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침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나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가만히 누워 있는다. 이윽고 아이는 제 키만 한 안전 가드 위에 손을 올려놓고 까치발 들어 나를 빼꼼히 바라본다. 엄마, 엄마 부른다. 그제야 나는 몸을 일으켜 아이 침대로 간다.
모유를 만족할 만큼 먹었는지 아이는 방긋 웃으며 몸을 일으킨다. 나는 아이를 안아 거실로 간다. 거실 바닥에 내려놓으니 아이는 네 발로 원목 상자에 기어간다. 상자에서 수박 모형을 꺼내 손에 쥐고 흔들다 바닥에 던진다. 레몬 모형을 향해 손을 뻗는다. 모든 걸 다 꺼내 놓고 나면 낱말카드 상자로 향한다. 바닥에 그림들이 다 펼쳐지자 옷 바구니까지 손을 댄다. 접어 놓았던 옷들이 바닥에 떨어진다. 지지야, 지지 말해도 소용이 없다. 잠깐 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볼 뿐, 다시 옷가지에 손을 댄다.
8시가 되자 나는 냉장고에서 이유식을 꺼내 전자레인지로 향한다. 오늘은 야심 차게 준비한 토마토 리조또풍이다. 아이는 점점 간이 되어 있지 않은 음식을 잘 먹지 않는다. 치즈를 시작으로 쌀식빵이나 과일 퓨레 같은 간식도 주다 보니 맛있는 것과 맛없는 걸 구분하게 된 듯하다. 예상대로 수저를 입 가까이 대자마자 아이는 고개를 휙 돌린다. 치즈를 달라는 신호 같지만 오후를 위해 아껴둬야 하니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 결국 아이는 입을 벌린다. 물을 떠주고, 다시 한입에 먹기 좋게 이유식을 뜬다. 다시 입 앞으로 가져가다 아이와 눈이 마주친다. 나는 까꿍 하며 평소보다 높은 톤으로 말한다. 아이는 소리 내어 웃는다. 아이는 시선을 거두고 다른 곳을 보는 척을 하다 다시 나와 눈을 맞춘다. 그러면 나는 까꿍 하며 웃어준다. 눈을 맞추며 노는 건 몇 달 전, 아이가 처음 스스로 시작한 놀이다. 아이는 까꿍하는 순간이 예상되는지 눈을 맞추기 전부터 먼저 씩 웃기도 하는데 나는 이게 귀여워 몇 번이고 되풀이한다.
이유식은 반이 남았지만 입은 더 이상 열리지 않는다. 아이의 손을 씻기고 거실 매트 위에 올려놓은 뒤 물티슈를 뽑는다. 아이가 내 종아리에 서 있기 전까지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그릇을 치우고 물티슈로 음식물이 눌어붙지 않도록 대강이라도 쓱쓱 닦는다. 뒷처리가 다 끝나면 아이에게 가 기저귀를 당겨본다. 고구마 한 개 정도 덩어리가 보인다. 아이를 들고 화장실로 향한다. 아이는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며 웃는다. 나는 다시 까꿍하며 웃는다. 새 기저귀까지 입힌 뒤 아이를 안고 옷 바구니로 간다. 노란색이냐 분홍색이냐, 나는 고민한다. 여러 벌을 만지작거리다 결국 분홍색 탑텐 레깅스 위에 크림색 베베드피노 맨투맨, 코니 턱받이를 차례대로 입힌다. 날이 쌀쌀해졌으니 무인양품 양말도 신긴다. 이후 어린이집 가방을 연다. 여분 기저귀와 아이 이름이 새겨진 고리 수건을 지퍼백에 넣는다. 이번 주부터는 어린이집에서 만든 이유식을 먹기로 했으니, 실리콘 수저와 컵만 비닐에 담는다. 쪽쪽이 케이스에 몇 개의 떡뻥을 넣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아이를 아기 띠로 안고 가방을 어깨에 메며 현관으로 향하는데 발이 멈춘다. 까먹은 게 있었다. 플라스틱 상자에서 머리핀을 손에 잡히는 대로 꺼내 식탁에 늘어놓는다. 오늘은 분홍이니, 역시 머리핀도 분홍색이 들어간 것이 좋겠다. 빨간 딸기가 중앙에 있는 분홍색 핀을 손으로 집는다. 이어 아이 머리를 빗으로 빗고 핀을 꽂는다.
집 밖으로 나와 천천히 걷는다. 까치가 싸우는 모습도 구경하고, 놀이터에 앉아 있는 고양이 두 마리도 주의 깊게 본다.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도 잠깐 서서 들어본다. 어린이집 가방 든 할머니가 남자아이에게 어서 가자고 말하며 지나간다. 아이는 내 품에 안겨 조용히 밖을 바라본다. 삼 분도 안 걸리는 등원길이지만 나는 돌고 돌아 어린이집에 도착한다. 어린이집 현관에서 초인종을 누르자 문이 열린다. 아이는 선생님 품에 안긴다. 나는 손을 흔들며 밖으로 나온다. 휴대폰을 확인하니 아홉시 반이 훌쩍 넘긴 지 오래였다. 빈 아기 띠를 정리하며 언덕을 오른다. 온기가 빠져나간 자리에는 서늘한 바람이 느껴진다. 나는 이런 아침을 보낼 수 있는 날이 60일도 남지 않았음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