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겪은 두 번의 계엄이 남긴 불변의 체질 -
2024년 12월 3일 늦은 저녁,
딸아이의 다급한 목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아빠! 밖에 헬기 소리가 요란하고,
YTN 뉴스가 이상해요!”
벌떡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니,
평소 고요하던 밤하늘에 헬기들이 착륙 지점을
찾듯 저속으로 고도를 낮추고 있었다.
조종사였던 나는 단번에 알아챘다.
‘이건 정상 비행이 아니었다.’
뉴스 속 긴박한 화면과 맞물려,
그 순간 세상이 멈추는 듯했다.
1980년 5월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한
기시감.
우리나라에는 '계엄사관학교'라도 있는 걸까?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똑같은 사람들이
복사판처럼 쏟아져 나오는 거지?
세월이 흘러도 군을 움직이는 오래된 관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계엄이 선포될 때마다
그 그림자는 더욱 선명하게 드리워졌다.
1980년 5월, 내가 겪은 첫 번째 계엄.
나는 육군 3사관학교 생도 1학년이었다.
점심시간, TV 화면 너머로 어렴풋이 스며드는
바깥세상의 격랑. 탱크가 도심을 밀고 들어오고,
군인들이 총을 들고 거리를 지키던 그 장면.
그날의 먹먹함과 부끄러움은 아직도
마음 한켠에 깊게 새겨져 있다.
마치 오래된 대본을 반복해 읽는 배우처럼,
사고방식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결국 이것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었다.
그들을 만든 것은 군 조직의 깊은 관성과
구조적인 결함이었다.
사람이 바뀌어도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결과 역시 늘 같은 비극을 낳는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내가 겪은 두 번째 계엄이 선포되었을 때,
나는 이미 익숙했다. 시대도, 사람도 바뀌었건만,
그 자리에 앉은 이들의 논리와 행동은 그대로였다.
익숙한 사고, 익숙한 언어, 익숙한 풍경.
역사는 반복되었고, 반복된 실수는 우연이
아니라 체질임을 재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군은 국민을 지켜야 하는 자리에서 권력의
그림자를 따랐고, 그 한복판에는 늘 닮은 얼굴,
닮은 사고가 자리했다.
그래서 나는 기록한다.
다시는 군이 권력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또 다른 '계엄사관학교' 출신들이 같은 오류를
반복하지 않도록, 제도와 시스템을 근본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고 믿기에.
그런데 지금, 변화의 기회가 왔다.
새 국방부 장관은 군 출신이 아닌 순수 민간인이다.
그는 계엄을 반복하게 만든 군부 시스템을 거치지 않은
사람으로, 처음으로 군(軍)의 수장이 되었다.
물론 그 역시 제도권 내의 사람들에
둘러싸여 냉정한 판단이 흐려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서 한 줄기 희망을 본다.
몇 년 전 대기업 국회 담당 시절,
나는 안규백 의원과 인연을 맺을 기회가 있었다.
그는 서여의도의 한 실비집으로 각 기업의 국회 담당자들을
불러 모아, 된장찌개 한 그릇 앞에서 기업의 작은 목소리에도
묵묵히, 진정성 있게 귀 기울이던 분이었다.
그런 태도는 달콤한 말보다 현실을 더 정확히
들여다보게 한다. 제도와 조직 문화를 바로잡는
중요한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그 기대가 실현될지,
또 다른 우려로 바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변화가 기록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는 이 글이 널리 읽히기를 바란다.
혹여 이 글이 장관에게 가닿는다면,
이것이 군 개혁을 바라는 노병(老兵)의
간절한 염원임을 알아주시길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땅에서 권력이
계엄을 남용하는 비극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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