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oklaire 북클레어 Oct 26. 2024

[소설] 예정된 일

눈사람들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눈사람들이 눈싸움을 벌이고 있는 도중, 운동장에는 갑자기 한 무리의 아이들이 나타났다. 눈사람들은 자신들과 아이들이 함께 눈싸움 놀이를 하려는 것인줄 알고 반갑게 달려나갔다.


“와, 진짜 되는 게 아무것도 없어!”


한 아이가 반갑게 달려가는 오리 눈사람을 짓밟았다. 그 아이를 따라 고학년의 아이들이 무리로 와서 눈사람들을 주먹으로 때리고 발길질을 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눈사람들이 사라져갔다. 눈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소리를 질렀다. 눈사람들을 마음대로 부수고 있는 이 아이들은 방금 선생님에게 혼이 난 아이들이었다. 


한 아이가 가장 먼저 덩치가 큰 토토로 눈사람을 쓰러뜨려 몸을 반동강 낸 후 발로 밟았다. 


“아씨, 짜증나.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난리야!”


운동장 한쪽 벤치에 있던 작은 오리눈사람들의 몸통도 하나씩 밟아가기 시작했다. 


“악! 도대체 뭐야!” 


꼰대 오리 눈사람이 아이에게 짓밟히기 직전, 젤리 눈사람을 향해 뛰어오며 소리질렀다.


“하얀 숲으로 가기 전에 꼭 기억해둬! 하얀 숲이 만들어내는 환상에 속아서 갇히면 안돼!”


아이들이 화풀이의 대상으로 눈사람들을 짓밟기 시작했다. 토토로 눈사람, 곳곳에 있던 오리 눈사람들 모두 아이들에게 밟혔다. 우산을 가지고 있던 토토로 눈사람은 밟히기 직전 큰 나뭇잎 우산을 젤리 눈사람 앞에 떨어뜨렸다. 떨어진 우산은 젤리 눈사람 앞을 가려 아이들로부터 눈에 띠지않을 수 있었다. 이미 겨울의 끝에 다다라 딱딱해진 눈사람들은 부숴지기 쉬운 상태였고, 이제 아이들의 발길질 몇 번에 모두 사라져버렸다. 


눈사람을 다 밟고 더 이상 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 아이들은 학교를 빠져나갔다. 학교에 있는 모든 눈사람을 없앴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과 닮은 형체의 눈덩이일 뿐, 이들이 아이들에 의해 사라진다고 해서 별반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고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에게는 눈사람이 아이들의 발길질에 의해 사라진 것 또한 자연에 의해 사라진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일이었다. 예정된 일이었다. 언제나처럼 눈사람들은 겨울이 끝나갈 무렵 그렇게 사라졌다.


젤리 눈사람은 이 모든 일이 일어난 후, 한참 뒤 누군가 찾아와 운동장의 나뭇잎 우산을 챙겨가고 나서야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를 알게되었다. 젤리 눈사람은 그렇게 혼자 남게 되었다. 이번 겨울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던 젤리 눈사람들의 친구들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이전 06화 [소설] 찾아오지 않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