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게인 시즌4를 보는 중이다. 승패가 나뉘는 스포츠라면 모를까,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과 심미안이 작용하는 분야를 다루는 경연 프로그램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또 동시에 즐겨본다. 한식대첩, 냉장고를 부탁해, 흑백요리사 같은 요리 경연대회라든지 슈퍼스타K, 나는 가수다, 싱어게인 같은 음악 경연들. 물론 여전히 순위를 매기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음식이 덜 익었거나 탔다든지 노래를 부르는 데 음이 이탈했다든지 하는 기술적이고 기능적인 면이라면 모를까, 음식 주문량이나 음반 판매량처럼 수치화된 영역이라면 모를까, 어느 정도 완성도를 달성한 창작물에 확고부동한 순위를 매기는 평가가 어떻게 가능할까. 비 오는 날이면 수제비가 더 맛있고 이영훈의 '비 내리던 날'이란 노래가 더 좋지만, 홀로 외로움을 견디는 밤이라면 소주 바시며 '일종의 고백'이 더 좋은 것처럼 평가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감상적일 수밖에.
이런 불만을 품고도 계속 보는 건, 재밌으니까. 하지만 늘 즐거운 건 아니다. 경연 프로그램의 승리 방적식 같은 게 있기 때문에. 특히 노래 경연 프로그램의 경우 아무래도 가창력 위주로 심사가 이루어지고, 가창력은 아주 단순하게 고음을 누가 잘 내지르는지를 두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기본적으로 목에 핏줄을 세우며 악을 써대는 노래를 한다. 내가 좋아하는 루시드폴 같은 가수는 아마 나오자마자 광탈할 것이다. 실제로 브로콜리 너마저 덕원은 싱어게인 시즌2에 나와서 1라운드에서 광탈했다. 벌써 꽤 오래전 프로그램이 되었지만 나는 가수다에 나온 조규찬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름다운 노래를 선보였지만 그를 오래 볼 순 없었다. 그래서인지 옥주현은 이승환의 '천일동안'을 고래고래 악을 지르며 불렀다. '천일동안'을 들을 때 나는 늘 감정에 집중하는 편이었는데 옥주현의 '천일동안'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선은 없었다.
싱어게인은 그런 면에서 여타의 노래 경연프로그램보다 볼만하다. 아마추어들이 나오는 프로그램들보다는 참가자들의 실력이 월등해서 좋다. 무대 하나하나가 공연을 보는 것 같다. 뭐 내가 대단한 음악적 식견이 있어서 심사위원들처럼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노래 듣는 걸 좋아하는 팬의 입장에서 볼 때 그렇다. 그리고 싱어게인의 가수들은 상대적으로 자신의 색깔을 버리지 않고 자신의 음악으로 심사위원들을 납득시키려 노력한다. 이영훈처럼 부르는 이영훈, "쟤 또 똑같은 것 하네. 그런데 왜 이렇게 좋지?" 이런 생각이 들게끔 하고 싶다는 44호, '바람이 분다'를 펑크 스타일로 부른 타카피 같은 뮤지션들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나는 평화활동가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음악가와 활동가는 비슷한 점보다 다른 점이 많겠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의 동질감을 나는 느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들. 그렇기에 큰돈을 벌지 못해도 괜찮지만 동시에 생계 걱정까지 해야 하는 이들. 하필 내가 좋아하는 것이 이 사회에서 주류가 아닌 것이어서 늘 누군가를 설득해야만 하고, 그러다 외로운 이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받아들인다. 알래스카나 라다크에서 태어났다고, 우리는 왜 이렇게 농사짓기도 어려운 땅에서 태어나 먹을 것도 없냐고 탓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쩌다 보니 평화운동이 가장 재밌고, 이유도 없이 포크나 펑크록이 좋은 걸 어쩌란 말인가. 예전에 재즈 컬럼리스트 황덕호 님의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또한 비슷한 토로를 했다. 먹고살기 위해 때로는 클래식, 때로는 팝음악에 대한 글도 쓰지만 심장이 뛰는 건 어쩔 수 없이 재즈를 들을 때라고. 좋아하는 일이 무언지 알고 또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힘들더라도 행복한 거다. 언젠가 내가 이 일의 취약성 때문에 이 일을 할 수 없게 될 때가 올 수도 있겠지만 그때까지는 좋아하는 일을 충분히 하고 싶은 마음이 느껴지는 무대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을 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사회적인 인정이나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건 사실 괴로운 법. 결국 사람들을 설득하고 사회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러면서도 사회적 성공을 위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버리고 사람들이 바라는 것을 곧바로 추구하지는 않는다. 그런다고 성공할 보장도 없을뿐더러 애초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기에. 하지만 자신의 것을 온전히 지키면서도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지 늘 노력하고 애쓰는 모습을 싱어게인의 가수들에서 보았다. 운동의 원칙을 소중히 간직하면서도 어떻게 이야기해야 사람들에게 이 사안을 널리 알리고 핵심 가치를 설득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내 동료 평화활동가들에게서 보는 그 모습과 닮았다고 느꼈다.
좋은 음악과 공연을 감상하는 일도 무척 즐겁지만, 바로 이런 지점 때문에 싱어게인을 보게 된다. 좋아하는 일을 해나가는 이들의 덤덤한 태도와 표정, 그러면서도 애정 듬뿍 담긴 몸동작을 보면 나 또한 절로 따스해지고 뭉클해진다.
모두가 자신의 음악에서 주인공이지만, 싱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따로 있겠지. 지금까지는 37호 가수인 거 같다. 팀전으로 이루어진 2라운드에서 타카피가 "저 꼬맹이가 노래를 너무 잘해"라며 경계했던, 아주 그냥 온몸에 소울과 리듬이 넘치는 타고난 재능을 뽐내는 가수. 그가 떨어지는 것이 상상이 가지 않는 가수 37호. 그런데 적어도 나에게 주인공은 37호가 아니라 37호와 팀을 이뤘던 토마스쿡이다.
물론 토마스쿡이 싱어게인에 나오는 게 너무 속상하다. 이영훈이나 디어클라우드도 마찬가지. 왜 어게인이야. 대중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진 못했지만 자신 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해서 꾸준히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는 가수들인데. 충분히 존중받을 음악 경력을 쌓아온 이들인데. "이미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한 이들이고, 십수 년 이상 성실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 왜 동료 음악가들 앞에서 노래하며 심사를 받아야 하는 것일까"라는 서정민갑 님의 문제의식에 적극 동의한다.
그런 속상함을 가지고 봐서 그런지 몰라도 토마스쿡이 37호 가수와 팀을 이뤘을 때 보여준 모습은 내게 큰 울림을 줬다. 토마스쿡과 37호 가수가 듀엣으로 함께 부른 노래는 이적의 '바다를 찾아서'. 원곡의 느낌은 37호 가수보다는 밴드음악을 하는 토마스쿡의 음악색깔과 더 어울렸지만 이들이 부른 '바다를 찾아서'는 훨씬 소울풀한 느낌이었다. 토마스쿡의 노래를 아주 많이 듣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앨범도 있고 공연도 봤는데 저런 식으로 노래하는 건 처음 봤다. 매끄럽게 소화해 내긴 했지만 심사위원의 말마따나 리듬이 아직 몸에 익은 모습은 아니었다. 자신의 스타일을 내려놓고 철저하게 37호의 스타일에 따른 것이다.
그게 경연프로그램이다 보니 심사를 통과하기 위한 어떤 전략적 판단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내 눈에는 그보다는 37호가 태어나기 전부터 음악을 했던 선배로서 후배에게 맞춰준 것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이 무대의 심사룰은 팀이 떨어지더라도 그중에서 잘한 사람은 추가 합격이 가능한데, 그렇다면 내가 최상의 퍼포먼스를 보이는 것이 합격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토마스쿡은 자신이 불리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색깔을 지우고 후배의 음악을 살려주는 방식으로 팀플레이를 했던 거였다. 물론 37호는 자신의 음악으로 다른 이들을 매료시킬 만큼 충분한 재능이 있긴 했지만 그렇더라도 토마스쿡 입장에서는 그러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영역에서나 보통의 경우 선배들이 후배들보다는 능숙하게 일을 해낸다. 타고난 재능이야 후배들이 더 뛰어날 수도 있지만 리얼 월드에서 일을 해나갈 때는 수많은 변수와 능력으로 환원되지 않은 무수한 요소들이 개입하기 마련인데, 이때 힘을 발휘하는 것은 바로 경험이고 경험에 있어서는 선배들이 후배들보다 유리하니까.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의 선배들은 자신의 판단이 후배들의 판단보다 옳다고 믿고, 실제로도 그런 경우가 더 많다. 선배와 후배가 팀을 이뤄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선배가 주도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유다.
하지만 처음부터 경력자고, 처음부터 선배인 사람은 없는 법. 사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좋은 선배 옆에서 그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책임을 지고 일을 해보고 실패해 보는 경험을 쌓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단순 스킬을 배우는 것이라면 몰라도, 죽이 되는 밥이 되든 온전히 책임을 가지고 끝까지 일을 진행하는 힘은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쌓을 수 없는 종류의 힘이다. 결국 조금 못마땅하더라도 후배들이 책임 지고 일을 밀고 나가도록 양보해 주고 판을 깔아주는 게 필요한데, 현실에서는 어쨌든 성과를 내야 하는 일에 대해 그런 자세를 취하기가 쉽지 않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그렇다. 전쟁없는세상은 그래도 조직문화 자체가, 사회적으로 더 발언력이 없는 사람들을 주목받는 위치에 세우려고 하는 편이다. 남성보다는 여성활동가, 경력이 많은 활동가들보다는 신입활동가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맡긴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나는 속으로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자리는 중요한 자리인데 차라리 내가 혹은 오리가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러다가 일을 망치면 어떡하지?'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쓸 뿐이다. 솔직히 내가 한다고 혹은 경험 많은 사람이 한다고 늘 더 좋은 성과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하지만 불쑥불쑥 올라오는 저런 생각을 억누를 줄 알아야 한다. 조직이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권력이 분산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경력이 더 적은 이들이 스스로 권한을 행사하고 책임을 지는 경험을 하게 해줘야 한다. 머리로는 생각하긴 쉽지만 막상 그렇게 행동하기는 어려운 일. 그런 일을 토마스쿡이 보여준 것이다. 그것도 한 번의 기회에서 무참히 떨어질 수도 있는 경연프로그램에서.
아 안 되겠다. 당장 마이앤트메리의 '공항 가는 길'을 들어야겠다. 그러고 보니 '공항 가는 길'의 가사 또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미래가 불투명한 이들의 모습을 씁쓸하게 보여주는구나. 그래도 할 수 있을 때까진 열심히 해보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