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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방식으로 세상을 배우다

- 고향의 기억이 길어 올린 인생의 길 -

by 노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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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고향의 방식으로

세상을 본다.


어린 시절 공기, 낡은 골목 냄새,

누군가의 손길 같은 것들이 오래도록

우리 안에 ‘기준’을 만든다.


나도 그 뿌리를 부정할 수 없다.

선택할 때마다, 사람을 대할 때마다

문득 떠오르는 마음의 결이 있다.


오늘은 그 이 처음 만들어진

장면을 들려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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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내 인생은

‘어디에 서 있느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서 있느냐’

더 중요했다.


군인이던 시간도,

전역 후 사회로 나아가던 순간들도

모두 그 기준을 따라 움직였다.


그 시작은 아주 오래전,

청송의 작은 산마을에서였다.


청송, 나를 만든 산골의 기억


꼴망태를 둘러멘 소년이 있었다.

경북 청송군, 선생님들도 전근을 꺼리던 깊은 산골.

고요함과 순박함이 전부였던 마을.

그 소년이 바로 나였다.


어릴 때 누군가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솔직히 조금 부끄러웠다.


“청송? 거기가 어디야?


왜 그 질문이 그렇게 창피했는지,

지금도 기억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도회지에서 연탄가루 뒤집어쓰며

구슬치기하던 친구들보다

꼴망태 메고 소 돌보던 내 유년이

더 값졌다는 것을.

그 사실을 깨닫는 데,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청송은 주왕산 국립공원이 있고,

사과로도 유명하다.


<주산지>


그리고 소설 『객주』의 김주영 작가

고향이기도 하다.

진보면 ‘객주장터’는 안동 간고등어를

실은 우마차가 쉬어가던 자리였다.


“장터의 추억이 소설을 쓰게 했다.”


그의 말처럼, 나 역시 청송의 기억을

평생 품고 살아왔다.


겨자 사건-소년의 첫 도시 경험


안동에서 유학하던 누님 하숙집.

그곳이 내가 처음 도시를 만난 곳이다.


냉면집에서 작은 사건이 터졌다.

반찬으로 나온 연두색 고추냉이,

장아찌겠거니 하고 한 숟가락 입에 넣었다.


그 순간 —

노란 하늘이 번쩍,

눈물과 콧물이 동시에 터졌다.


옆 테이블 사람들은 웃었다.

그제야 알았다.

그게 ‘겨자’라는 걸.


산골 소년이 처음 겪은 도시의 강도였다.

부끄러웠지만, 동시에 깨달았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 순간부터 선택할 수 있었다.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멈출 것인가,

배우며 나아갈 것인가.


산골 소년, 하늘을 날기까지


나는 후자를 택했다.

그 선택이 내 삶을 계속 밀어 올리는 힘이 됐다.


산골 소년은 육군 3사관학교에 입교했다.

보병 소대장으로 첫발을 내디뎠고,

이후 헬기 조종사가 되어 더 큰 하늘로 날았다.

그리고 육군 대령으로 30년 군생활을 마쳤다.


전역 후 사회인으로 삼성과 마주했다.

첫 출근 날, 축하와 연봉 협상이 함께 있는 자리였지만,

막상 나를 맞이한 것은 갓 입사한 신입사원 한 명뿐이었다.


군 출신 경력직인 나를 길들이려는 신호였다.

그 순간의 당혹감과 무례함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이어 한화에서 12년을 보냈다.

보이지 않는 경력의 벽을 맞닥뜨리기도 했지만,

한화는 이름 그대로 의리를 지키는 회사였다.


그 속에서 또 다른 세상을 배우며

조직과 사람이 가진 참된 가치를 몸으로 익혔다.


이후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서 5년,

멈추지 않는 도전을 이어왔다.


47년 동안 내가 배운 건 단순하다.


사람의 무게는 말이 아니라 '행동'에서 나온다.


그 믿음은 청송 산바람 속에서 처음 시작됐다.

겨자를 처음 맛본 안동 냉면집에서 다져졌고,

하늘을 날며, 땅을 딛으며, 사람을 만나며

평생 내 안에서 길을 만들어왔다.


당신의 고향은 어디인가?

그곳에서 배운 방식으로,

지금 어떤 세상을 보고 있는가.



이어서 '육군 3사관학교'로 입교하여

철광석이 1,500℃의 뜨거운 용광로를 지나 강철로 제련되듯, 장교로 단련되어 가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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