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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민해 Jul 01. 2022

엄마의 가장 젊은 날은 오늘이다

이제는 나이 든다는 것이 두렵지 않다

버킷 리스트(bucket list)란 죽기 전에 한 번쯤은 이루고 싶거나 꼭 해보고 싶은 소망들을 작성한 목록을 뜻하는 말로, 2007년 개봉된 영화 <버킷 리스트>를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영화 <버킷 리스트>는 말기 암 선고를 받고, 시한부 인생을 시작한 두 노인이 병원 중환자실에서 만나 티격태격하다 점점 가까운 사이로 발전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죽기 전에 하고 싶었던 자신만의 리스트를 작성한 둘은 남은 인생을 병원에 갇혀 연명치료를 받기보다 버킷 리스트를 하나씩 이뤄가는 데 쓰기로 결심한다. 여행 도중 갑작스러운 출혈로 중도 포기할까 고민하기도 하지만, 둘은 끝까지 버킷 리스트를 완수해나가며 둘만의 유쾌한 여행을 이어간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의 모습처럼 나이를 먹었다고, 병에 걸렸다고, 시한부 인생이라고, 삶에 대한 열정이 식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에게나 하고 싶은 것과 좋아하는 것은 나이를 불문하고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 과정 속에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낀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 평균에 비해 훨씬 가팔라, 2026년에는 65세 이상의 인구 비율이 전체의 20%에 달하게 된다고 한다. 나 또한 어릴 때 생각하던 60대 어른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과 많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물론 내가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지금 우리 부모님만 봐도 60대의 어른들이신데 굉장히 젊고 건강하게 느껴진다. 확실히 내가 어릴 때 생각하던 60대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심지어 얼마 전 정년퇴직한 나의 동료도 60대이고(우리 회사는 직급이 꽤 수평적인 편이라 그분과 나의 직급이 같았다), 나와 그분은 지금도 친구처럼 잘 지내고 있다.


내가 20대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을 당시에 엄마와 나이에 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 엄마가 하셨던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네 나이에서 나를 봤을 때, 내 나이가 되면 이제 삶이 재미없을 것 같고, 늙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안 그래. 내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젊다고 생각해서 50대지만, 여전히 내가 좋고, 하고 싶은 것도 즐거운 일도 많아."

당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을 바라보면서 저분들은 이제 인생이 재미없다고 느끼고 계시지 않을까, 하루하루 늙어가는 것에서 젊음을 부러워하지 않을까 어림잡아 생각했던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나는 어릴 때 30살(올해로 이미 33...)을 넘으면 이제 인생이 꺾이기 시작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노화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던 것 같고 말이다.


작사가이자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김이나 작가는 자신의 저서인 <보통의 언어들>에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파도를 타듯 자연스러울 때 근사하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때까지도 나이 듦에 대한 나의 주 감정은 혐오나 공포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뒤로, 나이가 든다는 것은 파도를 타듯 자연스러울 때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 육체가 약해지는 데에는 분명, 조금 더 신중해지고 조금 더 내려놓으라는 뜻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그때부터였다. 또 매사에 속도가 조금 늦어지고 일분, 일초를 읽는 감각이 둔해짐으로써 세상을 좀 더 큰 그림으로 읽을 줄 아는 어른이 되는 것도, 어쩌면 신체의 노화 덕일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중력이 내게 해주고픈 말을 받아들이면서 다만 너무 아프지 않게 나이 드는 것, 그러나 숫자로 모든 걸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 것, 육체의 유한함 앞에 겸허해지는 것, 이것이 앞으로의 내 나이에 관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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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나 작사가의 말처럼 나 또한 나이 듦에 대한 생각이 이제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물론 내가 나이를 먹고 있어 핑계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지금의 나도 점점 나이 들어갈 나도 좋다. 매일의 나를 더 잘 키워가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60대의 나는 외형적으로는 지금처럼 건강하고, 젊지 않겠지만 내면적으로 더 많이 성장하고, 성숙해져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지금보다 더 여유롭고, 지금보다 더 지혜로운 어른이 되기를 기대한다.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분명하게 구별할 줄 아는 책임감 있고 현명한 사람으로 나이 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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