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실 병동에서 간병이 시작되었다.
통영에 오신 지 하루 만에 뇌경색 판정을 받은 엄마는 대형 병원 4인실 병동에 입원을 하셨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발병한 지 이미 하루가 지나버려 특별한 처치나 수술을 할 수는 없으니 병원에 입원해 뇌경색 약(혈전을 예방하는 항혈소판제와 항응고제)을 먹으면서 일주일 정도 지켜보자고 하신다.
엄마가 입원한 4인실 병동은 입구 쪽에 두 개의 침대가, 안쪽으로 들어가 창문 옆에 두 개의 침대가 배치되어 있는 구조였다. 우리는 창문 옆 침대를 배정받았다. 에어컨도 잘 나오고, 가끔 창문을 열 수도 있고, 화장실도 딸려 있어 며칠 지내기엔 큰 무리가 없겠다 싶었다. 환자 침대 옆 바닥엔 환자의 보호자 또는 간병인이 쉴 수 있는 간이침대가 놓여있다. 우리 세 딸들은 시간을 정해 번갈아가며 병원에서 24시간 동안 엄마를 돌보았다. 며칠은 뇌의 절대적 안정이 필요해 휠체어를 타야 했지만 그 이후에는 걸어 다니며 활동이 가능하셔서 간병이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나 혼자가 아니니,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싶었다.
엄마를 포함해 같은 병실의 4명의 환자가 모두 70대 이상의 고령이었다.
바로 맞은편의 어르신은 허리 수술을 받아 2개월 넘게 입원 중이라는데 40대쯤 되어 보이는 아들이 간병을 하고 있는 듯했다. 허리 수술 후유증으로 짜증이 심해지신 어머니와 병실에서 함께 지내고 있다는 아들 얼굴이 많이 피곤하고 지쳐 보였다.
바로 옆의 어르신은 80이 넘어 보이시는데 간병인이 보이지 않는다. 혼자서 잘 걷고, 혼자서 잘 드시고 간간이 마트에서 요구르트를 사 와서 병실 환자들에게 나눠주시기도 하시지만 대부분은 아주 조용히 주무시거나 쉬신다.
마지막 환자가 복병이었다. 주로 낮시간엔 잠을 주무시느라 조용한데 간호사가 주사 바늘을 갈러 오거나, 저녁이 되어 간병을 하러 아들이 오면 그렇게 욕을 하면서 병원이 떠나갈 듯 소리를 질러대시는 거다.
" 아이고~ 아야 아야 ~나 죽네~ 저년이(간호사) 나를 죽이네, 아파 죽겠네, 사람 살려~ 이 새끼야 너 같은 놈 필요 없어. 저리 가! **놈아!! 아야~~ 아야~~~"
50대가 넘어 보이는 아들은 어쩔 줄 몰라하며 어머니를 아이처럼 어르고 달래고, 부탁도 해보고, 하소연도 해 보지만 자신의 아들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치매 환자에겐 전혀 먹혀들질 않는다.
"엄마! 제발 조용히 좀 해요. 다른 사람들 잠도 못 자잖아 그만 좀 하라고!!"
아들의 체력도,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른 새벽 1시. 한참을 실랑이를 벌여도 어머니의 고함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온몸이 땀범벅이 될 만큼 용을 쓰며 병실 밖으로 뛰쳐나가는 어머니를 다시 눕히고 투박한 손으로 어머니의 입을 틀어막는다.
"엄마... 제발 좀, 제발 좀..."
"음~음~~ 어~~ 억~~~ 사람 살려!! 억.. 음... 으음~~~"
매일 밤 이렇게 몇 시간에 걸친 소동이 벌어지고 나서야 4인실 병동의 환자들과 간병인들은 잠이 들 수 있었다.
엄청난 소음과 불편을 겪으면서도 나를 포함한 간병인들, 환자들은 딱히 그 환자에 대해 불평을 할 수 없었다.
울부짖으며 하소연을 하는 아들의 애씀, 엄마의 입을 틀어막으면서 찢어질 듯 아팠을 아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이 일이 단지 그 가족만의 일은 아닐 수 있다는, 언젠가 내가 저 일의 당사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철렁해졌다.
대형병원에 와서 보니 엄마의 뇌경색이라는 병은, 그리 심각하지 않은 병처럼 느껴졌다. 편마비 같은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지도 않았고 언어 기능도 하루가 다르게 회복이 되는 엄마를 보면서
"정말 다행이다, 이 정도니 정말 감사하다"를 주문처럼 되뇌었다.
엄마는 14일간 입원 후 퇴원을 하고 드디어 우리 집으로 오셨다.
그렇게 오고 싶었던 딸네 집에. 드디어 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