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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와 에세이 그 어느 중간쯤인 육아 기록

에필로그

by 요니

작년에 어떤 분과 대화를 나눌 때였다. 배를 쓰다듬었더니 태동이 느껴졌다. 당시 나는 태동을 느낀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이었다. 아이가 배에서 둥둥 차는 게 마치 물고기가 꿈틀거리는 것 같아 신기하다고 했더니 그분이 말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어떤 느낌인지 기억나지 않네요."

그녀는 어깨만큼 자란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였다. 그 말을 듣자 등이 꼿꼿이 펴졌다.

'내 뱃속에서 또렷이 느껴지는 이 감각도 언젠가는 사라지는 날이 온다'

인생의 강렬한 감각은 오랫동안 남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임신과 태동도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반이나 남은 과자 봉지를 빼앗긴 기분이 들었다.


육아 에세이를 쓰기로 마음먹은 건 아이가 100일이 지나고 나서였다. 밤낮 구분 없던 아이가 새벽에 잠을 길게 자기 시작했다. 수면 부족으로 기억조차 흐릿한 하루를 보내던 나는 잠깐 여유가 생기면 잠을 자거나 책을 읽었다. 이때 읽었던 책 대부분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조금이라도 나를 붙들고 싶었던 것 같다. 시간이 좀 더 흐르자 멈춰 있던 사고가 조금씩 회복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아이가 낮잠을 잘 시간이 되면 작은 방의 책상으로 쪼르르 달려가 커피 한 잔을 티코스터 위에 올려놓고 모닝 페이지를 썼다. 손이 가는 대로 글을 휘갈겼고, 이따금 메모를 했다. 아이가 규칙적으로 낮잠을 자면서부터는 컴퓨터를 켜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발행하지 않은 글이 차곡차곡 쌓였다.


브런치에 글을 혼자서 올리다, 밑미라는 리추얼 프로그램에 참여해 매일 육아 일기를 썼다. 다른 사람의 육아 일기를 읽는 재미도 있었으나 한 달간의 프로그램을 끝내고는 다시 혼자 쓰기로 했다. 밑미에서 쓴 글은 1,000자 내외로 분량이 적어 비교적 손쉬웠지만,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 작게 느껴져 다시 2,000자로 늘렸다. 30편의 글 중에는 마음에 드는 글도 있었고, 아닌 글도 있다. 고백하자면 일주일에 3번씩, 한 가지 주제로 쓰는 일이 쉽지 않았다.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멍하게 모니터를 바라보는 시간이 적지 않았다. 문득 다른 소재거리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쓰고 싶어도 꾹 참고 메모로 만족했다. '첫 육아 시기'인 지금, 일 년 동안의 감각을 다루는 게 무엇보다 우선으로 하기로 했으니까.


보통 나는 에세이를 쓸 때면 글감을 머릿속에서 굴리다가,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면 글을 쓴다. 퇴고는 바로 하지는 않고 보통 하루 이틀 묵혀두었다가 브런치에 올린다. 하지만 올해 엄마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쓴 글들은 다르다. 한번 의자에 앉으면 그대로 글감을 생각하며 초고를 쓰고, 퇴고를 마친 뒤 발행 버튼을 눌렀다. 그래서일까. 다른 글보다 날것 그대로의 들뜸이 느껴진다. 마치 사랑에 빠져 주변이 보이지 않던 10대 시절 일기 같다. 다시 읽어보면 너무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것 아닌가 싶다. 몇몇 우울해지는 내용도, 평소에는 절대 꺼내놓지 않았을 내밀한 속마음을 쏟아낸 것들도 있다. 그러니 어쩌면 이번 글들은 에세이라고 불러야 할지, 일기라고 해야 할지 고민스럽다.


그러나 나는 언젠가 희미해져 거품처럼 사라질 것들을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싶었다. 언제 꺼내 봐도 생생히 전해지는 초보 엄마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다. 새로 얻게 된 정체성을 밀어내기보다는 온몸으로 껴안으려 했다. 피부에 찰싹 달라붙는 그 순간을, 당시 느끼는 벅찬 마음을 담으려 했다. 한 계절이 지나도록, 정해진 분량대로 어찌어찌 써냈으니 반은 성공한 것 같다. 이제 한동안은 육아에 대한 건 더 쓰지 않아도 되겠다는 후련함도 든다.


앞으로는 어떤 글을 쓰게 될지 모르겠다. 소설로 돌아갈 수도 있고, 다른 에세이를 끄적거릴 수도 있겠다. 시간이 좀 지나 '아, 역시 육아 에세이를 더 써야겠어'라고 마음먹고 다시 쓸 수도 모른다. 뭐가 됐든 기본적인 마음가짐은 비슷하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소중한 것들을 마음을 담아 기록하고 싶다.


*


일단 준비한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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