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하고 싶으나 불안한 아이에 관하여
내가 20대 초반에 전공한 심리학은 정서 중심의 정신분석학적 전통이었다. 그 후 행동치료와 인지치료를 모두 경험했고, 지금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코딩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그 동안 내가 느껴온 것은 무의식을 파고들기 전에, 의식의 자료를 충분히 관찰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불안’이라는 말로 결론내리기 전에, 정서-환경-인지의 상호작용을 수치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도시락이라는 전략은, 정서적 애착을 구조화하고 체계화하는 시도였다.
도시락 하나로 아이의 모든 아토피가 해결된 건 아니지만, 적어도 매일의 반복 속에서 아이는 안정감을 회복하고, 나는 과잉보호에서 한 발 물러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융은 말한다.
"만약에 부모들이 완벽하다면, 그것은 분명 재앙일 것이다. 아이들이 부모 앞에서 도덕적 열등감을 느끼는 외에 다른 대안을 전혀 갖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부자연스런 상처로부터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부모의 노력뿐이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아이는 어느 날 집 안 어른들의 백그라운드를 물어보더니 한탄하듯 혼잣말을 내뱉었다.
“이 집안은 왜 이렇게 빡세?”
아이는 어른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리고 아이에게 공부를 요구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아이에게 '내가 부족해서 그런가?'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어떤 스탠스를 취하더라도 사춘기에 아이는 독립을 위한 반항심을 품고, 스스로를 비하해보기도 하고, 부모에게 원망을 하기도 한다. 그런 과정에서 내 아이가 느끼는 나의 삶, 나의 감정, 나의 기준은 거울처럼 반사되어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말하고 싶다.
“공부를 시키지 않았던 건 네가 부족해서가 아니야.”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했기에 더 요구하지 않았을 뿐이야.”
“지금 너의 하루하루가, 바로 네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어.”
지금 나는 코딩으로 감정을 정리하고, 상담에서 얻은 사례들을 구조화해가는 중이다.
내 불안을 ‘데이터’로 바꾸는 과정,
내 감정을 ‘안정된 루틴’으로 전달하는 과정,
그 자체가 부모로서, 상담자로서의 통합이라고 믿는다.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심리치료는, 예측 가능한 사랑을 반복해서 전달해주는 것.
그 사랑의 한 형태가 도시락이었다.
당신에게는 어떤 방식의 ‘도시락’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