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영국 여행
2025년 2월
멀게만 느껴졌던 그날이 왔다. 독일에서 돌아온 직후의 계획대로라면 1월쯤 프로젝트를 끝내고 쉬는 기간이었을 텐데 역시나 인생이란 알 수 없는 일. 쉴 틈 없이 1월부터 다른 프로젝트에 투입이 되고 말았다. 초반기라 장기간 자리를 비운다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어떻게 생각해 보면 프로젝트 초반기라 미리 해둘 수 있는 일들을 해놓고 나면 괜찮을 수도 그런 시기였다. 결론적으로 나 하기 나름이라는 결론.
독일에서 돌아온 후 동생과는 확실히 관계가 이전보다 돈독해졌다.
그녀도 일상으로 돌아가고 나 역시 일상으로 돌아온 후 정신없이 지내면서 틈틈이 아일랜드 여행을 준비했다. 내가 최대한 낼 수 있는 기간은 평일 기준으로는 8일, 주말을 합치면 10일. 이번에는 짧은 여행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라 아일랜드 더블린, 그리고 에든버러를 일정에 추가했다. 내가 먼저 더블린으로 입국하고 이틀 뒤 동생이 더블린으로 오기로 했다.
출발하는 날은 날이 매우 맑고 청명했다.
비행기는 오전 12시, 즉 00시였기 때문에 미리 짐을 싸두고 퇴근 후에 집으로 와서 출발하면 되는 일정인데 팀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조금 일찍 퇴근했다. 이번엔 직항이 아니기 때문에 미리 화장도 지우고 샤워도 했어야 했다.
이번 항공사는 터키항공. 이스탄불에서 더블린으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탄다. 어차피 인천에서 더블린까지는 직항이 없기 때문에 어떤 항공사를 이용해도 환승은 피할 수 없는 여정이다.
사실 앱으로 미리 체크인하고 셀프 백드롭을 해도 됐었는데 이번엔 환승 일정이다 보니 조금 불안했다. 그냥 빨리 공항으로 가서 데스크에서 체크인을 하기로 했다. 일찌감치 도착해 줄을 섰지만 사람이 꽤 많아 완전히 수속을 마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체크인을 끝내고 이번 출국식사는 오므라이스!
물론 맥주 한 잔도 빼놓을 수 없다. 늦은 시간이라 공항은 한산한 편이었다. 식당을 찾으면서 보니 면세점도 담배와 리큐르를 파는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 어차피 쇼핑할 건 없었지만 굳이 미리 들어가 들어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식사를 마치고 느지막이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이번 좌석 운은 매우 나빴다.
3-3-3 배열의 비행기였는데 일단 아시아나보다 좌석 간 거리가 너무 좁았다. 키가 크지도 않고 길지도 않은 내 다리가 앞 좌석 등판에 아슬아슬하게 닿는 지경인데 하필 내 옆좌석의 승객의 등치가 감당할 수 없이 컸다. 그가 나름대로 주변인을 배려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질 만큼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이 나도 느껴질 정도인데도 어쩔 수 없이 내 의자의 1/3 정도는 그의 다리가 차지하고 있었다.
일단 잔뜩 먹고 잠들면 그만이니까... 또 본인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얼른 후딱 먹고 잠들기로 했다. 환승해야 하는 이스탄불에서 더블린까지는 4시간 정도 소요되기 때문에 최대한 피곤하지 않게 쉬어야 한다.
먹다가 자다가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이스탄불이다. 10년 전쯤인가... 터키+이집트 배낭여행을 할 때 이스탄불 공항으로 입국을 했었다. 그때는 국제공항명이 아타튀르크공항인가 그랬는데 신청사로 이사를 한 것 같았다. 공항 건물도 엄청 크고 휘황찬란하게 컸다.
연결 편과의 시간차이는 2시간 정도가 있었다. 다행이다.
공항이 생각보다 너무 커서 환승시간이 짧다면 정신없이 뛰었어야 했을 것이다. 이스탄불 공항에서 환승하는 여행이라면 환승시간을 여유롭게 잡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번에도 환전은 별도로 하지 않고 트레블 월렛을 이용했다. 난생처음 E-sim이라는 것도 이용했는데 유심을 뺐다꼈다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편했다. 특히 별도의 설정 없이도 그 지역에 도착하면 바로 해당 국가의 유심이 활성화되어서 추가적으로 내가 더 설정할 것은 없는 것도 매우 편리했다.
인천에서 이스탄불까지 오는 비행에서는 충분히 잤기 때문에 더블린까지 가는 비행기 안에서는 팩도 붙이고 간단히 화장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4시간은 생각보다 짧은 시간이었다.
더블린 공항에서부터 숙소까지는 픽업 서비스를 이용했다. 마이리얼트립에서 예약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이 서비스를 이용한 건 정말 잘한 일. 이번에도 나는 여행 정보 같은 건 별로 찾아보지 않고 왔기 때문에 픽업 나와주신 분이 이것저것 설명해 주신 것과 카톡으로 전달해 주신 여행정보가 너무나 유용했다.
https://experiences.myrealtrip.com/products/3860311
공항에서 숙소까지는 먼 거리는 아니었기 때문에 금방 도착했지만 더블린의 첫인상은 뭔가 달랐다. 잔뜩 구름을 머금은 날씨에 비가 오락가락하고 있었지만 그런 분위기와도 잘 어울리는 오밀조밀 작은 건물들이 인상적이었다.
어차피 날씨가 계속 흐리고 비가 올 것은 예상하고 왔기 때문에 비 정도는 내 기분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았다. 동생 말대로 일하러 온 것도 아니고 놀러 왔는데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뭔들 좋지 않겠나.
호텔 룸은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는 작았지만 작게 주방 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다. 싱크가 좀 작다 생각했는데 식기세척기가 아랫장 쪽에 설치되어 있었고, 오븐 겸 전자레인지에 충분한 식기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별 기대를 안 했었는데 이 정도 시설이면 음식 재료를 사다가 해 먹어도 될 정도의 수준이었다.
좀 좁긴 해도 이 정도면 둘이 지내기에는 충분하다.
이번 여행에는 노트북은 지참하고 싶지 않았지만, 중간에 보고서를 보낼 일이 하나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들고 왔다. 보내야 하는 메일을 보내고 난 후에는 펼쳐보지도 않을 생각이다. 지난 독일 여행과는 다르게 맘껏 그냥 즐기기만 할 것이다. 여기 살게 된다면 어떨까 그런 이미지만 떠올려보면서.
이때쯤 서울의 기온은 매일같이 영하의 기온을 갱신하며 최저 기온을 갱신하기 바빴는데 더블린은 대체적으로 영상 기온이었다. 다만 섬나라이기 때문인지 가깝게 위치한 리피강 때문인지 바람이 무섭게 불어 체감상으로는 한국의 겨울 날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비가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했기 때문에 꽤 추웠다. 도톰한 재킷 하나와 얇은 패딩 재킷 하나만 가져갔는데 조금 후회를 했다. 가능한 좀 더 두꺼운 겉옷과 목도리, 장갑 정도는 챙기는 것이 좋았을 것 같다.
오랫동안 밖에서 걸어 다니기에는 확실히 추웠지만 더블린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널찍한 리피강을 중심으로 늘어선 가게들의 모습도 귀여웠다.
기네스의 나라답게 시내에서 Gunness를 크게 걸어둔 Bar가 굉장히 많았다. 서울에서는 맥주를 그다지 즐기지 않지만 맥주의 나라에 온 이상 매일같이 기네스를 한 잔씩 꼭 마실 생각이었다.
숙소 앞 Bar에 자리를 잡았다. 맥주 한 잔을 마신 후에는 들어가 좀 쉴 생각이었다. 컨디션을 유지하고 싶었지만 긴 비행은 역시나 피곤했다.
그런데.... 세상에.. 왕창 쏟아버렸다.
작은 잔을 하나 받아 들고 신나서 사진을 찍다가 휴대폰을 잘못 휘둘렀던가 뭐 여하튼 완벽하게 한 잔을 모두 쏟아버렸다. 순간적으로 놀란 나도 소리를 꽥 질러버린 탓에 서빙하는 분도 바로 보고 깜짝 놀라 테이블을 닦을 휴지를 가져다주었다.
동생에게도 카톡으로 완전히 쏟아버린 현장을 보여주었다.
좋은 사인이야. 언니 진짜 거기서 살게 되는 거 아냐?
가끔 유러피안들은 이렇게 귀여운 해석을 해주곤 한다. 그저 민망함을 덜어주기 위한 농담인진 모르겠지만 덕분에 나도 실수를 잊고 그저 웃어버렸다.
영화 원스(Once)의 도시, 음악과 Bar, 맥주와 버스킹의 도시 더블린에 드디어 도착했다.
흐린 하늘, 비, 도시 전역에 도톰하게 깔려있는 물기 어린 공기
이전에 내가 다녔던 여행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오랜만에 가슴을 두드린다.
#더블린 #아일랜드 #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