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처음으로 관심을 가진 책은 <누굴 닮았나>라는 제목의 사운드북이었다. 한 명의 가족 얼굴이 크게 그려진 페이지 앞에 동그란 구멍을 뚫어 놓았는데, 왼쪽에는 짧은 글이 쓰여 있다.
- 아기가 자고 있네. 새근새근 자고 있는 모습 누굴 닮았나?
페이지를 넘기면 가족의 얼굴이 보인다. 다시 글이 있고, 손가락을 대면 노래가 흘러나온다.
- 아! 엄마 닮았구나.
아이는 페이지를 넘겨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까르르 웃었다. 아직 뒤집기조차 하지 못하던 때에 책을 보고 반응하는 게 신기해서 나는 곧잘 아이 옆에 누워 읽어 줬다.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누나, 형 이렇게 여섯 명의 오리지널 송이 들어 있어 한 번 책을 읽어주면 제법 시간이 걸렸다. 나중에는 책 속 글과 노래 가사가 외워져서 혼자 설거지하면서도 흥얼거릴 정도였다. 책을 읽어줄 때면 집중해 있는 아이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곤 했다. 우리 아이는 누굴 닮았을까,라고 생각하며.
아이 얼굴을 처음 본 건 입체 초음파를 통해서였다. 보통 검진 때는 아이가 손으로 가려 얼굴을 볼 수 없었는데, 운 좋게도 입체 초음파 때 딱 한 번 얼굴을 보여줬다. 입을 삐죽 내민, 부루퉁한 표정의 동그란 얼굴이었다. 딱히 누굴 닮았다고 느끼기보다 아, 이런 얼굴이구나 싶은 정도였다. 아이가 태어나고 신생아 시절에는 양가 할아버지를 닮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100일을 지나 6개월까지는 아빠를, 그 이후 한동안은 어린 시절 내 모습을 꼭 빼닮았다는 말을 들었다.
어제 지인은 '신기하게 둘이 반반 섞여 있네'라고 했다. 나는 아이 얼굴을 바라봤다. 지금 아이의 눈은 아빠를, 코는 나를 닮았다. 도톰한 아랫입술은 남편, 일자 눈썹은 나와 비슷하다. 체형도 많이 바뀌었다. 태어나고 나서 훅훅 늘어난 체중이 이제는 키로 다 갔는지, 체중에 비해 키가 큰 아기가 됐다. 예전에는 아들로도 자주 오해를 받았는데 지금은 머리핀을 꽂지 않아도 딸처럼 보인다. 아이의 통실한 허벅지를 좋아했던 나는 살이 붙지 않는 게 아쉽긴 하지만 우리 부부를 반반씩 닮아가고 있다는 것은 좋았다.
가끔 우리 부부는 도아를 보며 지분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 싸움은 얼굴에 그치지 않는다.
"도아가 밥 먹을 때 물을 잘 먹는 걸 보면 나를 닮았어."
"빵을 잘 먹는 걸 보면, 나를 더 닮았어."
아이 행동 하나하나에도 자기와 더 연결되어 있다는 걸 두고 싸우는 걸 보면, 아마 우리 부부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에도 합세할 것 같다. 재미있는 건 우리 부부뿐만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마저도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이다. 양가 부모님을 만나면 "도아가 나처럼 00하네"라는 말을 제법 듣는다. 어쩌면 아이에게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일은 우리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기쁨일지도 모른다.
남편이 아이를 갖고 싶다고 말을 꺼냈을 때를 기억한다.
"너와 나를 반반씩 닮은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면 어떨지 상상해 봐."
그럴듯한 아이 얼굴을 머릿속으로 상상해 내진 못했지만,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둘이서만 할 수 있는 일이고 이건 아직 과학이 해내지 못하는 일이니까. 그리고 아이가 태어난 지금, 예전보다 더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우리는 아이에게서 닮은 조각들을 찾아낼 것이다. 닮은 얼굴, 기질, 어쩌면 사소한 습관까지. 그런 연결고리를 가진 존재가 있다는 것을 감사히 여기고 또 여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