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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 엄마

by 요니

어린이집 가방에 참관 신청서가 들어 있었다. 날짜 칸에 10월 1일이 미리 적혀 있었는데 그날은 추석 행사 날이었다. 한복을 입고 오라는 공지도 있어 이미 키즈노트에 어떤 사진이 나올지 기대하던 차였다. 손이 많이 필요한 날이겠군 싶었다. 복귀 전에 가능하면 행사에 자주 참여하고 싶다고 말해 뒀던 나는 서류에 사인을 했다.

"9시까지 와주세요"라는 선생님 말이 무색하게 아이와 나는 8시 반에 일어났다. 눈을 비비는 아이를 의자에 앉히고 바나나를 으깨서 먹였다. 아이가 빨대로 꿀꺽꿀꺽 물을 마시는 사이 한복을 가져왔다. 분홍색 치마는 구김을 미처 다리지 못해 선이 가 있었다. 의자에 한복을 대충 올려놓는데 아이가 힘주는 표정을 지었다. 묵직해진 기저귀를 벗기고 세면대에서 엉덩이를 씻겼다. 내 바지까지 흠뻑 젖어 아이를 내려놓고 바지를 갈아입었다. 시계를 확인하니 이미 9시 5분이었다. 나는 아이 손과 입을 대충 닦고, 내복 위에 속치마, 치마, 저고리를 입혔다. 한 손에 나비 모양 머리핀을 들고 허둥지둥 밖으로 나왔다.


어린이집에 도착하니 정문에는 아이 얼굴이 그려진 청사초롱이 걸려 있었다. 길게 늘어선 화분 앞에는 볏짚이 깔려 있고 아이 키만 한 윷이 네 개 놓여 있었다. 함께 윷놀이를 해보라고 마련된 곳이었다. 윷을 모아 아이 앞에 가져다 놓자 아이가 툭하고 넘어뜨렸다. "걸이네요" 하며 선생님이 큰 봉지에 담긴 튀밥을 상품으로 줬다. 아이 반에는 이미 다른 아이들이 체험을 하고 있어 옆 반에서 기다렸다. 애호박죽을 먹이며 담임 선생님에게 일정을 들었다. 약밥 만들기, 포토존 촬영, 전통 놀이 체험 등 일정은 그야말로 빡빡했다. 아이는 배가 안 찼는지 애호박죽을 반이나 먹었다.


식혜 재료들로 꾸며진 테이블 뒤로 아이를 앉히고 사진을 찍는데 아이 머리핀이 흘러내렸다. 나는 머리핀을 다시 중앙에 꽂으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선생님이 고무줄을 어딘가에서 가져오더니 "아직 머리숱이 없어서 그래요. 그럴 때는 고무줄로 묶고 핀을 꽂으면 고정이 잘 되거든요"라며 아이 머리를 솜씨 좋게 묶었다. 나는 아이의 엉성하게 묶인 머리가 집에 돌아올 때쯤이면 예쁘게 묶여 있는 것을 떠올렸다.


앉아서 장난감만 만지고 있는 게 답답했는지, 아이가 벽에 붙은 거울 쪽으로 다가갔다. 손을 대고 일어서려는데 그만 치마를 밟고 넘어지고 말았다. 몇 초 뒤 아이는 울기 시작했고, 옆에 있던 나는 왜 잡아주지 못했을까 자책하며 아이를 토닥였다. 그때 옆에 있던 다른 반 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첫째죠?"

고개를 끄덕이며 "왜 그러시냐"고 묻자 선생님이 웃으며 답했다.

"초보 엄마 같아서요. 애기가 애기를 보는 것 같달까."

역시 베테랑 선생님이 보기엔 서툴러 보였던 걸까. '애기'라는 말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나이인데도 그렇게 불리자 얼굴이 빨개졌다. 나는 아이를 꼭 안으며 '아직 엄마가 된 지 9개월밖에 되지 않았거든요'란 말을 속으로 삼켰다.





9개월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서투르다. 겨우 익숙해지려고 하면 매번 새로운 것이 나타난다. 가끔은 열심히 헤엄을 쳐도 더 깊은 바다로 흘러가는 기분이 들곤 한다. 어떤 것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큰일을 본 아이 엉덩이를 씻길 때면 항상 바지가 젖는다. 요령을 알려주는 남편을 따라 해도 잘 되지 않는다. 이유식을 따라 하려고 검색할 때마다 마주하는 화려한 식판에 기가 죽기도 한다. 능숙함이 엄마의 자격 조건이라면 나는 서류 탈락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떡하겠나. 나는 초보 엄마다. 아기가 9개월이면, 엄마 역시 9개월이다. 초보인데도 초보 티가 안 나는 것도 어려운 일일 테다. 어쩌면 세월이 지나 아이가 독립할 때도 나는 여전히 서투를 지도 모른다. 아이가 스무 살이 된다고 해도, 엄마로서 스무 해를 산 것일 뿐일 테니까.




행사 일정을 마치고 어린이집 놀이터에서 잠깐 아이와 놀자 열두 시가 넘었다. 점심은 집에서 먹겠다고 선생님에게 말한 뒤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는 돌아오는 길 내내 하품을 했다. 나는 점심을 먹고 아이 침대에 누웠다. 눈을 뜨니 세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휴대폰에는 윷놀이 상품으로 받은 튀밥과 약밥을 안 가져갔다는 선생님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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