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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by 요니

날이 갑자기 추워지더니 아이가 콧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열은 안 났지만 투명한 콧물은 금세 노란색으로 바뀌었다. 근처 이비인후과 접수 종이에 이름을 썼다. 아이의 이름 아래에 내 이름도 썼다. 나 역시 목이 따끔거렸기 때문이다.

“목이랑 코가 많이 부어있네요.”

한바탕 칭얼거린 아이를 달래고 입을 벌리자 내시경으로 내 목과 콧구멍을 살피던 의사가 말했다.

“이 정도면 심한데 괜찮으셨어요?”

나는 우물쭈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목이 아프긴 했는데 제법 심한 것이었나 싶었다. 의사는 요즘 환절기라 자주 걸린다며, 약을 잘 먹으라고 말한 뒤 서랍에서 사탕을 꺼내 아이에게 쥐여줬다. 처방받은 약 두 봉지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열려있는 창문을 닫고, 손을 씻은 다음 아이에게 약을 먹였다. 그리고 내 이름이 적힌 약봉지를 꺼냈다. 아침, 점심, 저녁 총 아홉 봉지에 알약이 각각 네 알씩 들었다. 길쭉한 포 형태로 된 약도 여섯 포가 있었다.




나는 병에 잘 걸리는 편은 아니다. 환절기에 감기 걸리는 일도 거의 없고, 가끔 아프더라도 상비약을 하루 이틀 정도 챙겨 먹으면 금방 괜찮아지곤 했다. 잔병치레 거의 없는 체질이라 그런지, 아니면 영양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병원을 1년에 한 번도 가지 않은 적도 제법 있었다.


작년에 임신을 하고 나서는 자주 몸살이나 감기에 걸렸다. 결혼 후 한 번도 감기에 옮은 적이 없었는데, 남편이 감기에 걸리자마자 곧이어 걸리기도 했다. 임산부였기에 함부로 약을 먹지도 못해, 따뜻한 물만 마시며 쉬고 자연스레 낫기를 바랐다. 원래 면역력이 떨어지는 시기니까 어쩔 수 없다고 여기며, 빨리 출산하면 괜찮겠지 하고 말이다.


올해도 여전히 감기에 자주 걸린다. 아이가 태어나면 자연스레 몸이 원래대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임신 후 몸이 변한 건지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인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몸이 조금씩 약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마다 고민스러운 건 약 복용 문제였다. 나는 여전히 아이에게 모유를 주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10개월이 넘도록 분유와 모유를 함께 준다. 인터넷에서 한참 수유에 대해 찾아볼 시절, 혼합 수유는 보통 짧게 하다가 한 가지로 정착한다는데, 나는 그러질 못했다. 아이 역시 분유와 모유 모두 잘 먹었다. 태어나고 한동안 분유의 비율이 높다가 점점 모유로 기울었지만 분유를 끝내 포기하지도, 모유를 끊지도 못했다. 그렇게 어물정 흘러가다 보니 곧 돌을 바라보고 있다. 이유식과 유아식을 병행해서 먹이고 있어, 더 이상 모유는 그만해도 되나 싶지만 이내 머뭇거린다. 더 이상 면역력이나 영양의 문제가 아니다. 고백하자면 아이와 함께 누워서 몸을 찰싹 붙이고 있는 게 좋아서다. 또 모유를 먹고 나면 100% 배터리가 충전된 듯 신나게 노는 아이를 바라보는 게 흐뭇해진다. 그러니, 조금만 더 먹일까 하고 마음이 기울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약을 먹어야 할 때면 모유와 내 건강을 양쪽 저울에 두고 견줄 수밖에 없게 된다. 지난여름, 아이와 나 둘 다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갔을 때도 그랬다. 의사에게 모유 수유를 해서 약을 먹는 게 고민스럽다고 했다. 그는 호르몬제나 항암제 같은 약은 위험하지만 처방받은 약은 모유를 통해 미미하게 흘러가도 큰 이상은 없다고 했다. 이미 아이도 감기에 걸려 있기도 하니, 괜찮다는 말과 함께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건강해야 아이도 건강하죠.”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내 나는 약을 한 알도 먹지 못했다. 임신 때 생긴 기미를 없애려 산 연고 역시 ‘임산부는 사용하지 말라’는 문구에 여전히 뚜껑을 열지 못하고 있다. 때로는 내가 너무 미련하게 구는 건가 아닌가 싶다.




기침이 멈추지 않는다. 나는 아이를 바라본다. 맞는 말이다. 내가 건강해야 아이도 건강하다. 나는 정수기에 물을 떠놓고 머뭇거리다 결국 알약을 한꺼번에 삼켰다. 약이 몸속으로 녹아들어 가 온몸으로 퍼지는 상상이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유선으로 흘러가 아이의 입으로 닿는 순간까지도.


거실에서 노는 아이에게 다가가 옷을 갈아입히려는데 아이가 자기 배꼽을 만지작거린다. 모유를 주려고 하면 아이는 늘 내 배꼽을 먼저 만져보곤 했다. 나는 아이의 배꼽을 가리키며 말한다.

“도아야, 옛날에는 거기로 엄마와 이어져 있었지.”

아이가 내 손가락을 잡는다. 코에서는 노란 콧물이 흘러나온다. 나는 아이를 품에 안는다. 바싹 마른 탯줄을 떠올리며, 모유를 끊는 날이 곧 머지않음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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