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8일, 도아
두 발짝 걸어 내 품에 안기다
아이의 눈에 띄는 변화를 발견하면, 몰스킨을 펼친다. 세로로 다섯 칸으로 나눠진 177페이지를 찾아 날짜를 쓰고, 머릿속에 든 것들을 기록한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꾸준히 해온 일이다.
나는 12년 가까이 몰스킨을 쓰고 있다. 라지 사이즈의 플레인 노트에 그림일기를 쓰다가 룰드로 넘어와 글을 썼고, 지금은 몇 년째 포켓 사이즈에 메모를 하고 있다. 크기와 형태는 변해왔지만 늘 검은색 하드 커버다. 가격이 비싸 다른 노트를 써볼까 싶어도 선뜻 바뀌지 않는다. 서재 한편에 노트를 일자로 나란히 세워놓는 맛 때문인지도 모른다. 수집욕을 불러일으키는 한정판 에디션과 각종 패션 저널도 몇 권 있다. 그중에 베이비 저널도 포함된다.
언제 구입한 것인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적어도 5년 전인 듯하다. 아이를 낳을 수도 있고 안 낳을 수도 있겠지만 만약 낳는다면 기록하겠다,라는 생각을 가졌나 보다. 아무튼 베이비 저널은 한동안 서재 한구석에 있다가 임신 후 줄곧 책상 위에 놓여 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챙겨야 할 준비물부터, 태어난 당일 기록, 또 키와 몸무게를 기록할 수 있는 성장차트 등 쓸거리가 많다. 새로 이유식을 도전했을 무렵에는 재료의 이름을 늘어놓으며 아이가 잘 먹는지 썼고, 여름에 아이가 감기와 장염에 걸렸을 때도 약과 증상, 의사의 말들을 썼다. 특별한 일이 있어도, 없어도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검은 노트를 펼쳤다. 일과를 관리하는 베이비 타임과 같은 휴대폰 앱도 썼지만 역시 뭐랄까, 내가 관찰하며 기록한다는 느낌은 몰스킨 베이비 저널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었다.
주기적으로 아이의 성장에 대해 기록하기도 했다. 신체적 발달은 눈에 확 띈다. 누워 있던 아이가 뒤집기를 하고 스스로 앉는다. 혼자 힘으로 가구나 벽을 짚으면서 걷다가, 마침내 걷게 된다. 그저께 도아는 두 발짝을 스스로 걸어 내 품에 안겼다. 아이가 어떤 과정을 거쳐 성장하는지, 발달의 순서는 이미 알고 있음에도, 막상 그 일을 해내는 순간은 마법처럼 느껴진다. 그런 날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볼펜을 든다. 그러나 더욱 나를 놀라게 하는 건 조용한 변화다. 아이가 218일 되던 날, 나는 이렇게 기록했다.
아이가 인과관계를 파악한다. (싱크대에서 물을 틀면 손을 씻는 자세를 취한다)
반복 리듬이 있는 노래와 대화가 다름을 인지한다. (노래가 나오면 몸을 흔들거나 손을 까딱인다)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라는 책을 통해 아이의 두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배웠지만, 내 아이가 직접 도약하는 걸 목격한 순간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사물을 잡고 던지는 것에만 몰두하던 아이가, 물건을 다시 집어넣거나 옮길 때, 자석이 착 붙는 것에 흥미를 느낄 때 나는 입을 쩍 벌리고 만다. 물건을 흐트러뜨리고 부수던, 즉 해체하던 시기를 거쳐 다시 구축하는 일이라니. 해체 다음 구축, 어쩌면 인간의 근본적인 사고방식은 이런 게 아닐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불과 반년 전만 해도 아이는 사건의 세계를 알지 못했다. 우리는 당연히 차의 배기음을 알아채고, 공은 아래로 떨어지는 걸 인지하지만 아이는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이 각각의 단어를 가지고 있다는 것 또한 그렇다. 그저 있는 대로 순간순간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하나하나 연구하고 탐색한다. 고양이라는 단어를 말하면, 낱말 카드에 그려진 고양이를 들어 보인다.
아이의 성장 순간을 기록하고 싶어 쓴 육아 저널이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을 탐구하는 연구 노트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몰스킨을 펼친다. '인간 존재의 비밀'이라고 적힌 선물 상자를 살짝 풀어보는 기분으로. 이만하면 노트값이 이래도 괜찮지 않을까 여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