의 표정만으로도 브랜드의 가치가 단숨에 읽히는데, 어쩐지 패션업계를 풍자하는 것 같아 조금 찔렸습니다. (패션지에서 10년 넘게 종사한 1인으로서 말이죠) 이 둘의 데이트 장면은 꽤나 흥미롭습니다. 누가봐도 더 잘 나가는 야야는 값 비싼 레스토랑에서 데이트 비용을 내려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영수증을 애써 외면하고 “잘 먹었어”라는 말로 칼에게 계산을 떠넘기죠. 이 둘은 꽤나 치열하게 싸웁니다. 감독은 마치 이 영화의 메시지는 이것이라는 듯 칼의 입을 통해 말합니다.
“나는 그저 평등하게 대우받고 싶을 뿐이야!”
H&M 미소를 짓는 칼
평등을 외치는 건, 절대 강자의 입에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불리하고, 약한 사람만이 평등해야 한다고 외치죠. 신기한 건 이 대사가 여자가 아닌 남자의 입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남녀를 불문하고 평등을 원하지만, 사실 강자, 즉 가진 자에게는 평등이라니! 어림없는 소리죠. 그리고 그 평등을 외치며 발악하는 칼의 모습은 어찌나 지질하던지요,그러나 일부러 계산서를 남자친구에게 미뤘던 야야의 모습도 만만치 않습니다. 하지만 이 둘이 치열하게 싸워 봤자 초호화 크루즈 위에서는 우열을 가릴 것 없이 시시합니다. 진짜 가진 자들에게는 너무나 무기력하고 무의미하죠.
두 번째 꼭짓점 <요트>
타이타닉과 비슷한 초화화 요트에 인플루언서로서 승선하게 된 칼과 야야. 그들은 정신없이 인증샷을 찍어내고, 그 옆에는 그의 표현대로 ‘똥’으로 부를 축적한 러시아 출신의 번 드미트라, 지뢰와 수류탄으로 돈을 번 영국인 부부 등이 등장합니다. 이들의 모습은 몹시 부자연스럽습니다. 과장되고, 뒤틀리고, 불안합니다. 드미트라는 이후, 이 크루즈의 선장인 토마스 스미스와 만담을 즐기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뢰와 수류탄으로 돈을 번 부부는 해적이 던진 수류탄에 의해 즉사합니다.
인상적인 장면은 드미트라의 아내가 여자 승무원을 불쌍히 여기며 자유롭게 수영을 하라고 말하며 나름의 친절을 베푸는 장면이었는데요, 몸에 짝 붙는 유니폼을 입은 이 승무원에게는 얼마나 곤란한 일이었을까요? 값 싼 동정심이란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박완서 작가의 <도둑맞은 가난>이라는 소설도 떠올랐습니다) 결국 이 갑부의 아내 덕에(?)크루즈에 타고 있는 모든 직원들이 강제적으로 바다에 뛰어들어 수영을 합니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선장 주관 만찬 장면은 꽤나 흥미롭습니다. 고의로 파도가 거세게 부는 날로 승객과의 만찬 일정을 잡은 선장 토마스는 값 비싼 음식을 토해내는 이들을 평화롭게 지켜봅니다. 승객들은 표정관리를 하며 애써 고급 식재료로 만든 요리를 즐기려 하지만 출렁거리는 배에서 이겨낼 자는 이런 파도에 익숙한 선장 토마스뿐입니다.모두가 각기 다른 색의 토를 쏟아내는 그때 토마스는 드미트라와 마크트웨인이네, 마르크스네 하며 그들의 온갖 발언을 토해냅니다. 그 와중에 배는 전복되고,이 둘에게 위태로운 승객의 상태 따위는 중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이념적인 것들에 매몰돼 공허한 말들만 쏟아내는, 소위말해 권력자, 리더의 존재가 생존을 가르는 상황에서는 얼마나 무력하고 헛된지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마지막 꼭짓점 <무인도>
사회적인 지위, 돈 등 모든 계급장을 떼고 나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무인도로 떨어진 7명의 리더는 크루즈에서 화장실 청소를 담당했던 에비게일입니다. 그녀가 몰고 온 구명선에는 사람들이 마실 수 있는 물과 일용할 간식이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엄청난 사냥 실력을 뽐내며 무인도에서는 무용한 사람들의 배를 채워줍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에비게일을 추종합니다. 권력의 맛에 취한 에비게일은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진 칼에게서 성욕을 채웁니다. 이미 권력관계는 형성됐지만 에비게일은 우리는 다 동등한 존재라고 말합니다. 평등하고 동등한 관계를 원했던 칼은 기꺼이 권력 옆에서 갖은 단 맛을 맛보며 생존합니다. 또다른 생존 방식을 찾기 위해 산을 오르는 야야와 그녀와 동행하며 틈을 보는 에비게일. 우연히 이들은 이 섬의 정체가 고급 리조트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 모든 권력관계가 다시금 전복될 기미를 보이자 에비게일은 평화롭게 바다를 바라보는 야야의 뒤에서 공격할 채비를 합니다. 그리고 화면은 전환되고, 어딘가로 다급하게 뛰어가는 칼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야야를 공격하려는 에비게일의 표정은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섬뜩합니다.
가만히 삼각형이라는 도형을 생각하니 참 얄궂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 하나의 꼭대기와 두 개의 바닥면이 있어야 존재하는 삼각형은 결국 소수의 가진 자, 강한 자, 부유한 자가 있고, 그 밑을 받쳐주는 가난하고 약한 다수가 있어야 그려지는 모양입니다. 그 삼각형을 아무리 전복시키려 해도, 안정적인 모양의 삼각형을 만들어 내려면 도무지 방법이 없습니다. 역삼각형은 언제고 바닥으로 굴러갈 불안한 모습이니깐요. 어떻게든 그 모양을 달리 만들고 싶어도 결국엔 그 모양으로 자리 잡는 삼각형. 세상이 그 모양을 좀처럼 바꿀 수도, 바꾸려고도 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때문이 아닐까요?
무인도에서 신분이 바뀐 에비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