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과 함께 걷는 더블린
오늘은 동생이 더블린으로 오는 날이다.
공항에 도착해서 시내로 들어오면 아마도 오후 12시쯤 정도의 시간. 나는 동생을 만나기 전까지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늦잠을 자고 싶은 마음이 있기도 했지만 몇 가지 업무처리를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오늘도 날씨는 흐리고 비가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2월의 더블린 날씨는 이게 기본값인 것 같다. 서울에 살면서 비 내리는 소리가 낭만 있다거나 분위기 있다는 생각은 거의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여행이 주는 설렘 때문일까? 유독 더블린에서의 비는 낭만적인 느낌을 주었다.
동생은 공항버스의 연착으로 12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리피강 인근에 내렸다. 우린 너무나 배가 고팠기 때문에 우선은 밥을 먹기 위해서 삼겹살 구이가 가능한 한식당을 찾아갔다. 사람이 좀 많아서 사진을 찍진 못했는데 한국인보다 현지인이 더 많은 풍경이 신기했다.
식사를 하고 나와서는 리피강을 따라 시내 방향으로 걸었다. 여전히 비가 내리다 말기를 반복했지만 우리는 우산도 쓰지 않고 그저 강변을 따라 걸었다. 사실 우산을 쓰는 게 크게 의미가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적은 양의 비가 오다 그치기를 반복하기도 하고 바람도 세다. 이래서 여기 사람들이 우산을 잘 안 쓰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독일에서 만나고 7개월 만에 만나는 거지만 늘 그렇듯 우리는 밀린 수다가 많았다. 메신저와 텍스트로는 전하지 못했던 작고 소박한 일상까지... 비 내리는 거리를 걸으면서 종일 조잘조잘 떠드느라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더블린에는 한인이 하는 미용실, 뷰티숍이 몇 군데 있다고 했다. 동생은 이번에 한인 미용실에서 파마를 할 생각이라고 했다. 신기하게도 미용실은 우리 숙소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예약을 위해서 전화를 몇 번 걸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방문해서 예약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강변을 따라 걷느라 비를 너무 많이 맞기도 했고 동생은 여행 짐을 싼 배낭을 메고 걸은 탓에 쉼이 좀 필요했다. 저녁쯤에 나와 맥주 한 잔을 하러 가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에 한인마트에도 들르고 미용실에 방문해 예약을 했다. 원래는 예약 타임이 남아있지 않았는데 동생이 독일에서 왔다고 하니 없는 시간을 쪼개어 시간을 내주셨다.
숙소에서 한바탕 쉬고 나니 금세 저녁시간이 되었다. 템플바가 있는 거리로 가서 맘에 드는 술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동생과는 이런 점이 잘 맞는다. 물론 더블린에서 놓치면 안 되는 관광 스폿들이 있긴 하지만 그런 것보다는 그날의 우리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오늘 분위기와 어울리는 것은 무엇인지를 찾으면서 그저 걷기만 해도 좋다. 이런 바이브가 맞다 보니 같이 여행 다니는 것이 꽤 즐겁다.
더블린은 사실 꼭 템플바 거리가 아니더라도 수없이 많은 Bar가 있다. 특히 밤이 늦어질수록 라이브 연주를 하는 바가 많았다. 지나가다가 맘에 들면 그냥 들어가서 분위기에 젖어들기에 충분하다.
비가 그쳐 살짝 물기에 잠긴 돌바닥 때문일까. 조명이 켜진 더블린의 밤거리는 낭만적이었다. 버스킹 하는 사람들이며, 늘어선 바에서 시작한 라이브 음악도 낭만적인 분위기에 한몫을 했다. 봄, 여름 날씨라면 맥주 한 캔을 사들고 거리에 앉아 분위기를 즐겨도 좋을 것 같았다.
템플바 거리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특히 템플바 앞에는 밖에서 맥주 한 잔을 하는 무리들, 들어가기 위해서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이렇게 사람이 북적거리는 밤거리에 나온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특히 이때는 밸런타인데이를 하루 앞둔 날이라 데이트하는 연인들, 꽃을 든 연인들로 가득했다.
우리는 템플바보다는 작은 홀을 가진 조용한 바를 선택해 들어가기로 했다. 실내 분위기는 이태원 어디의 바에 온 듯이 익숙한 인테리어였지만,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조용히 앉아 음악을 듣거나 낮은 소리로 대화하고 있는 분위기가 맘에 들었다.
아일랜드는 기네스뿐 아니라 위스키도 유명하지만 나는 위스키의 맛은 익숙하지 않다. 그래도 경험상 한번 시켜볼까 잠깐 고민도 했지만, 역시나 선택은 맥주. 경험도 좋지만, 짧은 여행일정이기 때문에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평소 술을 안 하는 편은 아닌데 여행에서는 술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면 뜨거운 햇볕 아래서 차가운 맥주를 마신다거나 안 마셔보던 술을 몇 잔 들이켠다거나... 양과 상관없이 바로 두통, 다음날 숙취를 몰고 온다. 그래서 오히려 여행지에서의 술은 조심하는 편이다. 어디까지나 평소보다는 조심한다.
Bar 내부 분위기가 아주 특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공간을 채운 사람들이 다르다 보니 왠지 모르게 색다른 공간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이런 술 한잔에 음악을 듣는 문화가 아주 익숙한 듯 보였다. 우리가 간 이 Bar는 라이브 연주는 하지 않았지만 플레이리스트를 굉장히 신경 써서 틀었고 사람들의 수다도 그 속에 적당히 섞여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예전 2,30대의 배낭여행을 하던 때엔 그저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다. 물 한잔을 마셔도, 숨 한 번을 쉬어도 와 여기는 이렇게 다르네-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작년 독일 여행부터는 다른 것보다는 비슷한 것들이 더 많이 보였다. 비록 언어는 다르고, 환경은 다르지만 서울의 나처럼 똑같은 매일이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들, 아침 일찍 일어나 일터로 향하고 퇴근 후에는 무언가를 즐기거나 쉬는 사람들. 다른 게 있다면 옷차림이 조금 더 자유롭거나, 분위기에서 개인의 취향이 조금 더 드러나거나 하는 정도랄까.
생각해 보면 산다는 건 지금 살고 있는 환경이 조금 다를 뿐, 본질적으론 한국이든 어디든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중요한 건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든 내가 나로 존재해야 한다는, 바로 그 부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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